시간-관계-증거-정리
이 글은 요즘의 나를 움직이는 네 개의 축 '시간-관계-증거-정리'를 묶은 기록이다. 각 축은 서로를 보강한다. 시간은 여유로 복귀하는 루프를 만들고, 관계는 실행의 폭을 확장한다. 증거는 내가 한 일을 확인하게 만들고, 정리는 다음 행동을 부른다.
구성은 단순하다. 1부는 “안 바쁨을 기본값”으로 두는 시간 운영, 2부는 관계가 결과를 증폭시키는 방식, 3부는 보여주기보다 쌓아 두는 레퍼런스의 감각, 4부는 정리가 실행을 당기게 되는 매커니즘을 다뤘다.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 그래도 모아서 보면 색다르다. 나라는 인간을 더 잘 알 수 있고, 글 사이 비교를 통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 미묘하게 다른 생각을 통해 조금 더 입체적으로 한 인간을 파악할 수 있다. 시간-관계-증거-정리를 대하는 내 생각을 점검한다.
바쁘다 바빠— 그 뒤에 오는 말은 언제나 현대 사회다. 오래된 농담처럼, 너무 익숙해진 문장이다. 최근 플레이하는 게임 탑 히어로즈에서도 일꾼들이 일을 시작할 때마다 같은 대사를 내뱉는다. 시대적 배경은 판타지지만, 이상하게도 그 장면은 지금의 현실과 닮았다. 게임 속에서 집을 짓고, 노동하는 유닛들의 반복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단면을 은근히 비춘다. 결국 게임도 사회를 반영한다.
나는 바쁘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 “요즘 바쁘죠?”라고 물으면, 대개 “그래 보이나요? 저 하나도 안 바빠요”라고 답한다. 그러니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 덧붙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쁘다’는 말이 바쁨을 불러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감정은 습관이다. 『감정은 습관이다』의 저자가 말하듯, 인간의 감정은 유익함보다 익숙함을 따른다. 원시 시대엔 익숙함이 곧 안전이었다. 생존이 우선이던 시대엔 변화가 곧 위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문명이 발달한 사회에서 익숙함은 안전과 무관하다. 그저 반복된 자동 반응일 뿐이다.
입버릇처럼 “바쁘다”를 반복하면, 뇌는 그 상태를 기본값으로 인식한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바쁜 방향으로 이끈다. 물론 바쁨은 감정이 아니라 현상이다. 그러나 바쁨이 불러오는 정서적 부산물은 명확히 감정이다. 그것은 ‘혼란’이다. 혼란은 명분을 준다. 무언가를 제대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대충 넘겨도 괜찮다는 자기합리화. 결국 바쁨은 혼란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이미 여유에 익숙하다. 그리고 그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하루를 보내다 보면 작은 일들이 정신의 균형을 흔든다. 그럴 때마다 글을 쓴다. 글을 쓰면 생각이 줄 세워진다. 무엇이 지금 해결 가능한 일이고, 무엇이 기다려야 하는 일인지 분류된다. 해결 가능한 것은 바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처리 가능한 시점으로 미룬다. 잊지 않기 위해 캘린더에 적는다. 이 단순한 기록이 생각보다 많은 불안을 잠재운다. 걱정의 대부분은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막상 손을 대면 1분도 걸리지 않는 일들이 쓸데없는 압박을 준다. ‘해야지’라는 생각만으로도 정신력의 일부가 소모된다. 해결을 미루면, 마음의 탭이 계속 열린 채로 남는다.
내 일의 본질은 사업이다. 사업은 늘 미지의 영역을 다룬다. 새 아이템을 검토하고, 사람을 만나고, 실행과 리스크를 동시에 감수해야 한다.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으면 정체되고, 벌이면 불안해진다. 그 모순 속에서 일한다. 그래서 사업은 본래 ‘정신없음’이 기본값인 사람에게 유리하다. 낯선 상황을 불편해하지 않고, 계획보다 즉흥이 많은 사람. 그런 이들이 더 많은 기회를 잡는다.
나는 그 기질이 부족하다. 계획을 세우고 정리하는 편이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일을 벌인다. 불편할 만큼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고, 그 불편을 밀고 간다. 그리고 그 이후엔 가능한 한 빠르게 정리한다. 일을 끝내고 다시 여유로 돌아온다. 그게 나의 강점이다. 여유가 있어야 문제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바로 처리할 수 있다. 여유는 나의 기본값이고, 빠른 실행의 전제조건이다.
이 리듬이 나를 만든다. 여유—정리—행동—다시 여유. 바쁜 상태를 오래 두지 않는다. 여유 상태로 복귀하기 위해 일의 매듭을 짓는다. 여유는 멈춤이 아니라 회복의 기술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바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여유로워야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물론 사업은 나에게 늘 새로운 긴장을 요구한다. 여유에 절여져 있으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다. 시행착오만큼 사업의 기술 알려주는 선생님이 없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일을 벌린다. 일정한 긴장은 내가 다시 배우고, 시도하고, 성장하도록 만든다. 여유를 기본으로 두되, 필요할 때는 바쁨을 불러오는 것이다. 인생이 전쟁이라면 무수히 많은 전투를 겪고 버텨야 한다. 여유로운 사람으로서 많은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꾸역꾸역 입영신청서 작성해야 한다.
나는 여유를 디폴트로 두되, 그 위에 계속 배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할 일을 만들고 실천한다. 여유는 내 기반이고, 앎은 내 보완이다. 결국 내 삶은 여유를 회복하기 위한 반복적인 실험이다. 문제를 만들고, 곧바로 문제를 해결하고 이내 여유로 돌아간다. 안 바쁨이 습관일 수 있게.
여유를 지키려면 꼬임부터 푼다.
몇 가지 일이 연달아 벌어진다. 대수로운 일은 아니고, 생활에 밀접한 일상의 사건이다. 몇 가지 연달아 처리하려다 보니 생각이 꼬인다. 어떤 일을 벌이고 있으며, 어떤 타임라인이 있는지 정리할까 한다.
