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12월 20일 오프라인 모임 '커글(커피 마시며 글쓰기)' 후기
글쓰기는 외롭다. 주변 사람들과 단절되어 나의 내면만을 응시하면서 텅 비어있는 하얀 지면에 한 글자 한 글자씩 겨우 채워나가는 작업. 그 과정은 때론 만족스럽기도 하지만 대개는 고단하고 고독하다. 완성한 글이 영 시원치 않아서, 이런 글을 브런치에 올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는지 회의감이 밀려올 때도 많았다. 그래서 내 글에 누군가가 '라이킷'을 눌러주고, 어떤 마음 고운 분께서 '댓글'까지 써주신 날에는 마음이 날아갈 듯 기뻤다. '라이킷'의 붉은 하트를 보면 적막했던 내 브런치 글방에 마음 따뜻한 손님들이 잠시 머물다 간 온기가 느껴진다. 댓글에서는, 바쁜 일상 속에서 굳이 시간을 내어 '글 잘 읽었어요.' 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써주신 분들의 온정이 느껴져 뭉클해지기도 한다.
내 글에 '라이킷'이 몇 개 눌렸는지가 신경이 많이 쓰일 때도 있었다. 글을 올리자마자 라이킷이 백 개 이상 달리는 작가들이 부러운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내 글에 라이킷을 달아주신 분들의 브런치 글을 찾아 읽다 보니, 브런치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며 글을 쓰고 계신 지를 알게 되었다. 글을 쓰기도 바쁘신 분들인데, 매일 수많은 글들이 쏟아지는 브런치에서 내 글을 찾아 읽고 반응까지 보여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도 새삼 느꼈다. 그 이후로는 '라이킷'의 숫자에 연연하지 않았다. 단 한 분이라도 내 글을 읽고 작은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으면 족하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글을 잘 쓰고 싶었다. 그 비법을 배우고 싶어 틈이 날 때마다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을 읽었다. 놀라웠다. 삶의 고단함을 처연한 문장으로 풀어낸 수필, 읽기만 해도 책과 영화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에세이, 매력적인 인물과 스토리로 푹 빠져들게 만드는 소설, 삶의 순간들을 농축하여 촌철살인의 언어로 마음 깊숙이 찌르는 시까지... 궁금했다. 이렇게 멋진 글을 쓰는 분들은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까? 글은 어디서 배우셨을까? 무슨 마음으로 글을 쓰고 계실까? 할 수 있다면 찾아뵙고 그분들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작가님들 중 몇 분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Ubermensch 작가님이 브런치에 '커글(커피 홀짝이며 글 쓰는 사람들)' 모임을 공지로 올리셨다. 온라인에서만 뵙던 분들을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여서 무척 가고 싶었다. Ubermensch 작가님께 참가 허락을 받은 후 매일 설렜다. 모임 날짜가 가까워졌을 때 두 딸이 번갈아가며 입원을 하는 바람에 모임에 참여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자 아쉽다 못해 서러운 마음이 들 정도로 커글 모임을 갈망했다. 다행히 모임이 예정된 당일 아침에 딸이 퇴원을 했고 나는 황망히 서둘러서 가까스로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참여한 모임은 기대 이상이었다. 처음 만난 분들이었지만 브런치에 올린 글을 통해 친밀감을 쌓아왔던 덕분인지, 금세 낯섦을 벗어던지고 막역한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모임에서 만난 작가님들은 저마다의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참 따뜻하고 아이같이 순수하시면서 글쓰기에는 너무나 진심이셨던 임경주 작가님. 내면에 출렁이는 깊은 슬픔을 단단한 언어로 연마하시며 고유한 작품세계를 펼치시는 윤지안 작가님. 전 세계를 누비며 분주한 일상을 보내시면서도 매일 치열하게 글을 쓰시는 영업의신조이 작가님. 군인이시기에 열악한 처우를 감당하면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느끼는 속정을 글로 섬세히 풀어내시던 Sylvan whisper 작가님. 문학과 IT, 농업 등 다양한 분야를 차례로 경험하면서 다진 단단한 내면을 담담히 글과 말로 표현하시는 오로지오롯이 작가님. 올곧은 신념으로 부조리하고 안일한 세계에 일침을 가하시는 감백프로 작가님. 깊고 넓은 철학적 교양을 갖추셨으면서도 한없이 겸손하게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하시던 영진 작가님. 그리고 이 모든 분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함께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가기 위해 온갖 어려움과 시행착오들을 감당하셨던 Ubermensch 작가님까지... 모임에서 만난 작가님들은 글에서 느꼈던 매력보다 훨씬 깊고 풍성한 색깔들을 드러내셨다. 그분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에 깊이 매료되어 정신없이 듣고 있는데 문득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 떠올랐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
모임에 만난 작가님들은 저마다의 고단한 세상살이 속에서 흔들리고 젖는 아픔을 오롯이 견디며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분들이 피워내는 표정과 말, 행동들은 더없이 따뜻했다. 사람의 온기가 물씬 느껴지던 모임 자리에서 나는 브런치에서 글을 통해 만난 수많은 작가님들을 상상했다. 그분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흔들리고 젖으며 당신만의 줄기를 올곧게 세우고 계시겠구나. 그 줄기에서 따스하게 피어난 꽃잎같은 마음들을 고이 글에 담아 브런치에 올리시는 것이겠지... 숙연해졌다. 더 겸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브런치의 글들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작가님들... 그리고 독자님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존경합니다. 날로 삭막하고 날이 서가는 세상 속에서 글을 통해 사람의 온기를 더해가시는 당신께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습니다. 그 온기를 담은 글들을 기꺼이 읽어주시는 분들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P.S : Ubermensch 작가님. 귀한 모임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글을 더욱 열심히 쓰고 싶은 열망과, 삶을 더 제대로 살아가고픈 열정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모임 자리에서 작가님에게 짓궂게 장난을 쳤던 것 사과드려요. 온라인 대화에서는 격식을 차렸지만 직접 만난 자리에서는 작가님에게 왠지 철없는 삼촌처럼 굴어보고 싶었어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Ubermensch 여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