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실습 : 노션으로 제텔카스텐 만들어 보기
제텔카스텐의 핵심은 지식의 연결이다. 왜,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야 할까? 단순하게 지식을 저장하는 것은 다른 쪽에 존재하던 지식이 이곳으로 장소만 옮겨올 뿐이다. 외부에 존재하던 지식이 나의 구글 킵이나 노션에 저장된다고 해서 얻어지는 장점이 무엇일까? 더 빠르게 접근할 수 있어서? 언젠가 지워질지도 모를 요긴한 지식을 내 안전한 거처로 옮겨올 수 있어서?
제텔카스텐이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지식의 단순한 저장보다 지식 간의 연결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연결이 뜻하지 않은 곳으로 자신을 인도해 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좋다고 치자. 저장된 수천 개의 지식들 중에서 어떤 지식을 골라 서로 연결하는 게 좋을까? 나로서는 제텔카스텐의 철학이 마음에 들었지만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감을 잡기 쉽지 않았다.
제텔카스텐의 지식들은 외로운 섬이 되고 싶지 않다.
제텔카스텐에서 지식들은 외로운 섬으로 버려지고 싶지 않다. 서로 심하게 간섭을 받고 싶을 지경이다. 말하자면 인정 욕구 주의라고 할까. 제텔카스텐에서 만든 지식은 단 하나 의미를 갖고 있다. 마치 독립적인 개체로서의 인간처럼 지식 역시 단편적이지만 엄연한 인격체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다.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성숙해 나간다. 지식 역시 그렇다. 단 하나의 주제를 지닌 지식은 인격을 지닌 주체로서 낯선 지식 들과 만나 더 깊고, 더 넓게 의미를 확장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태어나고 통찰력도 자란다.
외로운 섬들은 동떨어져 있지만 늘 관계에 목맨다. 의도하건 예기치 못한 우연이건, 섬은 연결되며 더 거대한 형태를 도모한다. 그런데 대체 어떤 외로운 섬과 관계를 맺어야 할지 판단할 수 없다. 섬 스스로 다른 섬에게 개입할 자유가 없는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인간의 개입이다. 모든 섬들을 관할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적인 지위를 가진 인간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귀납적 사고
인간으로서 나는 모든 섬들을 조망하고 있다. 섬들은 서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가까이 두는 게 좋을까? 좀 떨어뜨려도 될까? 내 손길이 미치는 범위는 어느 정도려나? 신이면서 그 정도나 가늠할 수 없는 건가. 신의 자격을 당장 박탈해야겠다. 섬 간의 거리를 설정하는 것도 쉬운 연결을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전략이다. 가까이 위치해 있다는 건 서로 연결됐다는 걸 의미하고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건 서로 연관성이 없다는 걸 뜻한다.
작은 섬은 하나의 지식이다. 지식은 다른 지식과 만나야 힘을 발휘한다. 서로 끈끈하게 유대 관계를 맺어야 대륙으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다. 자석처럼 서로 끌어당겨야 한다. 섬이 지식이라고 비유한다면 얼마나 많은 지식이 바다에서 만들어져야 그것들을 연결할 수 있을까. 또다시 고민이 찾아온다. 수천 개의 섬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는데, 연결할 방법은 고안해 내지 못했다. 역시 예기치 못한 우연에 기대야 할까.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으니 랜덤으로 몇 개씩 골라본다. 억지로 연결하곤 의미를 만든다. 그리고 우긴다. 어마어마한 통찰력을 발견했다고, 유레카! 정말로 제텔카스텐의 철학은 이렇게 작은 섬들을 하나하나씩 모아 큰 섬들을 만드는 거라고, 루만 교수는 강조했을까. 그래, 제텔카스텐을 논하는 인터넷 아티클과 유튜브 동영상, 옵시디언 책들은 그렇게 말한다. 작은 아이디어 조각을 모아서 더 큰 통찰력을 발휘하라고. 그런데 목표는 없는, 게다가 단편적이고 서로 관련이 전혀 없는 지식들을 아무 생각 없이 갖다 붙인다고 없던 통찰력이 저절로 생겨날까?