몇 가지 용품을 구매했다. 우선 차량 세라믹 코팅제, 세라믹 코팅 스펀지. 오늘 랩핑 샵에 차를 픽업하러 간다. 랩핑 샵 오너는 내게 400불에 세라믹 코팅을 해주겠다 말했다. 나는 온라인 검색을 마치고 코팅은 거절했다. 코팅액을 178불, 스펀지를 12불에 총 190불에 구매할 수 있다. 게다가 내 차의 경우 부피가 일반 차량 절반 이하다. 세라믹 코팅액 하나로 2회를 할 수 있다. 방법을 찾아보니 스펀지에 코팅액을 발라 차량에 문지르는 것이 다였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 않다. 다소 품이 들고,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210불을 절약하며, 추후에 한 번 더 할 수 있다는 메리트를 택했다.
화장실 발열 조명 2개 세트를 주문했다. 2년 가까이 발열 조명 2개를 쓰지 못 하고 있다. 큰 불편이 없어 수리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안에 있는 조명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식탁 의자를 가져와 천장에 있는 조명 커버를 벗겼다. 이전에 아무리 벗기려 노력해도 안 되던 것이다. 오늘은 곧바로 벗겼다. 눌러서 벗기는 형식임을 깨닫고 고정 부분을 눌렀더니 쉽게 빠졌다. 아무래도 2년 사이에 공구와 간단한 시공에 익숙해진 덕이다. 안에 있는 조명을 확인하기 위해 돌려서 뺐다. 한 곳은 까맣게 타서 고정하는 부분에 떨어져 버렸고, 다른 한 곳은 멀쩡히 빠졌다. 절연 테이프를 이용해 부서진 파트를 유격 없이 붙였다. 온라인에 제품명을 검색해 주문했다. 마침 버닝스에 2개 합본 제품을 최저가에 판매하고 있다. 결제 버튼을 눌렀다.
동생과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주말을 끼고 한국에 결혼식 사회를 보러 간다. 가기 전에 얼굴 한 번 보려 점심 약속을 잡았다. 집에서 크게 멀지 않기 때문에 운동을 겸해 뛰어왔다. 식당 근처로 1시간가량 일찍 도착했다. 카페에서 글을 쓰며 생각 정리할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12시 45분에 식사를 하고, 동생은 일로 복귀하고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랩핑이 끝난 내 차를 픽업하러 갈 계획이다.
저녁 스케줄은 미정이다. 후보는 불금 볼더링 혹은 친구들과 간단한 저녁 식사다. 볼더링 할 가능성이 높다. 동행이 있는 운동을 선호한다. 같이 갈 사람을 물색해 보려고 한다. 파트너가 저녁 약속이 있다고 한다. 저녁 식사는 가볍게 혼밥을 할 듯하다.
어제 영주권 연장이 정상적으로 처리됐다. 다소 걱정하던 참에 좋은 소식이었다. 며칠 전, 침대에 누워서 대충 메일을 읽었다. 영주권 신청이 실패했다고 잘못 읽었다. 서재에서 확인해 보니 처리 중이고 부족한 서류가 있으면 조만간 연락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어쩌다 잘못 읽었는지 모를 일이다. 간혹 뭐에 홀린 듯 난독증이 발현하는 때가 있다. 한국에서 몇 가지 서류를 뽑아서 제출해야 하는데, 한국 핸드폰이 없는 재외국민은 서류 작업이 고역이다. 반려된다면 추가 비용은 물론, 성가신 서류 작업이 요구된다. 이런 사건 탓에 걱정을 했다. 연장 처리가 걱정을 잠재웠다.
간밤에 시드니 매장에 도둑이 들었다. 아이패드와 현찰 500불가량을 훔쳐 갔다. 이후에 핸드폰까지 도난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마 찾으면 도난품 목록은 늘어날 것이다. 보험료 인상, 귀찮은 절차, 본인 부담금 등을 고려했을 때 손실액이 최소 5천 불은 되어야 한다. 순수한 손실로 처리해야 한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것은 아니고 열려 있는 비상구로 들어왔다. 절차에 맞게 마감을 했다면 생기지 않을 일이었다. 그래서 뼈아프다. 내 개인 손실금이 크다. 세라믹 코팅에 더더욱 추가금을 쓸 수 없다.
토요일은 특별한 일정이 없고, 일요일은 독서 모임 2개가 잡혀 있다. 발제 도서 2권 중 한 권은 읽었고, 한 권은 85%가량 읽었다. 오늘 중으로 끝날 것으로 예상한다. 최근 책을 읽는 시간이 줄었다. 주요한 원인은 게임이다.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장소는 침대다. 침대에서 책을 음성 모드로 들으며 스도쿠를 플레이한다. 스도쿠는 책에 정신을 붙잡아두는 닻이다. 얼마 전부터 ‘탑 히어로즈’라는 게임을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광고를 클릭한 것을 시작으로 2주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생각보다 단순하고 큰 과금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어 접근성이 높다. 그러나 이북 청취와는 병행할 수 없는 성질의 게임이다. 그 탓에 독서량이 줄었다. 얼마 전까지는 재밌는 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게임이 없어도 괜찮겠다고 생각이 변했다. 하루는 한정적이고, 책 읽는 시간을 내줘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로 한 일과 할 일을 정리한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생각은 나를 성가시게 만든다. 글을 쓰면 생각이 원래 자리로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든다.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생각을 정리했으니, 시간도 10분으로 묶어보자.
10분 뒤에 카페를 나서야 한다. 약속 시간에 맞춰 식당에 도착하기 위함이다. 위 생각 정리 글을 쓴 이후로 ADHD 환자처럼 인터넷과 메신저를 오간다. 애매한 시간이라 특별히 뭔가를 하기 부족하다고 무의식이 말한 탓이다.
이럴 때 시간 제한 글쓰기가 제격이다. 뭐라도 쓸 수 있고, 남은 시간을 충실히 보낼 수 있다.
