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매니저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지난 주말 최근 화제의 드라마인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보면서 익숙한 장면을 마주했습니다. 김부장은 팀원들에게 보고자료 만드는 것을 위임할테니 알아서 만들어 기안을 올려도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중간에 있는 팀원인 과장이 구태여 “최종 보고자료니 한번만 검토 부탁드립니다.” 라고 요청하자, 상황이 달라집니다. 김부장이 PPT 자료를 열어 하나씩 검토하기 시작하고, 작은 디테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결국 폰트부터 그래프의 색깔까지 세부적인 수정지시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의견만 들어보려 했던 구성원들은 점점 수세에 몰리며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라는 지시를 감당하기 어려워합니다. 처음엔 위임받는다고 생각했던 업무가 순식간에 지시사항의 나열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의미있는 문제해결에 구성원들이 몰입하기 보다는 보고자료를 만드는데 여러사람이 매달려 시간을 과도하게 투입하는 모습. 어딘지 모르게 익숙합니다.
맞습니다. 이 장면은 마이크로매니징의 전형적인 클리셰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이것은 김부장 개인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조직 전체의 문제일까요?
마이크로매니징이란 무엇일까요? 마이크로매니징은 단순히 꼼꼼한 리더의 성향이 아니라, 구성원의 직무 오너십을 일상적으로 침식시키는 패턴을 의미합니다. 즉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조직장의 작은 개입들이 모두 마이크로매니징은 아닙니다. 마이크로매니징이란 조직장이 구성원의 업무에 세세하게 지시하고 관리하는 행동이 일상화된 상태로, 구성원의 직무 오너십을 훼손하는 수준까지 발전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특히 솔선형 리더십이나 지시형 리더십과 만날 때 더욱 강화됩니다. 다니엘 골먼은 6가지 리더십 스타일 중 지시형과 솔선형 두 스타일이 조직풍토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단기적으로는 명확성을 높일 수 있지만 특히 자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몇 년 전 한 회사에서 리더십 스타일 서베이를 진행한 사례가 있습니다. 많은 구성원들이 조직장의 대표적인 리더십 스타일을 '지시형'이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조직장 본인은 스스로를 '코칭형'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조직장은 코칭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구성원들은 지시라고 느꼈던 것입니다. 지시와 코칭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현상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구성원의 입장에서 '선택권이 있다고 느껴진다면' 코칭형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조직장의 의견을 그대로 따라야만 하는 것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지시가 되는 것입니다.
마이크로매니징이 초래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구성원의 직무 오너십 훼손입니다. 구성원이 더 이상 자신이 하는 일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변한다는 의미입니다. 처음에는 조직장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러한 요구가 지속되면 구성원들은 “어차피 지적하실 텐데 적당히 혼나지 않을 정도로만 하자”라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결국 구성원은 조직장의 입만 바라보는 수동적 존재가 되고, 피터 드러커가 말한 ‘활동의 덫’에 빠져 중요한 목적을 잃은 채 일상적 활동에 매몰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고성과가 창출될 수 없으며 구성원 또한 성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더 이상 오너십을 기반으로 ‘자율과 책임’을 발휘하는 팀이 아니라, 오직 조직장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는 팀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흔히 마이크로매니징은 개인의 성격이나 습관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구조가 조직장의 불안을 자극할 때 훨씬 더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즉 마이크로매니징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시스템의 산물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조직장이 불안을 느끼게 되는 환경은 무엇인가?” 마이크로매니징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조직의 현상들을 모으면 공통된 특징이 드러납니다.
첫 번째는 목표 기반 성과관리의 문제입니다. 성과를 조직차원에서 의미 있는 문제 해결이 아닌, 목표라는 미명하에 상사의 기준치를 만족시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과가 조직의 문제 해결이 아닌 상사의 기준 맞추기로 축소되면 디테일 수준까지 통제하려는 조직장의 행동이 강화됩니다.
두 번째는 더 나아가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승진, 급여 등 외재적 동기와 직접 연계되는 인사제도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조직장은 더욱 불안해집니다. 마이크로매니징을 하지 않았을 때의 리스크가 더 크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보고와 품의에 의한 기안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 속에서는 실행하는 사람과 책임지는 사람이 구분됩니다. 겉에서 보면 구성원은 실행만 하고, 결재라인에 있는 조직장들이 책임을 지는 구조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조직장이 책임회피를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든 것을 세세하게 개입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마이크로매니징을 조직적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대표적인 조건입니다.
그렇다면 마이크로매니징이 일상화된 조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개인의 각성보다 구조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1) 목표가 아닌 전략 중심으로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리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표 숫자를 채우는 것에 집착하는 대신, 전략을 중심으로 구성원을 통합시키고 정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직무 R&R(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규명하고 상시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구성원이 자신의 영역에서 주인이 되어 창출해야 할 성과를 탐색하는 영역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3) KPI를 평가나 통제 수단이 아닌 성과 창출에 도움이 되는 정보제공의 대시보드 성격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4) 의사결정의 권한을 담당자에게 이양해야 합니다. 실행하는 사람이 의사결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5) 1on1을 상시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구성원이 나무가 아닌 숲을 보면서 일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6) 360도 피드백을 통해 성과 창출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심리적 안전감을 형성해야 합니다. 7) 성과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대안'으로 정의하고 고성과에 대해서 조직적으로 학습해나갈 수 있는 성과평가, 그리고 고성과창출에 필요한 역량을 규명하고 개발하는 체계가 필요합니다.
정리하자면, 마이크로매니징을 하고 있다는 것은 조직장이 레버리지가 큰 일에 집중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조직장으로서 효과성 있게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기인식을 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에 갇혀있을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조직장이 조직장다운 일을 하는 것, 즉 자기 자리를 잘 지키는 것이 바로 구성원이 구성원의 자리를 잘 지킬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애자일의 할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제럴드 와인버그는 조직장의 역할을 이렇게 함축적으로 설명합니다. '구성원이 자신의 똑똑함을 드러낼 수 있게 하라.' 이 말은 모든 조직장이 새겨두어야 할 조언입니다. 마이크로매니징은 결코 구성원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조직장 스스로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에 불과합니다.
만약 팀에서 사소한 검토 요청에도 자꾸 손이 가고, 구성원들이 점점 수동적으로 변하며, 당신의 개입 없이는 업무가 흘러가지 않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구성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조가 조직장을 마이크로매니저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조직에서 마이크로매니징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면, 변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단순히 조직장 개개인의 취약함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기거나, 개선하기 위해서 조직장의 성찰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인사관리 시스템 자체를 재설계해야 합니다. 조직장이 메타인지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회고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마이크로매니징에 빠지기보다 구성원의 성과창출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한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건강성을 지키고, 구성원의 잠재력을 발휘하게 하는 조직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