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이 관심 갖는 것의 언어로 세상을 본다. 각자 다른 필터를 달고 있는 셈이다. 행동경제학 실험에서도 이 현상이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식량이 부족한 사람은 음식 관련 단어에 더 빠르게 반응했고,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사람은 돈과 관련된 단어에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결핍이 시야를 좁히는 동시에, 특정 대상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관심과 결핍은 결국 같은 축에 있다.
나의 경우 그 필터가 사업이다. 어릴 적부터 장사를 했지만, 초반의 형태는 직장인의 연장선에 가까웠다. 시스템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렀고, 규모를 키우는 일엔 관심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사업가로서 시야가 열리기 시작한 건 친구의 사업에 투자하면서다. 처음엔 단순 투자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실제 구조를 함께 만들었다. 규모가 갖춰진 사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자리를 잡는지, 그 이면의 현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이후 몇 개의 매장을 더 내고, 내가 만든 계획서를 실제 사업으로 전환했다. 최근엔 이벤트까지 만들며 역량을 실험하는 중이다. 지난 3년은 세미 사업가를 전문 사업가로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내 필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업이 됐다.
새로 오픈한 업장을 방문하면 자동으로 계산이 시작된다. 수익 모델, 상권, 설비 비용, 인건비 구조, 브랜딩의 결까지 하나씩 해체해본다. 최근 오픈한 친구의 카페도 그랬다. 의식한 순간에는 이미 상권을 훑고 있었다. 메뉴 구성과 가격의 균형, 호텔 로비라는 입지 조건, 고객 동선, 직원 운용 방식이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 인테리어 비용도 바로 물었다. 사업하는 사람들끼리는 이 정도 질문은 실례가 아니다. 기존 설비를 살리는 쪽으로 공사를 했고, 총 20만 불. 그중 절반은 건물주가 지원했다니 초기 진입 비용은 10만 불. 부담이 적은 편이다.
오픈 첫 주, 월요일과 수요일에 가서 운영을 지켜봤다. 아직 홍보는 본격적으로 하지 않았고, 호텔 로비를 공유한다는 단점도 있었다. 카페 고객은 주변 동선이 어수선한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청결감과 동선의 명확함은 음식 업종의 기본인데, 로비와 엘리베이터의 흐름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업의 진짜 실력은 초반의 변수 속에서 드러난다. 문제를 발견하고, 수습하고, 구조를 고쳐서 다시 굴리는 과정. 거기서 사업가의 역량이 갈린다. 친구는 잘할 것이라 생각했다.
다음은 구조의 문제다. 호텔 로비에 매우 좋은 조건으로 들어갔다고 들었다. 렌트 5천 불 정도면 업종 대비 부담이 없다. 결국 인건비와 푸드코스트의 싸움이다. 푸드코스트는 적정선에 맞춰져 있었다. 메뉴 구성도 과하지 않고, 가격도 무리 없다. 문제는 인력이다. 키친과 카페가 분리된 구조라 홀 직원까지 추가로 필요하다. 손님이 많으면 커버되는 구조지만, 초기에는 부담이 크다. 대략 계산해보면 키친 셋, 바리스타 셋, 홀 둘. 총 여덟 명. 시급 30불 기준으로 시간당 240불. 오픈 시간은 7시부터 4시까지 아홉 시간. 조기 출근과 피크 후 인력 감축까지 감안해도 하루 2천 불 전후는 든다. 여기에 전문 쉐프와 매니저 급여가 더해지니 실질 인건비는 2,500~3,000불 사이로 보인다.
하루를 기준으로 본다. 렌트 200불, 각종 공과금과 부대비용 200불. 고정비만 3천 불. 여기에 매출에 따라 푸드코스트가 추가된다. 일반적인 커피 위주의 카페는 시간당 5~700불 매출이 나오지만, 친구네는 시작 단계라 200불 전후일 것으로 보였다. 페이스트리와 메뉴 판매를 더해도 시간당 400불이 한계로 보였다. 하루 9시간이면 3,500불. 고정비 3천 불에 푸드코스트를 더하면 거의 비슷하거나 손해다. 여기에 GST와 회계비용까지 고려하면 적자가 확정이다. 물론 내부 구조를 직접 보지 않는 한 정확한 계산은 어렵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 이익을 내기 어렵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결론은 단순하다. 일 매출을 5천 불 이상으로 끌어올리거나, 동선을 수정해 인건비를 낮추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계산은 무의식적이다. 이제는 그냥 보인다.
그 외의 관심사는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거나, 필요하다면 조언을 주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업가의 핵심 역량은 행동력이다. 일단 저지르고, 고통받고, 수습하는 과정이 사람을 키운다. 시행착오는 축적되면 경험이 되고, 경험은 결국 구조를 만든다. 실패가 두려우면 시행착오의 단위를 줄이면 된다. 감당 가능한 범위로 쪼개서 여러 번 시도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사업 자체니까.
워런 버핏의 말도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한다. “반 친구 중 한 명에게 투자해야 한다면 누구를 고를 것인가?” 그는 공부 잘하는 친구도, 인기 많은 친구도 아니라고 했다. 실행력이 있는 친구라고 했다. 사업에서 머리, 운, 인맥은 우선 조건이 아니다. 여러 번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 그게 사업가를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일을 벌리는 사람에 호감이 간다.
누군가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고 말하면 밀어주는 편이다. 대단한 아이디어인지, 100번 본 아이디어인지 따지지 않는다. 무엇이든 시작한 사람이 결국 유리하다. 실행의 속도와 시행착오의 빈도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어차피 넘어질 거라면 빨리 넘어지는 쪽이 낫다.
사업 필터는 자연스럽게 사람 필터로 이어진다. 사업을 볼 때는 수익 모델과 비전을 보고, 사람을 볼 때는 실행력을 본다. 사업에서 사람의 힘은 절대적이라 능력 있는 사업가가 늘어날수록 내게도 기회가 열린다. 모두가 동업자 후보가 될 수 있고, 함께 새로운 가치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쌓인 감각은 자연스럽게 기준이 된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