물론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다. ‘여러 학문을 통섭하는 게 중요하잖아. 인문학, 철학, 과학, 역사, 지리, 예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통섭하는 박문호 박사처럼 우리도 그런 통섭적인 사고를 해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하려면 다양한 분야의 책과 논문을 공부하면서 여러 생각들을 연결해야 한다고!’라고 당신은 나에게 이견을 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연구자가 아니다. 물론 연구자도 이 글을 읽긴 하겠지만, 나는 전적으로 작가가 되려는 꿈을 가진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논외로 치자.
놀라운 지식의 기록, 그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이것저것 작은 지식의 조각들을 메모해 놓고 하루를 마감할 때나, 일요일 자정에 그간 메모해 두었던 것들을 회고하며 이렇게 저렇게 연결을 도모해 볼 수는 있겠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세렌디피티라는 단어도 있으니 그렇게 우연하게 또 직관적으로 지식을 통합하는 과정이 우리의 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지도 모르니, 나는 그런 창의적인 방식을 무시하진 않는다. 그런데 나는 다른 방식으로 연결을 생각해 보고 싶다.
연역적 사고
지금까지 이야기한 지식의 연결 방식은 '귀납적 사고'를 바탕으로 했다. 보통 제텔카스텐에서 말하는 '상향식 연결'이다. 나는 작가로서 다른 방식을 제안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연역적 사고'다. 연역적 사고의 바탕은 주제의 결정이다. 주제는 명확하고 확고한 목표를 말한다. 예를 들어, 'PARA 프레임워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프로젝트다. 그 개념에서는 프로젝트가 우리의 인생을 이끄는 중심이 된다고 말한다. 프로젝트는 연역적 사고에서 '목표'를 뜻한다.
나는 2014년부터 블로그에 온갖 글을 써왔다. 취미적인 글이나 사소한 일상, 간혹 직장의 에피소드를 적기도 했다. 물론 구글 킵에 읽은 책들의 문장도 꾸준하게 기록했다. 아마 2~3년이 지난 시점에는 몇 천 개의 지식이 구글 킵에 생겼을 것이다. 그것들은 당연히 외로운 섬이었다. 그럴듯하게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 연결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주체적인 개입이 필요했으니까. 그런데 나는 대체 나의 삶과 기록된 지식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메모하는 거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에 연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작가’라는 타이틀, 즉 확고한 목표가 생기자 방향성이란 게 생겼다. '작가는 무엇인가? 작가는 어떻게 될 수 있는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당장 해야 하는가?' 작가에게는 당연히 주제가 필요하다. 작은 아이디어의 조각 들 중에서 옥석을 발견해야 한다. '무작정 메모들을 훑어내려 가야 하려나. 대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주제는 다시 말하지만 프로젝트의 다른 말이다. 작가가 되기 위한 모호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어떤 주제가 메인 테마가 될 것인지 결정이 되는 프로젝트이어야 한다. 그래서 작가가 가진 전문성(잘하는 것), 취미(좋아하는 것), 사람들의 관심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중에서 한 가지가 작가가 되기 위한 주제가 된다.
주제가 결정되면 할 일은 주제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모으는 것이다. 블로그에 모아놓은 글 조각들과 구글 킵에 메모해 놓은 아이디어와 글감들이 소재가 된다. 없다면 검색해서 자료를 모으면 된다. 주제에 연관된 작은 섬들이 거대한 섬으로 결집되는 순간이다. 목표가 명확하게 결정되면 필요한 정보나 역량을 집중적으로 다루게 된다. 다른 방식으로 비유해 본다면 큰 나무줄기에서 가지로 그리고 잎새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나무줄기는 큰 주제가 되고 거기서 뻗어나간 각각의 가지들은 구체적인 사례, 그러니까 주제를 위한 글감이 되는 방식이 바로 연역적 사고에 해당된다.