멜번 단톡방에 글쓰기 모임을 열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참여했다. 새삼 느끼지만 글쓰기는 모임으로 하기 적합하지 않은 취미다. 크게 두 가지 이유다. 첫째는 지속적 글쓰기의 허들이 높기 때문이다. 글쓰기 자체가 목적이 되는 활동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다.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글을 쓴다는 일이 거창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거창한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강박이 글쓰기 밖으로 사람을 밀어낸다. 억지로 열정을 태워 글쓰기를 끝마쳤다고 해도 문제다. 이렇게 힘든 일을 또 해야 해?-라는 생각이 한층 더 부담을 강화한다. 둘째 이유는 글쓰기가 지독하게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일련의 고통을 참고 글쓰기에 익숙해졌다 해도, 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글쓰기는 자신에 침전하는 작업이다. 자신의 생각을 본인의 언어 능력을 활용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적어낸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보이기 꺼려지는데, 낯선 이에게 보인다니 더더욱 부담스럽다. 간단한 예시로, 주위에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는 지인 몇이 있다. 한 번 봐도 되냐 물었더니 부끄럽단 이유로 블로그를 공개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모임장님의 열정적 광고가 민망하게 참가자는 나를 포함해 둘이다.
8년 전 즈음 나도 멜번에서 글쓰기 모임을 추진한 적이 있다. 결국 나를 제외한 모두가 활동을 하지 않았다. 1인이 오는 곳을 모임이라 부를 수 없다. 자연히 해체. 그 이후로 홀로 글을 써오고 있다. 다만 네이버 카페 ‘백일 글쓰기’에 참여하고 900일 가까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모임장님을 제외하곤 전혀 모르는 이들이다. 택시 기사님에게 자기 고민 털어놓는 듯, 완벽한 타인 앞에선 나를 드러내기 쉽다는 역설이 있다. 그런 곳에선 모임이 운영된다.
글쓰기 모임은 여러 목적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지속하기 위함이다. 혼자서 분투하면 고되지만, 같이 분투하면 할만하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매일 글을 쓰네. 글쓰기가 대수롭지 않은 일이구나. 허들을 낮춰서 나도 매일 쓸 수 있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글쓰기 모임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 이미 오래된 습관이고, 가장 즐기는 취미다. 모임이 없어도 성립하는 취미다. 내 경우엔 지속하는 것보다 새로운 자극이 목적이다. 가까운 곳에 나처럼 꾸준히 글을 쓰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비슷한 환경에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구나- 깨닫는 지점 또한 흥미로운 발견이 될 것이다.
원래라면 지금 끝내고 가야 한다. 예정된 10분이 지났기 때문. 그러나 몇 초 전에 동생에게서 카톡이 왔다. 약속 시간을 10분 늦추자는 말. 미팅이 길어진다고. 시간이 정해진 계획이 딱히 없기에 10분의 연기는 아무런 불편을 주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전업 사업가/투자자가 된 이후로 시간이 썩어날 정도로 많아졌다. 정해진 일정도 없고, 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경우도 없다.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로 24시간을 채운다.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고, 먹고 싶은 대부분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시간이 많으니 기다림에 인색하지 않다. 게다가 스마트폰이라는 휴대용 재미 보따리가 항시 몸에 있다.
커피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두 모금 정도면 하얀 컵의 바닥이 보일 터다. 마지막 두 모금을 마시고, 문장을 두 개 정도 덧붙이고 자리를 떠날까 한다. 오늘도 유튜브가 골라주는 노래를 들으며 좋은 날씨를 즐기며, 새롭게 랩핑된 차에서 드라이브하며 하루에 감사하겠다.
여유의 기반 위에 올라서는 건 결국 사람이다. 관계에 집중하자.
가진 일신상 능력보다 본인의 인간관계로 인해 더 나은 대접을 받는 경우 ‘인맥힙합’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원래는 힙합 씬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가진 실력이 부족하지만 유명 래퍼와 프로듀서와의 친분으로 인해 더 조명받고 나은 기회를 받는 래퍼를 지칭한다. 입에 착 붙는 어감으로 인해, 주변인의 도움으로 원하는 바를 이뤄갈 때 읊조린다. 인맥힙합이네…
요즘 들어 인맥힙합을 연호한다. 준비하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순항 중이다. 나와 파트너의 능력보다 더한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주변인들의 아낌없는 도움 덕이다. 모두의 도움이 새롭게 자라나는 프로젝트를 돕는다. 온 우주가 우리를 돕는다.
예를 들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운의 영역, 그곳에도 누군가의 기여가 있다. 예상치 못한 지인의 도움 등. 모두가 인맥힙합이다. 어제는 MC 후보와 인터뷰를 했다.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기대의 최대치를 뛰어넘었다. 모든 자격 요건을 충족한 것은 물론 기대 이상의 자격과 경력, 자질이 있었다. 이벤트를 구성하는 데 여러 요소가 있다. 개인적으로 그 모든 요소 중 MC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MC의 진행이 경험 전반을 가른다. 이미 절반은 성공했다.
오늘은 케이터링 관련 조언을 위해 미팅을 잡았다. 능력 있고, 다정하고, 같이 얘기하면 즐거운 친구를 만났다. 그의 겸손한 태도와 성숙한 직업의식, 디자인과 요리에 대한 지식을 높게 평가한다. 일전에 동업의 가능성을 타진했었으나, 상황이 맞지 않았다. 언젠가는 같이 뭔가를 도모하기에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내 안에 남았다. 오늘은 근황 토크를 시작으로 포스터 디자인과 케이터링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케이터링을 어떤 형태로 준비하고, 필요한 소품은 무엇이며, 어떤 재료를 써야 하는지를 조언해줬다. 그러다 마지막엔 그가 직접 전부 준비해주는 것으로 결정이 됐다. 전문 인력이 베푸는 말도 안 되는 인정이다. 그의 의리는 이미 잘 알고 있지만, 이 정도로 화끈할 줄은 몰랐다.
