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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테크리스토르 Oct 18. 2024

날 보고도 배우고 깨닫지 못하니 답답하오.

- 임진년 선조가 1950년 6월 28일의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날 답습한 또다른 지도자에게 보내는 서신


이승만 대통령 보시오,

짐은 조선의 14대 왕 선조요.

얼마 전, 후손들이 즐기는 넷플릭스라는 곳에서 나의 부끄러운 왜란사가 기록된 '전.란' 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아픈 나의 치부가 다시 한번 드러나는 일이 있었소.

사람들은 왜군이 쳐들어오자, 한양을 버리고 밤늦은 시간에 백성들의 눈을 피해 몽진을 떠난 나의 모습에서 이 대통령 당신의 모습도 오버랩되어 보이더라 말 하더군.

돌이킬 수 없는 부끄런 역사지만, 이제 와서라도 그 날의 잘못된 결정들을 돌이키고 싶은 마음은 한 시도 잊은 적 없이 내 가슴에 새겨져 있소.

그대나 짐이나 이미 이 세상 사람은 아니나, 여전히 지울 수 없는 통회와 반성의 역사 안에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인물들로서 우리의 과오와 실책을 뼈저리게 되돌아 보는 기회를 갖고자 붓을 들어 서신하오.






우린 도성이 아닌 백성을 버린 지도자요.


짐이 임진년 왜적의 침입을 맞아 한양을 떠나 의주로 몸을 옮기던 밤의 기억들이 내게는 아직도 가슴 속에 아프게 남아 있소.
짐이 백성과 군사를 지키지 못하고 도읍을 버린 것, 이로 인해 조선의 백성들이 겪은 고초와 고난은 오롯이 짐의 부덕에서 기인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소.
그 날들의 치욕스러움을 돌아볼 때마다, 짐은 과연 군왕으로서 백성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비춰졌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구려.
짐은 결국 피난의 결정을 내렸고, 이는 백성을 외면한 군왕으로서의 지울 수 없는 역사의 기록으로 영원한 나의 허물이 되었소.


이 대통령 또한, 6.25 전란이 발발하였을 때 백성을 향하여 서울을 지키겠다고 분명히 하였으나, 그 약속을 깨고 서울을 등졌소.
내가 백성의 눈을 피해 밤 늦은 시간을 택해 한양 도성을 떠난 것처럼, 당신도 마치 여전히 서울에 머물고 있는 양 끝까지 서울을 수호할 양 녹음방송을 내보내 국민들을 안심시켰지만,  그건 이미 대전으로 피신한 후에 녹음된 거짓 방송이었소.
그대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국민들이 남으로 피란할 한강 다리마저 끊어버려 많은 사람들이 절망 속에서 죽어갔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남은 이들은 가혹한 운명을 맞이했지요.

나 또한 날  추격해 올 왜적이 두려워 강을 건넌 후 배와 나루를 불태우도록 해, 수많은 백성들의 피란길을 강건너에 끊기게 해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바 있소이다.
마찬가지로 그대 덕에 서울을 떠날 때를 놓친 많은 서울 시민들과 피란민들이 북한군 치하에 놓여, 수복 후에 억울한 부역자로 몰려 생명을 잃은 것은 이대통령이 만들어 낸 결코 작지 않은 비극이라 하겠소.

어쩌면 우리는 이리도 부끄럽게도 닮은 구석이 많은지 신기할 따름이외다.

짐이 한 나라의 왕으로서 스스로를 돌아보면, 백성을 믿고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것이야말로 가장 큰 후회로 남소.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백성에게 믿음직한 군주로 남아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되오.

지도자가 백성을 저버리면 그 나라는 뿌리부터 흔들리는 법이오.

군왕이 백성에게 신의를 지키지 않으면 그 백성 또한 군왕을 저버릴 것이오.

짐이 그 때 한양을 지키려 했더라면, 혹은 백성과 함께 그 위험을 무릅썼더라면, 잠시의 혼란과 위험은 있었을지언정 조선의 역사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소.