상향식 연결인 귀납적 사고의 한계
우연한 연결이나 직관에 의존하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바쁜 개미(?)이기 때문이다. 24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직장이라는 생업이 존재하는 사람에게는 하루 가용한 한두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그것이 아주 중요해진다. 그러니 계획 없고 목표 없는 기록보다는 정해진 목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지식을 찾아 기록하는 게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귀납적 사고, 그러니까 작은 메모들을 꾸준하게 연결하며 예기치 않은 발견, 직관에 기대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다만 프로젝트인 목표를 따라 생각과 시간을 소모하는 일을 최적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목표가 확고하게 설정되면 결론 역시 정확하게 도출할 수 있다. 예측이 가능하고 논리적으로 체계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텔카스텐은 노트에 다양한 생각과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연결해 가는 방식을 추구한다. 사실상 귀납적 사고다.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이것들을 서로 연결해 나가면서 더 큰 개념을 얻거나 지식을 쌓아가는 상향식 방식이다. 작은 지식들이 서로 연결되고 통합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찰하는 능력도 기를 수 있다. 직관적인 사고와 창의적인 아이디어 도출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초기에는 방향성이 불명확하고 막연하게 기록을 해야 하는 단점과 체계가 잡히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렇지만 연역적 사고에 입각한 제텔카스텐은 주제나 프로젝트를 결정해 놓고 목표에 이르기 위한 과정에 필요한 지식을 찾아서 그 주제에 살을 붙이며 지식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큰 주제 아래에는 작은 주제가 자리 잡고 작은 주제 아래에는 더 작은 개념을 가진 주제라 자리 잡는다. 큰 원리에서 작은 원리로 그러니까 마치 레고를 조립할 때, '반지의 제왕 바랏두르'처럼 목표를 결정하고 그 목표에 필요한 레고 조각들을 찾아 조립하는 방식이 연역적 사고의 바탕이다. 귀납적 사고는 레고 조각 무더기를 던져주고 그것으로 무엇이든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만들어보라고 주문하는 것과 같다.
글 한 편을 작성하는 상황을 보자
글을 한 편 작성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보통 글에는 글감이 존재한다. 우리는 글감을 정해놓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런데 글감을 위해서 사전에 여러 연관된 자료들을 수집한다. 기사와 논문, 다른 사람의 경험, 책 속의 문장 인용, 유튜브 등을 조사해 가면서 글감과 얼개를 맞춰나간다. 그 과정에서 작은 지식의 조각들을 모으게 될 거다. 모은 것들을 임시 메모나 문헌 노트에 기록해 놓는다. 연역적으로 글 한 편을 작성하는 방식은 먼저 글감(영구 노트에 해당)을 만들어 놓고 필요한 자료를 역으로 추적하면서 수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먼저 조합된 모델을 가시화시켜놓고 세부 조각들을 영구 노트에 자료로 수집하는 것이다. 영구 노트를 먼저 작성해 놓으니 임시 노트와 문헌 노트가 자동으로 작성된다. 아무런 목적도 없는 상태에서 의미 없이 임시 노트와 문헌 노트를 작성하며 그것들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고민하지 말고, 주제를 정하고 거꾸로 임시와 문헌을 확보하는 전략인 것이다. 이게 연역적이라 것. 나는 그렇게 노트를 작성하는 게 더 마음에 든다. 그게 더 실용적이고 작가가 되는 빠른 방법이 아닌가.