미팅 이후에 인쇄한 포스터를 각각의 협력 업체에 배부했다. 시티 유동 인구가 많은 주요 거점에 포스터가 붙여져서 참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이렇게 포스터를 위한 공간을 내어준 동료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경영 서적에서 선구자들은 시행착오의 대단함을 역설한다. 뭔가를 해봐야 배우고 성장한다. 일단 움직여라. 심지어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도 말한다. ‘Just Do It.’ 이렇게 타이트한 스케줄에 여러 타스크를 처리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사업가로서 성장한다 실감한다. 일을 벌려야 한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일을 저질러야 한다. 그것을 수습하고 말이 되게 만드는 과정이 사업이다. 평생을 따라다닐 레퍼런스가 멋지게 만들어지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을 돕는 것이 사람이다. 낯선 길을 가려다 보니 계속 넘어진다. 누군가가 계속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붙잡아 앞으로 나아간다.
타인의 손으로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그럴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그럴듯한 이벤트로 나아가고 있다. 불과 4년 전이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사업가로서 어느 정도 성취를 봤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럴듯한 이유는 우선 멋진 베뉴다. 베뉴는 Lunar by Hikari란 카페 겸 식당이다. 브런즈윅이란 멋쟁이 동네에 위치해 있고, 큰 공간을 세련된 미감과 적절한 여백으로 채웠다. 중국인 3인방이 동업하는 업체다. 시티엔 카페를 전문으로 하는 Hikari가 있다. 3년 만에 두 매장을 궤도에 올렸고,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다. 셋 다 재벌집 아들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꽤나 겸손하고, 수수하고, 사업하는 감각이 좋다. 이들에게 우리의 사업을 설명했는데, 마침 좋게 봐줘서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타인을 끌어들일 수 있는 비전, 레퍼런스, 직원들과의 좋은 관계(단골 카페다) 등이 도운 덕이다.
다음은 스폰서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 많은 이들이 참여를 돕는다. 사업하는 동료들의 다른 사업체까지 끌어들였다. 또한 한두 번 만났던 사람과 친해지고,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도모했다. 동업자 또한 본인 친구의 사업체에서 협찬을 이끌어냈다. 멜번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어나가는 그들이다. 그 결과 꽤나 번듯한 스폰서 라인업을 갖추고, 그들에게 꽤나 괜찮은 상품을 받는다. 포스터에도 모두의 브랜드를 넣었다. 구색도 좋고, 실질적인 도움도 받는다.
다음은 MC다. 전문 MC를 섭외했다. 실바나는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한 남미 출신 여성이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인재다. 겸손하고, 세심하지만 말에 힘이 있고 포용력도 있다. 20년 이상 서비스 업종에 일했고, 현재는 모나시 대학교 HR 수퍼바이저를 맡고 있다. 긴 회사 생활과 부서의 특성상 정제된 언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일하면서 MC 클래스를 듣고, 전문 MC 자격증을 취득했다. MC 일에 매진하기 위해 대학교에 6개월 브레이크를 갖고 본격적으로 MC 일에 뛰어들었다. 약속 시간 15분 전에 와서 상황을 살피고, 나의 부족한 영어를 불편하지 않게 교정해주고, 누군가 말할 때 경청할 수 있는 어른이다. 아시안 모임에 아시안 MC면 더 좋았겠지만, 그녀의 책임감이나 인품이 그 아쉬운 점을 뛰어넘는다.
다음은 디자인이다. 좋은 디자인은 의도에 부합하는 디자인이다. 마케팅 회사가 만들어준 디자인은 쓸 수 있는 정도였고, 그것을 디벨롭한 친구의 디자인은 좋은 디자인이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에 부합하는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그 디자인은 미니멀하고 사람의 온기가 들어 있다. 핸드드로잉으로 몇 가지 요소를 그렸다. 여백을 적절히 활용해서 우리 브랜드가 추구하고자 하는 절제미를 잘 드러냈다. 물론 모객에는 실패했지만, 그것은 나의 의도다. 세련된 브랜딩으로 처음엔 스윽 보고 지나갔다가 나중에 본격적으로 마케팅이 시작됐을 때 납득하는 구조를 고려했다. 우회적이고 함축된 방식이 더 오래 유지될 수 있는 브랜딩이라 믿었다. 무엇보다 이 비즈니스는 내 미래 비즈니스와 투자 유치를 위한 레퍼런스적 성향이 강하다. 우선은 멋진 것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미감, 방향성, 비전이 담겨 있길 바란다. 이력서에 추가할 수 있는 멋진 이력을 원했고, 디자이너 친구의 디자인이 이에 부합했다.
다음은 마케팅 회사다. 마케팅 회사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중국계 말레이시안 둘이 창업한 회사로, 호주의 굵직한 업체들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의 다른 모든 브랜드 마케팅 또한 담당하고 있다. 우리의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 내가 상황을 설명하고, 가격 조율을 요청하자 모든 작업을 반값에 해줬다. 그리고 SNS 홍보, 비디오그래퍼, 포토그래퍼, 디자인, 인플루언서 유치 일체를 한 번에 해준다. 웨딩 플래너와 같다. 한 곳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전담 매니저를 고용해서 우리 프로젝트 전반을 관리하게 한다. 마케팅 관련 모든 일을 한 사람을 통해 할 수 있어 효율적이고 에너지 소모가 적다.
모두의 노력이 모여 그럴듯한 이벤트로 나아간다.
그럴듯하게 만들어 준 모두에게 떠오르는 한 단어는 '감사'다.
나는 감사를 입에 올린다. 내 친구 결혼식에서는 김동률의 ‘감사’를 축가로 불렀다.
감사한 일 투성이다. 의식적으로 감사할 일을 찾기도 하지만, 의식하지 않아도 감사한 마음이 산개할 수밖에 없는 하루하루다. 새로운 일을 준비한다. 처음엔 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알려야 한다. 물론 내가 시스템을 더 촘촘히, 적당히 노골적이고 대중적이고 외설적으로 만들었다면 첫 회에도 사람이 충분히 왔을 것이다. 하지만 멋있는 것을 하고 싶다는 제1 기준에 맞춰 다소 우회적이고 함축적으로 브랜딩을 했다. 어쩔 수 없이 미진한 홍보를 직접 초대로 해왔다.