이 대통령도 분명 그 순간에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의 무거운 결정을 해야 했겠지만, 백성을 위해 더 깊은 고민을 했더라면 어찌 되었을지 짐은 묻고 싶소.


좋은 지도자란, 백성의 마음속에 남는 이라 하오.
짐은 한 번 실수를 하였고, 그로 인해 조선의 백성들이 치른 대가는 엄청났소.

이 대통령 또한 그 대가를 알고 계시겠지요.

지도자의 자리는 쉽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며, 백성을 저버리지 않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오.

짐은 그 점을 늦게 깨달았소.

나라와 국민을 책임져야 할 지도자는 반드시 짐과 이 대통령의 이 후회를 기억해야 하오.
백성을 버린 군왕은 끝내 백성에게 버림을 받는 법이오.






통치자의 어깨 위엔 권력이 아닌 백성이 있소이다.


여보시오, 이대통령.
그대는 꽤나 긴 시간 권좌에 앉았던 것으로 기억하오.
다 가졌다 여기는 사람들은 내려놓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법이지...
짐이나 이대통령이나, 우리는 절대 크고 많은  가졌던 사람들이 아니란 걸 알았어야 했소.

다만 우린, 무거운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었소.

백성과 나라를 돌보는 임무는 하늘이 내린 중책이니, 이 자리에 앉는 이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 무거운 책임과 도덕성이오.

도덕이란 단지 겉치레나 격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백성을 사랑하고 그들의 고통을 나누려는 마음이어야 할 것이오.

군왕은 백성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백성의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진 자요.

이 대통령도 그 무게를 느끼셨을 것이니, 우리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자책의 무게만큼이나 도덕과 책임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새겨야 하오.


오늘날의 통치자는 더 이상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는 자리가 아니라, 백성의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소망을 실현하는 자이어야 하오. 이 시대 참된 권력의 주인은 더 이상 군왕이 아니며, 대통령도 아니오.

권력은 백성에게 있소.

그들이 진정한 주인이며, 지도자는 그 권력을 빌려서 잠시 그들의 뜻을 대신할 뿐이오.

짐은 그 점을 깨닫지 못하고 왕으로서 권력을 남용하였던 지난날을 크게 후회하오.

이 대통령 또한 그 점을 잊지 말고, 통치자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깊이 성찰하셨길 바라오.




백성과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은 그들 스스로가 증명했소


나라의 주인이 백성이고, 국민이란 것은 그대와 내가 겪은 전란 외에도 수 백, 수 천번 견뎌낸 외적들과의 전쟁에서 증명되었소.

짐과 그대가 '나의 나라'를 두고 도망할 때, 이 땅의 백성들은 '우리의 나라'를 지키겠노라 분연히 일어나 맞서 싸웠소.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들은 주인으로서 이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섰음을 역사가 기록하고 있소.

그들이 주인임을 그들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있소.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할 부끄러움은 바로 여기에 있소이다.


짐이 임진년의 비극을 돌이켜 볼 때, 무엇보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이름 없는 백성들의 헌신이오.

짐이 도읍을 버리고 의주로 떠날 때,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들을 기억하시오?

신분이 낮아 이름조차 역사에 남지 않은 노비와 백정들, 그리고 농민들이었소.

그들이 손에 든 것은 녹슨 농기구에 불과하였으나, 그들의 마음속엔 나라를 지키려는 순수한 의지와 충정이 있지 않았소?

그들에게 돌아올 영광이나 보상이 없음을 알면서도, 오직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몸을 던졌던 이들의 용기를 짐은 잊을 수 없소.

백성들은 짐을 일컬어 '나랏님'이라 불렀지만, 진정한 나라의 주인은 백성들 자신임을 그들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킴으로써 증명해 내었소.

우리의 도둑 도망길이 한 없이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이유요.

짐은 그들을 제대로 기리고 높이는데도 소홀했소. 돌아보면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오.

짐은 피란길을 함께한 신하들에게는 공신의 칭호를 내렸고, 그들의 충성에 보답하였으나, 정작 가장 먼저 나서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이름 없는 백성들은 어찌 되었소?

