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과 기억, 그리고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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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제주의 바람은 유난히 이곳 대정에서 오래 머문다.
들판을 스치며 바다로 빠져나가는 그 바람은
언제나 어떤 이야기를 품고 지나간다.
그건 과거의 잔향이자,
아직 끝나지 않은 대정의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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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의 평야 한가운데,
묵묵히 서 있는 콘크리트 격납고들이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알뜨르 비행장이라 불리던 군사기지였다.
황량한 밭 위로 날아오르던 전투기들은
한때 이 땅을 제국의 전쟁터로 만들었다.
그 시절, 대정의 사람들은
자신의 밭에서 자라던 곡식이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 흙은 수탈당했고, 노동은 명령의 언어로 쓰였다.
오늘날 그 비행장은 초록빛 풀로 덮였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콘크리트 틈새로
그 시절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그건 아마도, 지워진 역사가 여전히 땅속에서 숨 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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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왔지만 자유는 오지 않았다.
1948년, 대정의 마을들은 또다시 불타올랐다.
이념이라는 이름 아래,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이 사라진 봄.
대정의 산과 밭, 바다와 집은 모두 불길 속에 휩싸였다.
누가 옳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살아남은 이들이
서로를 의심하지 않기 위해 침묵을 택했다.
그 이후로 대정의 바람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어른들은 말을 아꼈고,
아이들은 물어보지 않았다.
그 침묵이 세대를 건너며
하나의 ‘공기’처럼 마을을 감쌌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도
삶은 계속됐다.
사람들은 밭을 갈고, 아이를 키우고, 다시 집을 세웠다.
그건 저항이 아니라, 생존의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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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 뒤에도 군대는 남았다.
이 땅에 다시 강병대가 들어섰다.
젊은 병사들이 모여 훈련을 받고,
군사기지가 마을의 일부가 되었다.
그 시절, 대정의 주민들은
총과 함께 살아야 했다.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도왔다.
병사들에게 밥을 지어 나르고,
그들이 떠나면 다시 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생겨난 교회 — 강병대교회.
그곳은 총을 내려놓고 기도하던 병사들의 기억이 남은 곳이다.
지금은 평화로운 예배의 공간이지만,
그 종소리엔 여전히 **‘지켜야 했던 시대의 긴장’**이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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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이 사라진 자리에, 자본이 들어왔다.
송악산은 그 중심이었다.
푸른 언덕 위에서
‘보존’과 ‘개발’, ‘평화’와 ‘이익’의 논쟁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 논쟁은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이 땅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송악산은 알뜨르의 전쟁을 기억하는 산이고,
대정 사람들의 노동과 애환이 겹쳐진 장소다.
그래서 송악산의 싸움은
“무엇을 세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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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의 오늘은 겉보기에 고요하다.
길은 넓고, 밭은 단정하다.
사람들은 조용히 살고, 바다는 묵묵히 일한다.
그러나 그 평온함은 단순한 정적이 아니다.
그건 폭력과 상실을 통과한 땅이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과정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매일의 노동으로 역사를 이어간다.
모슬포항의 새벽 어부,
보성리의 농부,
상모리의 어르신,
그리고 촌피스의 청년들까지 —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땅의 시간 위에 ‘현재’를 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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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라기보다,
여전히 살아 있는 장소다.
여기엔 기억이 남아 있고,
그 기억은 다시 누군가의 삶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대정의 젊은 세대들은
과거의 침묵 위에서 새로운 말을 배우고 있다.
그들은 개발이 아닌 관계를,
소유가 아닌 공존을,
성장의 언어가 아닌 돌봄의 언어로 미래를 말한다.
그 속에서 대정은
다시 한 번 ‘살아 있는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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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 시간의 밭 위에 서 있는 사람들
대정은
식민의 기억, 전쟁의 상흔, 국가의 폭력, 개발의 상처를 모두 품고도
여전히 사람들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땅이다.
그 복합적이고 중첩된 시간 속에서
이곳의 사람들은 한 가지를 배워왔다.
“기억을 지운다고 평화가 오는 게 아니라,
기억을 견디는 힘으로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
대정의 바람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이 땅을 스치는 모든 바람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불어온다.
프롬프트 김나솔
글 ChatGPT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