분명히 참가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첫 회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젊은 싱글 아시안을 타깃으로 만든 소셜 이벤트다. 전문 MC가 진행을 맡고, 동료와 친구들이 하는 브랜드에서 협찬을 받았다. 멋진 베뉴에서 칵테일과 쓸만한 와인을 마시고, 중간중간 게임도 하면서 사람들과 협업한다. 자연스럽게 대화와 놀이를 즐기고 선물도 받아가면서 인연을 찾는 방식이다. 이때 1회는 레퍼런스도 없고, 본인의 데이트하는 모습이 비디오와 사진에 담겨 이후 광고에 쓰일 예정이다. 내가 싱글이라도 절대 참여하지 않았을 이벤트다. 물론 친구가 간곡히 사정했다면 크게 고민하고 참석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간곡히 사정했다.
차회부터 참여하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이런저런 촬영이 없고, 아는 사람들끼리 겹칠 일이 없을 때 말이다. 내 친구들부터, 흥미를 갖던 인플루언서들, 친구의 친구들까지. 이것은 첫 회가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일이다. 보통 사업에서 투자 유치도 비슷하다. 레퍼런스가 없으면 좀처럼 투자하지 않는다. 아이템이 좋아도 그것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업을 성공시키고, 다음 사업에 나설 때 가장 먼저 투자하겠다 하는 사람은 첫째가 기존 투자자고, 둘째가 앞선 투자를 거절한 사람이다. 아, 나도 투자했으면 돈을 벌 수 있었는데— 하고 후회하고, 이번에는 망설일 필요 없겠다고 판단한다. 우리가 준비하는 이벤트도 마찬가지다.
당장 11월 9일 일요일이 행사 날이다. 11월 6일에 모든 참가자를 컨펌하고, 확정 메일을 보내는 것이 우리 플랜이었다. 아무래도 신청자가 모집 인원보다 많을 테니 우리 추후 홍보에 더 적합한 사람으로 선별하려 했다. 오늘이 11월 6일이다. 이제 절반(남자 5, 여자 6)을 조금 넘겼다. 심지어 그 전날은 처참했다. 남자 셋, 여자 하나가 확정이었다. 하루 동안 대단한 진보를 이뤄낸 셈. 사정을 아니 대단한 성취처럼 보인다. 역시 넉넉히 마감 기한을 잡는 것은 큰 도움이 안 된다. 마감이 닥치면 어떻게든 된다.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모인 덕이다. 사업을 같이 꾸리는 친구와 나, 그리고 마케팅 회사의 우리 담당자 셋이 최선을 다해 사람을 찾았다. 책임감 있는 사람들과 팀을 할 수 있는 것도 복이다. 다른 말로 감사할 일이다.
행사까지 3일 남았다. 사람 구할 날도 3일 남았다. 원래라면 모든 참가자를 픽스하고 세부 디테일을 조율하는 단계여야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것이 사업의 묘미다. 어떤 일이 닥칠 줄 알 수가 없다. 그 미지의 사건을 어떤 식으로든 수습하는 일이 사업이다. 특히나 사업은 오픈 직전이 가장 정신이 없다. 변수의 한복판이다. 이때 우리를 잡아주는 것이 사람이다.
사람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자신의 태도를 다듬는다.
따뜻한 인간이 되고자 한다. 잘해오고 있다고 믿는다. 다만 내 결정권이 커지는 사업을 하게 되면서 약간 독단적 기질이 나오는 것 같다. 잘 갈무리하는 중이다.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냉정해지고, 홀로 결단을 내리려 한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보기에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몇 번인가 느꼈다.
일할 때에도 따뜻한 인간이 되고자 한다. 함께 있는 사람을 배려하고, 언제고 그들의 체면을 살려줄 수 있는 사람. 내가 틀렸음을 항상 전제로 하는 사람. 그러기 위해 나의 흠과 부족함을 의식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이렇게 부족해. 너가 없으면 안 돼. 너의 의견을 들려줘. 내 의견이 맞다고 생각할 때에도 상대 의견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잘 되면 좋은 것이고, 살짝 엇나가는 것 같으면 넌지시 의견을 낸다. 둥글게 둥글게, 그러면서도 효율적으로 사업이 진행되도록 안배한다.
이것은 관계뿐만 아니라 사업에서 실리적 의미도 있다. 왜냐하면 독단적 리더 포지션을 자처하면 진정으로 다른 구성원의 의견을 들어야만 할 때 듣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온전히 나 홀로 사업을 했던 청소 프랜차이즈 시절을 떠올리면 명확하다. 동업이 될 수 없는 구조로, 직원들은 나의 지시를 따를 뿐이다. 모든 사업에 관한 결정은 내가 내린다. 그러다 보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후자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게으름을 이해하고, 그것을 견제해줄 파트너가 필요하다. 옳은 소리, 틀린 소리 구분 없이 본인 의견을 타진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야 옳은 소리가 필요할 때 들을 수 있다.
타임라인을 빡빡하게 짜놓은 탓에 다소 밀고 가는 힘이 필요하다. 마감 기한을 넘긴다. 오늘 포스터 작업만 봐도 마찬가지다. 밀려다 타인과의 관계까지 밀리는 경우도 있다. 남에게 부탁하는 것에 거리낌 없고, 돕는 것에도 거리낌 없는 나지만, 너무 일방적으로 도움을 연호하다 보니 상대가 지칠 수 있다. 적당히 상황 봐서 그만할 줄 알아야 하는데, 더 좋은 것을 만들고자 하고, 더 도움 되는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 욕심이 상대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이렇게 글로써 다시 한 번 나아갈 방향을 점검하고 행동을 조심한다.
사람이 길을 넓히고, 숫자가 길을 다진다.
