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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테크리스토르 Oct 18. 2024

당신 글에서 시대의 그림자를 읽습니다.

- 독립운동가 이육사 시인이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




이육사 ( 1904.4. 4~ 1944. 1. 16)

내게 있어 시(詩)는 저항의 몸짓이자 투쟁이었습니다.


한강 작가님,

조국의 해방을 1년 여 목전에 두고 세상을 떠난 나는, 삶과 시를 일치시키며 살았던 독립운동가였습니다.

해방된 조국의 소식을 지하에서 들었어도, 난 직접 귀로 듣고 피부로 체감치 못한 기쁨일지언정 더이상 원없을만큼 기쁘고 벅찬 마음이었음을 잊지 못합니다.


나는 총칼이 앞을 가로막는 세상, 그 거친 시절 언어를 무기 삼아 싸웠습니다.

단어 하나하나에 조국의 미래와 독립의 의지를 걸고, 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치열하게 글을 썼지요.

나의 시(詩)는 우리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우리 민족의 혼이 꺼지지 않았음을 알리는 작은 등불 하나라 여겼기에, 난 그 불빛을 이어 가는데 온 생을 다 해 애쓰며 살았던 시인이었습니다.

내가 꿈꾸던 것은, 그저 마음껏 우리의 말과 글로 우리 민족의 독립과 평화와 번영을 시와 문장으로 읽고 쓰고 말하는 세상과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것 뿐이었습니다.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우리말과 글의 성취입니다.


세계가 한강 작가님의 문학적 성취와 작품을 높이 기려 노벨 문학상을 수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대가 이룬 성취는 참으로 벅찬 감동입니다.

그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나에게 있어 마치 한없이 깊은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동터오는 새벽빛을 보는 듯한 감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우리말로 쓰인 문학작품이 세계에서 그 빛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일제강점기 시절을 살았던 나에게는 그저 꿈 같던 일이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우리말과 글조차 억압받던 그 암울한 시절에도 나는 그 언어로 시를 쓰며 저항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내 시가 총칼을 막지는 못했지만, 우리 민족의 혼과 정체성을 지키는 최후의 방패가 되어주기를 바랐지요.

내가 살아있던 시절, 나는 우리 글자 하나하나에 모든 희망과 의지를 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말조차 제대로 내뱉을 수 없을 때, 시는 내 유일한 목소리였습니다.

그 시절 우리말로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 민족의 영혼을 지키는 일이었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굳은 맹세였지요.


그런데 이제 그대는 그 아름다운 언어로 세계 무대에 서서, 이제 더 많은 이들에게 우리 말과 글이 지닌 힘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대의 발자취가 세계의 문학 속에서 우리말의 존재감을 더욱 굳건히 하고 있음을 생각하니,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낍니다.

그대가 쓴 글 속에서 나는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힘을 다시 느낍니다.

그대의 글은 단순한 문학적 성취를 넘어, 우리말의 가능성과 그 무한한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는 단지 한 작가의 승리가 아닌, 우리 민족 전체의 승리이며, 그대는 그 주역으로서 빛나고 있습니다.





문학은 시대를 일꺠우는 힘을 지닙니다.


나는 다시금 그대의 책을 손에 들고 천천히 읽어 내려갑니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 같은 책을 통해 그대가 꺼내 보인 우리 현대사의 상처들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닙니다.
나는 그대의 글에서 고통을 넘어서려는 인간의 투쟁과 끊임없는 질문을 읽었습니다.
그대는 지금의  사람들이 느끼는 시대의 아픔을, 그리고 과거의 시대가 남긴 트라우마를 세세하게 그리고 있으니, 암울했던 나의 시대를 떠올리며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소년이 온다> 에서 그대가 묘사한 광주의 비극은, 그곳에 있었던 수많은 아이들의 고통을 마치 내 눈앞에 그려내듯이 생생히 전하고 있습니다.
그 비극은, 내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전쟁의 상흔입니다.
나와 나의 동료들은 일제라는 외세에 맞서 싸웠지만, 그대의 시대에는 같은 민족끼리 분열하고 싸우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그대가 그 상처에 대해 쓰면서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지 짐작이 됩니다.
나는 시대의 상처 앞에서 무력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이 글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분명한 경종과 위로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대의 소설을 읽으며 깨닫는 것은, 문학이 시대의 상처를 드러낼 때 그 상처가 단순히 아픔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학은 그 상처를 마주하게 만들고, 그 상처를 넘어서야 한다는 책임을 독자들에게 일깨웁니다.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시를 썼습니다.
내가 쓴 시가 단지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의 목소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시나 소설 같은 문학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서 시대를 일깨우는 힘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치유와 통찰의 이야기로서의 문학


문학이란 단지 과거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 자신을 다시금 발견하게 만듭니다.

문학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질문하게 되지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그대는 그러한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에게 한 시대의 상처를 되새기고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대의 질문 속에서 나의 과거와 그대의 시대가 연결되는 순간들을 찾게 됩니다.


한강 작가님, 그대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우리 민족의 상처와 그로 인한 깊은 고뇌를 마주하게 하고 있습니다.

나 또한 그대와 같은 사명감을 가지고 시를 썼습니다.

우리가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듯, 그대는 우리 민족이 겪은 분열과 상처, 그리고 그 후유증을 문학을 통해 다시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은 상처는 결코 작지 않지만, 그 상처를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대의 소설은 지금까지 억눌리고 외면했던 진실을 드러내고, 그 진실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깨웁니다.