출판을 생각해 보자. 저자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모아서 책 한 권을 써낸다. 목차를 만들고 목차에 내용을 채워 넣어야 한다. 각 목차에는 글 제목과 키워드 글의 뼈대가 만들어진다. 그걸 만드는 과정에서 보통 키워드와 연관된 것들로 자료를 찾는다. 전혀 엉뚱한 키워드를 가져와서 힘들게 은유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관계된 자료들만 조사해서 글에 넣는다. 결국 책 한 권을 쓰는 일이란 개별 목차들을 완성하는 일이고, 개별 목차별 원고의 작성은 일관된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행위다. 그러니 연역적 사고를 할 수밖에 없다. 출판을 위한 목차의 작성과 원고의 작성은 필연적으로 연역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왜 출판 과정이 연역적일 수밖에 없는가?
목차 짜기
작가가 먼저 큰 주제나 아이디어를 설정하고, 그 주제를 세분화하여 각 챕터별 목차를 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이미 큰 그림(주제나 이론)을 갖고 있고, 그 큰 그림을 뒷받침할 세부 내용들을 채워 넣는다. 먼저 전체적인 개념이 설정되고, 그것을 지원하는 세부 요소들을 채우는 방식이다.
주제의 일관성
출판을 위한 글쓰기에서는 일관된 주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목차와 챕터는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유지해야 하고, 주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자료를 선택하고 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자료나 엉뚱한 은유를 사용하기보다는, 주제와 관련된 구체적 자료만을 조사하고 사용한다. 이러한 작업은 Top-Down 방식, 즉 연역적 사고에 적합하다.
글의 뼈대 구축
각 목차에 해당하는 글을 작성할 때도 작가는 이미 정해진 방향성에 따라 글의 뼈대를 만들어간다. 목차에 기반한 글의 흐름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흐름을 유지하면서 내용을 채워나가는 과정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다. 이는 구조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며, 연역적 사고와 맞물린다.
귀납적 사고의 가능성은 없는가?
물론, 출판 과정에서도 귀납적 사고가 아예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초반 기획 단계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단계에서, 여러 자료를 모아 새로운 인사이트나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귀납적 사고 역시 유용하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책의 구조가 설정되고 목차가 정해진 후에는, 연역적 사고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귀납적 사고는 더 창의적이고 탐구적인 초기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출판을 위한 실질적인 글쓰기와 내용 구성에서는 연역적 사고가 주된 방식으로 작동한다.
결론
출판 과정은 기본적으로 연역적 사고가 강하게 작용한다. 목차를 설정하고 그에 맞춰 체계적으로 글을 채워나가는 작업은 큰 주제에서 출발해 구체적인 내용을 완성하는 연역적 사고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귀납적 사고는 창의적 사고와 아이디어 탐색에 유리하지만, 책을 한 권 완성하는 작업에서 주제와 흐름을 유지하면서 논리적으로 전개해야 하기 때문에 연역적 사고가 더 자연스럽고 실용적인 방식일 수밖에 없다.
연역적 사고를 중심으로 책을 쓰면서도 창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큰 틀은 체계적으로 잡되 세부 사항에서는 자유로움을 허용하자. 이렇게 하면 논리적 흐름과 창의성 사이의 균형을 맞출 수 있고, 예상치 못한 발견과 아이디어가 생길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일관된 글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귀납적 사고로 메모를 쌓는다
매일의 경험, 독서, 토론 등을 통해 얻은 다양한 지식을 기록하고 이를 서로 연결하자. 이 과정에서는 주제나 방향이 자유로워야 한다.
연역적 사고로 목표를 설정하고 정보를 정리한다
특정 목표가 생겼을 때, 기존의 메모들을 중심으로 주제를 재조직하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방식으로 자료를 사용하자. 이 과정에서 기존의 지식이 목표와 논리에 따라 체계화된다.
결론을 도출하고 새로운 관찰로 돌아간다
연역적 사고의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결론은 다시 새로운 귀납적 기록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세 철학의 현대적 적용을 연구한 결과가 새로운 개념이나 질문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다시 귀납적 사고로 돌아가 더 많은 정보를 모으는 계기가 된다.
다음 시간에는 노션으로 지식을 연결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