언젠가부터 나를 사업가로 규정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사업가로서 나의 역량을 알아보고자 한다. 검증의 시간을 마련했다. 간단한 이벤트를 만들었다. 소셜 데이팅 프로그램이다. 멜번에 있는 젊은 아시안들을 타겟으로 해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사람을 동원해서 만족스러운 시간을 만들어주는 목표다.
객관의 눈으로 보면 사업가로서의 내 능력은 준수한 편이다. 우리 팀은 대단하다. 나는 대단한 팀을 만나 대단한 것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학습한다. 그 과정에 참여하고, 경험한다. 또한 대단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배우고, 전문 인력을 소개받게 된다. 내 가장 뛰어난 능력은 인간관계다. 능력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원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쌓을 수 있다. 누구에게나 괜찮은 사람으로 다가간다.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데 있어 거리낌이 없다. 도움은 되레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내 능력과 인프라를 통해 남을 돕는 것을 즐긴다. 누군가가 내게 도움을 청할 때 반가움이 앞선다. 사업은 사람의 도움으로 하는 것이다. 누가 어떤 도움을 어떻게 줄지를 잘 파악하는 것으로 80%는 먹고 들어간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눈에 띄는 결과물이 없다는 점이다. 온전한 개인 레퍼런스라 말하기에 떳떳하지 않다. 사장 타이틀을 달고 매장의 대소사나 몇몇 이벤트를 참석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어 내 역할을 미비하다. 능력 있는 동료들의 성과다. 본격적인 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내 손길이 많이 닿은 다음 사업부터다. 바로 윗글에서 ‘급한 불’이라 표현한 그 사업이다. 이 사업을 만들어내는 데 객관적으로 30% 이상의 크레딧을 가져올 수 있다. 크레딧이야 말하기 나름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떳떳이 역할을 주장하느냐다. 이 사업에선 일인분 했음을 떳떳이 밝힐 수 있다.
그 사업은 내년 중순이 되어야 오픈한다. 그전에 자동화 기계를 활용한 저가 식당을 오픈하려 했다. 투자금이 중복되는 바람에 내년 중순 이후로 미뤄졌다. 그전까지는 다음 사업 준비나 동료들 사업 구경 및 약간의 도움으로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다 문득 간단한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시안 타겟의 데이팅 프로그램이다. 사업마다 난관이 다르다. 이 사업의 경우 베뉴 부킹과 마케팅, MC 섭외가 난관이다. 동료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흔쾌히 베뉴로 사용하게 해준 덕에 큰 산 하나를 넘고 시작한다. 이제 마케팅 구상과 베뉴 장식, MC 섭외만 하면 끝이다.
듀 데이트도 정했다. 11월 8일. 이날 첫 운영을 할 예정이다. 인플루언서를 불러서 참여케 하고, 일반 참가자의 비용을 절반으로 줄여 광고용 사진을 촬영할 계획이다. 이날 전까지 모든 준비를 끝마칠 생각이다.
안타깝게도 큰 장벽 하나가 있다. 바로 같이 사는 파트너다. 데이팅 행사를 주관하는 사업은 멋지지 않다고 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윤리적으로 맞지 않단다. 데이트 상대를 만나기 위해 작위적으로 만나고 거기에 비용을 지불하는 게 본인 가치관에 어긋난단다. 본인 배우자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단다. 나는 상대를 존중한다. 파트너의 존엄을 지켜주고 싶다. 이 사업으로 금전적으로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현실화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
목표가 바뀌었다. 수입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고,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넘기는 것이다. 친한 친구이자 앞으로도 비즈니스를 같이할 동료다. 아직 사업 경험이 없어서 그를 성장시키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 자리 잡은 후에 그가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도록 인컴 소스를 만들어줄 계획이다. 나는 초기 투자한 비용과 가능하다면 인센티브를 받는다. 인센티브 관련해선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파트너는 설립 이후에 아예 손을 떼길 원한다. 꾸준히 돈을 받으면 내 사업이나 다름없다.
아무튼 되든 안 되든 준비 과정과 투자는 훌륭한 레슨이 될 것이다. 다행히 시간도 돈도 충분히 있다. 레슨비 지불에 거리낌 없다. 보여주겠다. 행동할 때다.
요즘 구와바라 데루야 작가의 『워렌 버핏 삶의 원칙』을 읽고 있다. 사례, 명언집이다. 특별히 저자가 필요한 작품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버핏의 통찰을 빠르게 상기할 수 있어 의미가 있다.
하이라이트 칠 곳이 많다. 그중 최근 하이라이트를 친 곳은 행동력에 대한 구절이다. 저자는 행동력이 아닌 실행력이라 고쳐 썼다. 정확한 내용을 발췌하면 이렇다.
“버핏이 얻은 중요한 교훈은 ‘큰돈을 손에 넣고 싶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였다. 버핏은 인생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학교 성적이 뛰어나거나 인기가 많은 것이 아니라 실행력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합니다. 같은 반 친구 중 한 명에게 투자한다면 누구에게 하겠는가. 이때 나는 가장 실행력이 강한 사람을 선택할 겁니다.”
통감한다. 다른 내용도 마찬가지다. 어느 하나 공감이 안 되는 내용이 없다. 이렇게 똑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싶다. 이건 선후관계의 오류일 수 있다. 그간 무수히 많은 버핏에 대한 책을 읽었다. 책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것일 수 있다. 그러니 공감을 할 수밖에.
실행력에 관한 내용도 마찬가지다. 나는 스스로를 사업가이자 투자자라 규정한다. 기업을 고를 때도, 함께 사업을 할 사람을 고를 때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 수익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준이 명확하다. 투자하고픈 기업의 경우, 높은 순수익을 거두고 있고, 시장을 선점하고, 플랫폼 기업이며, 꾸준히 수익이 늘어나는 곳이다. 그러면서도 저렴하게 팔리는 곳. 한마디로 저렴한 우량주다. 동업자는 좀 더 심플하다. 실행력 있는 사람이다. 모든 특성 중 실행력이 최고다.