그들의 공로는 말없이 묻혀버리고,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은 제대로 기억되지 못했소.

이는 짐의 크나큰 잘못이오. 통치자로서 백성을 버린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헌신을 외면한 것이었소.

짐은 그 점에서 깊이 반성하며, 그들의 희생을 기리기에 때가 너무 늦었음을 통탄하오.


이 대통령 또한 6.25 전쟁 때 백성들과 군인들의 피땀에 힘입어 나라를 지켜냈소.

어린 학도병들은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총을 들었으며, 멀리 이국에서 온 유엔군 16개국의 군인들이 자신의 나라와는 무관한 전쟁에 목숨을 바쳤소.

그대에게 묻겠소.

그대는 죽음으로 헌신한 이들의 희생을 진심으로 기리고 그들의 희생에서 사무치는 교훈을 얻었소?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내 도망이 백성들에게 다시는 반복되는 실망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 맹세하고 다짐해 본 적이 있으시오?

안타깝게도, 이 대통령께서는 그들의 눈물과 피를 자신의 독재를 연장하는 도구로 삼았소.

백성들의 절망 속에서도 스스로의 권력만을 돌보려 했던 결과, 결국 국민들에게서도 버림을 받았지 않았소?


짐이 스스로를 돌이켜보건대, 전쟁 중에나 전쟁 이후에나 백성을 등진 지도자는 그 끝이 참담할 수밖에 없소.

통치자는 백성의 고통을 보고도 외면하지 말아야 하며, 특히 죽음으로 희생한 이들헌신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오.

하지만 짐은 그러지 못했고, 그로 인해 짐의 세는 역사의 비난을 피할 수 없소.

이 대통령 또한 그 점에서 짐과 다를 바 없었소.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반드시 배워야 하오.

나라의 주인된 백성을 저버린 지도자는 결코 역사 앞에 떳떳할 수 없소.

반드시 심판받게 되오.

역사와 나라의 주인된 백성들에게 말이오.






우리 모두 실패한 통치자요.


짐은 전쟁 중에 백성을 버리고, 그들의 헌신을 저버린 군왕이었고, 그대 또한 전쟁의 와중에 국민의 희생을 외면하고, 독재의 길로 들어섰던 대통령이었소.

우리는 각자의 시대에서 백성에게 신의를 지키지 못하였고, 그로 인해 우리의 통치는 치욕과 후회로 남게 되었소. 역사는 우리를 무책임한 위정자로 기록할 것이며, 그 책임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오.

그러나 짐이 이 서신을 보내는 이유는, 짐과 그대의 실패를 후대의 지도자들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오.

통치자는 그 자리에 앉기 전에 자신의 무게를 알아야 하며, 백성의 삶을 책임지는 자라는 것을 늘 가슴에 새겨야 하오.

짐은 그 점을 뼈저리게 깨달았소.

그러므로 짐과 그대의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후대의 지도자들에게 당부하오.

백성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고통에 민감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삶을 희생시키는 일이 없도록 말이오.

진정한 통치자는 자신의 권력이 아닌 백성의 안녕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오.

짐과 그대의 실패가 미래의 지도자들에게 하나의 교훈이 되길 바라오.

후세의 지도자들이 우리와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짐은 간절히 소망하오.


영화 속, 드라마 속, 소설 속, 세상 사람들의 입과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부끄럽고 치욕적인 과오를 저지른 통치자로 오르내릴 것이오.

마땅히 감당해야 할 우리의 뼈아픈 책임이오.

우리의 잘못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져 결국 역사의 기록에 최악의 군주와 최악의 독재자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오롯이 부인할 수 없는 우리들의 부덕함이고, 우리들의 사리사욕 떄문이었음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부디, 우리 백성과 나라의 미래가 역사로부터 배운 교훈으로 다시는 우리와 같은 지도자들과 만나지 않기만을 간절히 소망하오.
그대와 나, 역사 앞에 참회하는 마음으로 부끄럽지 않은 후손들의 역사와 미래를 응원해 줍시다.
부디 이생(異生)에서 내내 강녕하시오.  



- 임진년의 부끄러운 역사로부터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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