나의 시가 그랬듯이, 그대의 글도 시대를 넘어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줄 것입니다.

우리가 한 시대를 살며 싸웠던 방식은 다를지언정, 우리 둘은 문학이 시대를 깨우고 사람들의 영혼을 일깨우는 가장 강력한 도구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 민족의 상처를 들춰내셨습니다.

그대의 글 속에는 마치 내 시 속에 깃든 것과 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민족의 슬픔과 분노,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끈질긴 생명력이 담겨 있습니다.


어찌하여 역사는 반복되며, 어찌하여 우리 민족은 그리도 많은 상처를 겪어야 했는지. 그대의 글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그 고통을 상기시키며, 또한 그 고통을 넘어설 힘을 우리에게 부여해 주고 있습니다.

내게 있어 독립은 물리적인 해방뿐만 아니라, 민족의 영혼을 되찾는 것이었듯이, 그대가 쓴 글 역시 인간의 본질과 생명에 대한 탐구를 통해 우리 민족이 지닌 내면의 힘을 일깨워주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내가 바라던 조국은 끝내 그대의 시대에 이르러 그 빛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대가 보여주듯, 우리 민족이 지닌 상처는 아직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상처를 다시 들춰내며 그 깊이를 직시하는 것이 때로는 고통스럽더라도, 그대는 한 줄기 빛을 내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 빛은 내가 가졌던 민족의 혼과 의지를 이어받아, 이 시대를 넘어 더욱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둘러싼 이념간 분쟁과 논란


세월이 흘렀건만, 우리의 역사는 여전히 분쟁 속에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조국을 되찾겠다는 마음 하나로 모든 것을 내던졌던 동지들과 나는, 오직 그날만을 기다리며 살아왔습니다. 독립이라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그저 나라를 되찾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말과 글, 우리 정신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시 한 줄 한 줄을 써 내려 갈 때마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숨을 불어넣으며 느꼈던 벅찬 마음은 아마 그대가 우리말로 글을 쓸 때도 느끼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논란과 분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동지들에 대한 평가가 서로 엇갈리고, 그들이 꿈꾸던 나라에 대한 해석마저 갈라지는 이 상황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은 한 가지 신념을 가졌습니다.

그 신념은 이념이나 사상에 앞서, 우리의 나라, 우리의 말, 우리의 혼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근본이었지요.

그 정신을 훼손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피와 땀, 목숨을 바쳐 그 혼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 혼을 지키기 위해, 지금의 시대에 갈등이 있는 후손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족의 정신입니다.


한강 작가님, 그대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대의 글로,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그 본질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일제의 압박 속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잃어갈 때, 우리는 그것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독립을 이룬 지금, 역사를 두고 서로 다투고 나뉘는 것은 민족의 혼을 다시금 상처 입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념과 사상이 다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켜낸 이 땅과 말, 그리고 문학은 오롯이 우리 민족의 것이라는 사실만은 모두가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시대에 저항한 시인이고, 당신은 시대의 그림자를 응시하는 작가입니다.


오늘날, 그대가 쓰는 우리말로 된 문학작품은 그 어떤 것보다도 귀한 보배입니다.

우리가 지키기 위해 싸운 바로 그 언어로, 그대가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으로 다가옵니다.

그대는 이 감격을 품고 계속해서 우리말로,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주십시오.

이는 곧 우리 민족의 혼을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분열과 논란 속에서도, 우리 모두의 정신이 깃든 이 말과 글이 오랜 세월 동안 민족의 자존심으로 남아 있기를 기원합니다.

나는 그대가 앞으로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깊이 있는 통찰과 치유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 믿습니다.

문학의 힘을 통해 우리는 시대를 이겨낼 수 있고, 그 힘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빛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나 또한 이 믿음을 가지고 내 글을 남겼습니다.

나는 시대에 저항하기 위해 시를 썼고, 그대는 시대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응시하며 소설을 썼습니다.

부디 문학으로 시대를 지켜가는 일을 계속해 나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한강 작가님, 그리고 문학계에 몸담고 있는 모든 작가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말로, 우리 글로, 우리 혼을 담은 작품을 계속해서 만들어 주십시오.

그대들은 이미 그 길을 걷고 있으며, 그 길의 끝은 지금보다도 더 밝고 찬란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한때 땅을 잃었고, 언어마저 위협받았으나, 우리는 결코 그 언어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그 언어로 쓰인 글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일입니까!




나는 시인이었고, 시대를 노래하며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대들이 그 시대의 상처와 그 너머의 이야기들을 더 깊이, 더 넓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대들의 글은 우리의 자존심이며,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우리말로 된 문학작품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랑받기를 기원합니다.

문학은 시대를 잇는 힘을 가졌습니다.

그대들이 우리말로 쓴 글이 계속해서 시대를 넘어, 다른 세대와 다른 민족에게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그대들은 우리 민족의 목소리로 세계에 말을 거는 이들입니다.

그 목소리가 끊이지 않기를, 그리고 더욱 아름다운 목소리로, 깊이 있는 이야기들로 세계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민족의 미래를 향해 펼쳐질 세계를 향한 더 넓은 광야에선, 우리의 말과 글로 목놓아 부르는 백마탄 초인의 아름다운 노래만이 가득차길 바랍니다.

그러면, 오래 전에 가난한 노래의 하나 뿌리고 스러진 보잘 없는 시인 하나의 삶도 꽤나 보람있고 흡족할 것 같습니다.


그대들의 길에 늘 영광과 감동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 민족의 언어로 시대를 깨우는 자로서 그대를 응원하며,  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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