사업의 경우 위 버핏의 말이 가장 잘 맞다. 머리가 좋은 것도, 학벌이 좋은 것도, 뛰어난 외모도 실행력을 이길 수 없다. 사업은 기술이다. 기술이라 하면 무수한 반복에서 배우는 성질이다. 축구를 잘하려면 공을 차야 한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이것저것 해보고 시행착오를 겪어봐야 기술이 는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완벽을 기하다 시작도 못 한다. 일단 부딪쳐서 뭔가를 하는 사람이 기술을 얻는다. 사업의 핵심은 실행력이다.
실행력, 내 언어론 행동력에 대해 나는 굉장한 크레딧을 준다. 최근 이벤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미팅을 하고, 협업을 한다. 전에 상상도 못 한 기회가 생긴다. 누군가를 더 잘 알아가고, 상대의 몰랐던 일면을 보게 된다. 이렇게 일을 벌려 나가는 과정에 내 사업에 핵심이라 부를 수 있는 코어 기술이 생김을 깨닫는다.
실행을 돕는 것은 정리와 약간의 제약.
며칠 글을 안 썼다. 카페에 올릴 글이 떨어졌다. 비축할 필요가 있다. 이럴 땐 짧게 여러 번 쓰는 글이 적합하다. 시간 제한을 두면 더할 나위 없다. 한정된 시간에 무조건 한 편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때가 그럴 때다.
12분 뒤에 집을 나서야 한다. 랩핑 업체에 차를 맡겨야 한다. 22분 뒤에 나서도 되지만, 약속 시간 10분 전에 도착하는 것을 모토로 삼는다. 원래도 안전한 시간을 선호했지만, 최근에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의 글을 읽고 한층 강화됐다. 그리고 ‘10분 먼저’라는 슬로건을 강하게 주입했다. 어떤 맥락이냐 하면, 그는 성공과 가장 밀접한 인간의 특징을 성실함으로 꼽았다. 성실함을 나타내는 습관은 7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약속 시간에 10분 일찍 도착하는 습관이다. 7가지 습관은 돌려 말하면,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성실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한 7가지 방법이다. 나는 ‘비교적’ 성실한 타입이다. 그리고 성공을 좇는다. 그렇다면 ‘꽤’ 성실한 타입으로 거듭나는 편이 유리하다. 의식적으로 약속 시간 10분 전에 도착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이렇게 10분만 글을 쓰면 업로드가 성가시다. 딱 10분 쓰고 그날 글쓰기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면 바로 업로드하면 그만이다. 다만 당일에 돌아올 예정이라면 업로드하기 꺼려진다. 왜냐하면 내 글쓰기 방식 탓이다. 하루라는 유닛으로 메모 글을 모아서 업로드한다. 개중 쓸만한 글이 나오면 별도의 제목으로 따로 빼지만, 이런 잡담 수준의 글이라면 모아서 묶음 배송한다. 하나만 띡 올리기엔 겸연쩍다. 그럼 일단 업로드하고 나중에 수정해서 추가하면 되는 게 아니냐고 물을 것이다. 수정으로 글을 덧붙이면 글쓰는 재미가 생기지 않는다. 몇 안 되는 독자가 2, 3번 글을 못 읽고 넘어갈 수 있다. 기왕 읽는 거 비교적 알찬 게시글을 봤으면 좋겠다. 나름의 글쓰기 윤리다.
10분 글쓰기의 묘미는 역동적인 주제 전환에 있다. 보통이라면 하나의 주제로 몇 문단을 구성하겠지만, 그건 시간이 넘쳐날 때 가능한 일이다. 지금처럼 10분 동안 휘뚜루마뚜루 써야 할 때는 생각이 사치다.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어떤 문단 구성으로 풀어낼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몇 분이 소요된다. 그러니 적합하지 않다. 그냥 되는 대로 손을 움직여 여백을 채워야 한다. 시간 제한 글쓰기의 목적은 퀄리티가 아니라 퀀터티다. 한정된 시간에 되도록 많은 분량을 쏟아내는 것. 나는 그 목적을 수행 중이고, 자연히 역동적으로 주제를 전환한다.
월요일 아침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 몇 시간 전에 있던 슈카의 풀 라이브를 시청하며 30분 러닝을 뛰었다. 월요일의 기쁨 중 하나는 트레드밀 위에서 슈카 방송 듣기다. 30분을 탔는데, AI 대전 에피소드 하나를 들었다. 메인 주제여서 그런지 분량이 꽤나 나갔다. 세계의 자본은 AI로 향하고 있음을 느꼈고, 그만큼 AI가 버블로 끝난 경우에 사회에 미치는 여파가 상당할 것으로 추정한다. 반도체 원툴인 우리나라의 최대 먹거리 또한 AI다. 3사(오픈AI, X, 메타)는 공격적으로 세력을 불리고 있다. 본인 몸집보다 큰 데이터 센터를 구축 중이다. 돈은 미래의 수익을 담보로 한다. 아직까지 돈을 벌지 못하므로, 몇 년이라는 시간 안에 약속된 돈을 지불하기 위해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해야 한다. 그들 또한 시간 제약 있는 글을 쓰는 나와 같다. 시간 제약이 있고, 그 안에 엄청난 수익을 거둬야 한다. 약속된 수백 조의 비용을 지불하려면 말이다. 그 이후에 그들의 청사진에 따르면 각자가 천 조의 데이터 센터를 갖게 된다. 납품사와 순환 구조를 만들어 엄청난 발주를 하고, 그들에게 투자받고, 그 돈으로 다시 발주하는 전략이다. 납품사인 AMD, 엔비디아, 삼성과 하이닉스는 이미 튼실한 수익 모델이 있다. 그들과 힘을 모은다면 막대한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 이 AI 열풍이 지속되고 사회의 보편으로 자리한다면 성공하는 전략이다. 튤립이나 닷컴 버블과 다르다. 압도적 AI 파워를 보자면 자연스러운 미래라 예상된다. 닷컴 또한 자연스러운 인류의 발전이었다. 차이라면 그때는 소자본 창업자가 난립할 수 있는 구조고, 이제는 몇 손가락의 글로벌 거대 자본과 선두만이 참전이 가능하다. 지금 참전한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한 번 시스템을 잡아두면 유지 보수를 더해 수익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막대한 데이터의 사용처는 분명히 생긴다. 기술 개발에 따라 인간이 소모하는 데이터 크기는 비례해서 커졌다. ‘그 엄청난 데이터를 어떻게 써?’라고 하지만, 지금 우리를 보면 20년 전 사람들은 기겁을 했을 것이다. 러닝을 하며 기대와 걱정이 하나 늘었다.
