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산증(Dyscalculia)에 관하여
너는 왜 이렇게 간단한 덧셈도 못 하니? 노력이 부족한 거 아니야?
수학 문제집 앞에서 쩔쩔매는 아이를 보며, 우리는 답답함을 넘어 때론 화를 내기도 합니다. 남들은 몇 번만 연습하면 척척 해내는 구구단이 왜 우리 아이에게는 그토록 높은 벽처럼 느껴질까요? 많은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이를 단순한 '집중력 부족'이나 '공부 머리'의 문제로 치부하곤 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게으른 것이 아니라, 뇌가 숫자를 인지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면 어떨까요? 전체 아동의 약 3~6%가 겪고 있다는 '난산증(Dyscalculia)' 혹은 수학적 학습 장애(MD; Mathematical Disability)를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De Smedt et al., 2019). 이 아이들의 뇌 속에서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치열하고 혼란스러운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뇌과학자들은 난산증 아이들의 뇌가 수학을 마주할 때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을 펼쳐왔습니다.
"너무 시끄러운 뇌" (과활성화 이론)
어떤 연구자들은 난산증 아이들의 뇌가 일반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이, 비효율적으로 작동한다고 보았습니다. 쉬운 문제를 풀 때도 뇌의 여러 부위가 과도하게 활성화된다는 것이죠(Davis et al., 2009). 이는 아이들이 효율적인 계산 전략(예: 구구단 외우기)을 쓰지 못하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는 것과 같은 원시적인 방법(Counting strategies)에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Rosenberg-Lee et al., 2015). 마치 고속도로를 놔두고 굳이 험한 산길로 돌아가느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침묵하는 뇌" (저활성화 이론)
반면, 정반대의 연구 결과들도 있습니다. 난산증 아이들이 수학 문제를 풀 때, 숫자를 처리하는 핵심 뇌 부위인 두정엽(Parietal lobe)이나 언어 영역이 제대로 켜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Berteletti et al., 2014; Ashkenazi et al., 2012). 남들은 숫자를 보면 뇌의 엔진이 힘차게 돌아가는데, 이 아이들의 엔진은 시동조차 제대로 걸리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죠.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2022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10~15세의 수학 학습 장애 아동 20명에게 2주간 집중적인 곱셈 훈련을 시킨 뒤, fNIRS(기능적 근적외선 분광법)로 뇌의 변화를 관찰했습니다(Soltanlou et al., 2022).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훈련 후 아이들의 뇌는 "더 활발하게, 더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쉬운 곱셈의 경우 언어와 기억을 담당하는 측두-두정엽(Temporo-parietal regions)의 활동이 증가했습니다. 반면 어려운 곱셈의 경우 수량과 공간을 처리하는 두정엽(Parietal regions)의 활동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다시 말해, 정상적인 발달 경로를 따랐다는 뜻인데요. 일반적인 아이들은 익숙해질수록 뇌를 덜 쓰며 '효율성'을 찾아가지만(Soltanlou et al., 2018b), 난산증 아이들은 훈련을 통해 비로소 필요한 뇌 부위를 제대로 동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집중적인 수학 훈련을 받은 아이들이 단순히 요령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수학을 처리하는 정공법(뇌의 핵심 네트워크)을 재건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연구 결과는 난산증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는 종종 수학을 못하는 아이가 뇌를 덜 쓰고 있다고, 혹은 엉뚱하게 딴 생각만 한다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 아이들의 뇌는 그동안 '작동하지 않던' 회로를 연결하기 위해, 그리고 남들보다 뒤처진 출발선을 따라잡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학 훈련을 거친 뒤 정상적인 발달 경로를 따라 뇌 활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아이가 드디어 숫자를 '제대로' 다루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희망적인 신호입니다.
앞서 간단하게 말씀 드렸지만, 수학은 단지 '수'를 다루는 학문이 아닙니다. 아라비아 숫자와 같이 시각적인 정보도 알아야 하고, 덧셈과 뺄셈, 곱셈과 나눗셈 같은 규칙을 이해하고 암기해야 하죠. 너비나 길이의 개념은 공간지각력을 요하고, 미적분이나 함수 같이 추상적인 수학 개념을 이해하려면 고차원적 인지 능력이 필요합니다. 즉, 수학은 '수'와 관련된 종합 예술입니다. 그런데 뇌에서 '수'를 다루는 능력 자체가 부족한 난산증 아동의 경우,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단지 노력이 부족했던 게 아니었던 것이죠.
무엇보다 충분한 수학 훈련을 거치면, 정상적인 뇌 발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난산증 아동이 또래보다 셈이 느리고, 시계 보는 것을 어려워하더라도 실망하거나 다그치지 말아 주세요. 아이의 뇌는 지금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캄캄했던 뇌의 구석구석에 불을 밝히기 위해 치열하게 공사 중입니다. 2주라는 짧은 시간에도 아이들의 뇌는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뇌의 놀라운 가소성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 Ashkenazi, S., Rosenberg-Lee, M., Tenison, C., & Menon, V. (2012). Weak task-related modulation and stimulus representations during arithmetic problem solving in children with developmental dyscalculia. Developmental Cognitive Neuroscience, 2, S152–S166.
• Berteletti, I., Prado, J., & Booth, J. R. (2014). Children with mathematical learning disability fail in recruiting verbal and numerical brain regions when solving simple multiplication problems. Cortex, 57, 143–155.
• Davis, N., Cannistraci, C. J., Rogers, B. P., Gatenby, J. C., Fuchs, L. S., Anderson, A. W., & Gore, J. C. (2009). Aberrant functional activation in school age children at-risk for mathematical disability: a functional imaging study of simple arithmetic skill. Neuropsychologia, 47(12), 2470–2479.
• De Smedt, B., Peters, L., & Ghesquière, P. (2019). Neurobiological origins of mathematical learning disabilities or dyscalculia: a review of brain imaging data. In: International handbook of mathematical learning difficulties (pp. 367–384). Springer.
• Iuculano, T., Rosenberg-Lee, M., Richardson, J., Tenison, C., Fuchs, L., Supekar, K., & Menon, V. (2015). Cognitive tutoring induces widespread neuroplasticity and remediates brain function in children with mathematical learning disabilities. Nature Communications, 6, 8453.
• Rosenberg-Lee, M., Ashkenazi, S., Chen, T., Young, C. B., Geary, D. C., & Menon, V. (2015). Brain hyper-connectivity and operation-specific deficits during arithmetic problem solving in children with developmental dyscalculia. Developmental Science, 18(3), 351–372.
• Soltanlou, M., Artemenko, C., Ehlis, A.-C., Huber, S., Fallgatter, A. J., Dresler, T., & Nuerk, H.-C. (2018b). Reduction but no shift in brain activation after arithmetic learning in children: a simultaneous fNIRS-EEG study. Scientific Reports, 8(1), 1707.
• Soltanlou, M., Dresler, T., Artemenko, C., Rosenbaum, D., Ehlis, A.-C., & Nuerk, H.-C. (2022). Training causes activation increase in temporo-parietal and parietal regions in children with mathematical disabilities. Brain Structure and Function, 227, 1757–1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