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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웨이 Apr 16. 2023

불안하면, 노인의 벤치 노래 한 곡

노년에  앉고 싶은 의자는?


이제 막 돌이 지난 손녀는 요즈음 발뒤꿈치를 들고 내 어깨를 기둥 삼아

잡고 서는 재미에 빠졌다. 아직은 균형 감각이 부족하여  위태위태 서 있다가  철퍼덕

주저앉아 엉덩방아를 찧고는 한다. 에고 아프겠다.. 잠시 혀를 차는 순간 이번엔  소파 위를 올라가려 애를 쓴다. 그 동작들이 쉬지도 않고 어찌나 잽싼지 손녀 꼬리를 따라가는 내 몸을 헐떡거리게 만든다. 요 쪼맨 한 것도 할머니 늙었다고 놀리나.. 어린애처럼 삐지다가도 지가 지금 해야 할 인생숙제가   서다, 걷기라는 걸 어찌 알고  온몸으로 숙제를 하고 있는 손녀가 신비하면서 대견해서 엄지 들고 최고라고 칭찬세례를 퍼붓는다.

 

생. 노. 병. 사


태어나 , 눕고, 뒤집고 엎어지다가, 기다가,  앉다가, 드디어 서고, 걸어서

 손녀는 손녀의 생(生)을 시작한 것이고


잘  걷던  다리가 자꾸 고장이 나서  자주 앉기 시작하는 나는 더 늙으면 결국 영영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누워서 (死)  나는 나대로 생을 마무리하고 사라지겠지.


태어나고, 사라지고.

철학이 , 종교가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이 바로 철학이고 불경인 것을....

젊은 시절은 내내 헤매다가 마지막에 와서야  깨닫는다.

 

작년 한 해 내 방안을 몇 번이나 미친 사람처럼 뒤집었다. 먼가 집안이 내 몸과 안 맞아 몹시 불편한데 그게  먼지를 몰라 죄 없는 가구들만 이리저리 옮겼다. 이 미친 행동은 네다리에 바퀴가 달려 자꾸 미끄러져 책상으로 멀어지는 의자를 퇴출 시키고, 대신 뒷다리 두 개는 바퀴 없이 고정시키고 앞면 두 다리에만 바퀴가 달린 의자로  바꾸고서야 끝이 났다. 너무 잘 굴러가는 의자가 느려진 몸은 버거웠던 것이다


더 나이 들면 나는 어떤 의자에 앉아야 할까?

망가진 몸을 달래주는 고급 안마의자?  딸기철에 온통 딸기 딸기인 디저트들만 모아 애푸터눈 티 세트를 파는 호텔 라운지의  라탄체어?, 이십만 유투버를 거느린다는  젊은이들보다 더 스타일리시하고 젊은  밀라논나 할머니의  인테리어용 멋진 의자?' 자연에 산다'에 나오는 자연인들 앉는 기 센 자연 바위 의자? 나? 나는

휠체어 의자만 아니면 된다고 마음을 비웠다.

   

 

김창완 밴드 공연에 갔다

배도 나오고  얼굴에 주름도 엄청 많고 70세 노인이 된  빨간 촌발 날리는 티셔츠 입은  김창완 님이 말했다

노후에  우리에게 필요한 의자는  말이지...

그건...



전국 투어 중이었다.

젊은 아이들처럼  파란 led 응원 봉을 하나 사들고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병이 꾀병 아닌가.. 의심들 정도로  뛰고  소리 지르고 손뼉 치며 응원하는데

마음이 완전히 무대에 빠져서 몸을 잊어버리고,  무언가 손이 허전해서 든 생각이다.

박수를 얼마나 쳤는지 얇아지고 건조해진 손바닥이 붉어지고 얼얼하다

저녁 무렵 이 시간이면  시작되는 강직과 통증이란 놈 대신.

몸과 마음에서 쿵쾅 콩 쾅.. 막혔던 마음 하수구 어디선가 뻥   뚫리고 몸이

물레방아처럼 잘 돈다


무엇일까? 윤도현 같은 힘도, 지드래곤처럼  끼도, 임재범의  허스키하고 터프하고 비장함도 못 가진  

 70대 늙은 할아버지의 세상에서 가장 낮은 목소리, 노래 같지도 않은 옹알이, 노래 같지도 않은 노래들.

오디션 보는  젊은 아이들 같은 서슬 퍼런 팽팽한 긴장감도 없을뿐더러 따라다니는 팬도 적은

그 밴드 노래가 죽어가던 내 감정들을 살려놓다니..


   

그 밴드가 노래하는 의자가 마음을 끌었을까?

그들이 노래했던 의자는...





벤치..

노인의 벤치였다.

공원에 있는.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예순둘은 예순둘을 살고
일곱 살은 일곱 살을 살지

 

- 김창완 밴드,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젊은이는 젊은이로 살고 노인은 노인으로 산다

젊은이의 사랑은 깨트리지 않는 꿈과 환상으로 이루어졌다면

노인의 사랑은 이미 지나온 추억과  이제는 폐기 처분된 낭만

-손의 노고와 시간 대비 가성비를 따지면 사는 게 더 싼 퀼트가방 같은 그래도 그 돈계산이

안 되는 아니 그 손해가 사는 의미라 생각하는 진지함.

  사랑을 보석이라 생각하는 순진함, 밝은 곳에서 주름살을 차마 못 바라보는 수줍음 -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늙은 나는 늙은 나를 산다

 젊고 스타일리시한 밀라논나 할머니는 밀라논나 할머니로 산다

나에게 젊어져라 하지 마라

나는  늙고 싶다. 제대로.. 제대로 늙고 싶다

자기 나이의 목소리로 자기 나이의 얼굴로 자기의 마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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