4분을 오버했다.
속도를 높이면 빈칸이 생긴다. 빈칸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글이 오링났다. 어제 썼던 ‘안 바쁨이 습관’을 카페에 올렸다. 더 이상 남은 게 없다. 어제 글을 비축하려 했다. 하지 못했다. 해야 할 일이 몰아쳤다. 글은 긴 호흡으로 써야 한다. 중간에 자주 끊을 수 없다. 실은 종종 끊기긴 하지만, 그것은 나의 집중력 문제로 인한 것이다. 할 일이 여러 가지로 쌓이면 글에 도무지 집중이 안 된다. 그러니까 나의 산만함에 의해 신경을 잠시 돌리는 것은 괜찮지만, 당장 해야만 하는 작업과 비즈니스 메시지 답장이 생기면 괜찮지 않다.
의욕적으로 아침에 서재에 앉았다. ‘안 바쁨이 습관’을 쓰는 과정에서도 몇 번이나 다른 작업으로 눈을 돌렸다. 잠시 일을 보고 문장으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게다가 흥미로운 주제여서 나도 모르게 의욕이 생겼다. 분량이 길어졌다. GPT와 긴밀히 대화를 나누며 열 번 가까이 수정했다. 욕심을 부렸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올릴 만한 만족도의 글이 나왔다. 한껏 쏟아부으니, 다른 글을 쓸 수 없었다.
결국 몇 편을 쓸 시간이 있음에도 한 편밖에 쓰지 못했다. 또한 당장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서 하고 싶은 글쓰기를 뒤로 미뤘다. 당장 내일(오늘) 업로드할 글이 생겼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제 쓴 글을 업로드했다. 더 이상 글이 없다. 해야만 하는 일이 됐다. 글감이 떨어졌다는 주제로 우선 한 편을 쓴다.
채워진 곳간은 다시 빈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 다행히 양껏 비축한 글이 있어서 카페에 업로드할 땐 문제가 없었다. 최근 새로운 이벤트 사업을 기획 중이다. 사업을 준비하며 느끼지만, 열정이 있을 때 밀어붙여야 한다. 칼을 빼면 바로 뭔가를 썰어야 한다. 지금 뺀 직후여서 에너지 있게 일을 처리해가고 있다. 배수의 진 전략을 사용 중이다. 그러니까 행사 날짜를 빠듯하게 잡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날 이벤트는 열릴 것이다. 그리고 내 지갑에서 돈은 나갈 것이다. 망신당하지 않으려, 참여자들에게 어떻게든 좋은 것을 주려 분투 중이다. 그래서 글을 쓰지 못했다.
오늘은 전체 대사를 만들었다. 식순도 상품도 대략 정리가 끝났다. MC 구하는 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1순위 후보는 본인 단가와 맞지 않다고 고사했다. 대리인이라고 2명을 소개해줬다. 초짜와 약간의 경력자 둘이다. 아무래도 일반인보다는 낫겠다 판단한다. 그럼에도 백업 플랜을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 순간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면 난처하다. 그래서 같이 기획하는 친구에게 MC 역할을 맡겼다. 처음 몇 회는 전문 MC가 하고, 그 뒤로 이 친구가 이어가기로 했다. 이 경우 우리는 MC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안정성이 한층 강화된다. 백업 플랜으로 더할 나위 없다. 어떤 경우에도 참여하는 사장이기 때문이다.
스크립트 짜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존에 식순이 정해져 있다. 원하는 방향성과 어투, 기타 등등 고려할 사항을 정리했다. 이것을 토대로 유료 버전 GPT가 뚝딱 만들어주리라 믿었다. 믿음은 엇나갔다. 아무래도 3시간 분량의 대사를 한 번에 소화하기에 부하가 걸린 듯하다. ‘아, 그걸 원하신다고요? 바로 만들어서 워드 파일로 추출하겠습니다.’ 자잔, 하고 만든 파일을 다운로드한다. 의미 없는 말들이 반복된다. 원하는 말 해주나 봐라—놀리기로 작정한 듯 프롬프트와 전혀 상관없는 글을 만든다.
어쩔 수 없이 섹션을 여러 개로 나눠서 노가다를 했다. 3시간 분량을 처음부터 다 쓰는 것과 별반 차이가 있지 않았다. 그렇게 문장 하나하나의 내용을 수정하고, 방향성을 다시 지정했다. 한 스텝씩 나아가지 않으면 전혀 진행이 되지 않는다. 결국 모든 섹션을 의도에 맞게 수정했다. 그렇게 누더기 짜 맞추듯 워드 파일에 하나씩 넣었다. 보기 좋게 폰트 정리를 해달라고 완성본을 넣었다. 내용을 유지해달라 요청했으나 시원하게 무시하고 전혀 다른 글을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형식을 통일한 파일을 4조각으로 나눠 하나씩 받아 붙였다. 영어 버전도 마찬가지 방식을 따랐다.
침상에서 일어나 시작한 일이 2시 넘어 끝났다. 이후에 마케팅 회사와 관련 내용 협의, 협력사와 내용 공유 등을 했다. 일을 끝내고 카페에 4시에 도착했다. 보통 11시 즈음 오는데 이례적으로 늦었다.
당장 할 일을 전부 처리했다. 블로그에 글 쓸 여유가 생겼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포스팅이 6일 전이다. 나름 바쁘게 보냈다. 바쁘게 할 일이 있어 행복하다. 그리고 바쁨 뒤로 글 쓸 여유가 생겨 행복하다.
이상, 네 개의 축을 확인했고 나는 나를 조금 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