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 오브 마이 라이프
《빵가게 재습격》, 이 책은 현재 불법 서적이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제목이 선정적이라는 이유일 것이다. 하루키는 참으로 위험한 작가가 아닌가. 어느 순간 내 베개 밑에 《빵가게 재습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또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왜 불법 서적으로 간주되는지 확인하고 싶은 순전한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물론 아내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른다. 나는 비교적 선하고 법을 잘 지키는 인간으로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퇴근하자마자, 아내가 독침을 쏘아 보낼 듯한 눈빛으로 자신의 눈을 쳐다보라고 했다. 그리고 낡은 책 한 권을 툭 내던졌다. “침대를 청소하다가 이 책을 발견했어. 내가 책을 읽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책이 금서인지는 알아. 자, 이게 왜 여기에 있을까?” 아내는 청소를 거의 하지 않는다. 어쩌면 결혼 후 처음일지도 모른다.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일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들은 우리의 예측을 비웃듯 한 발짝 비켜선다. 어떤 사건은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결국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굴러간다. 마치 우리의 허술한 계획 따윈 개의치 않는 것처럼, 사건들은 스스로 생명력을 얻고 제 갈 길을 간다. 모든 사건은 의미를 가질 수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대다수는 그냥 웃기는 해프닝일 뿐이다. 불확실한 삶의 속성은 우리의 거창한 계획을 매번 엉망으로 만든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게 옳다. 어차피 망할 거, 그냥 즐기며 받아들이는 게 현명하다. 아내는 지금 나를 추궁하고 있다. 마치 미제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형사처럼.
“읽어봐. 어디 한 번 어떤 책인지 들어 보자고, 당신을 신고할지 말지는 듣고 결정하겠어.”라고 아내가 죄 없는 사람을 심문하는 검사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뭐? 이걸 읽으라고?”내가 곧 실험에 처할 난처한 쥐처럼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으나 아내는 단호하게 “그러니까 읽어 보라고 당신이 이유 없이 숨기지는 않았을 테니까, 베개 밑에 숨겨둘 정도면 꽤 아껴두었단 얘기잖아? 읽어보라고 난 편안하게 소파에 누워있을 게”라고 아내가 말하며 소파 세 칸을 독차지했다.
“빵가게를 습격한 얘기를 아내에게 한 게 과연 올바른 선택 (…) 나는 보트 바닥에 누워 눈을 감은 채, 밀물이 나를 적당한 곳으로 데려다 주기를 기다렸다.”
“’“다 읽었어…” 빵가게 재습격’의 낭독이 끝난 시간은 밤 10시였다. 나는 원래 저녁에는 대체로 허기를 느끼지 않는 편이지만 - 회사에서 식빵 네 덩어리를 먹고 왔다는 건 비밀이다 - 낭독에 에너지를 쏟은 탓인지, 갑자기 밀려오는 공복감을 견디기 힘들었다.
“당신 배고프지?” 아내가 입술에 의심을 가득 품은 동화 속의 표독스러운 소녀처럼 말했다. - 사실 소녀보다는 잔혹한 마녀에 훨씬 가까웠다고 해두자. “어떻게 알았어?”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내가 내 배고픔을 알아차리다니 혜성이 지구에 충돌할 만큼 놀라운 사건이라 할 만했다.
“우리가 만약 저주를 받는다면 이 책 때문일 거야. 이 따위 금서나 숨기고 있다니. 20년 같이 살아온 정 때문에 신고 안 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아내는 곧 저주가 시작될 것처럼 책망했다. 거의 모든 잘못이 나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아내의 예의 판정 방식이었다.
밤 10시에 공복감을 느낀다고 그것이 저주에 빠진 걸린 결과라는 아내의 해석에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딱히 반박하고 싶진 않았다. 밤 10시에 아내와 정답게 소파에 마주 앉아 설전을 펼치고 싶은 남자는 없을 것이다.
“빵을 털러 가자고! 그게 저주를 푸는 일일 거야. 책에 따르면 공복감이 전염병처럼 저주에 걸리게 만든다며?” 아니 어떻게 저런 해석이 나온단 말인가. 아내의 모자란 문해력에 대해 누가 탓할 수 있으랴. 아내가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 “빵을 털러 가자고? 책을 제대로 읽은 거야?”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내가 대꾸했다.
아내는 “뭐래! 닥치고 내 말 들어. 여기 잠깐 있어봐”라고 말하더니 마치 그림자가 동굴로 들어가는 것처럼 불 꺼진 서재 쪽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안쪽에서 뭔가 우당탕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간혹 높은 곳에서 뭔가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둔중한 소리도 들렸다. 궁금하긴 했지만, 도둑고양이처럼 문에 귀를 대고 있을 순 없었다. 한참 후, 서재에서 나온 아내의 손에는 커다란 지도가 들려 있었다
“이건 뭐야?”라며 마치 고생대 판게아 대륙의 정보가 새겨진 보물지도를 발견한 고고학자처럼 내가 탄성을 질렀지만, 아내는 내 농담을 썩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지금 저주받은 상황에 농담이나 쓰게 생겼냐는 듯이… “부동산에서 얻어온 지도야. 이 근처의 상권이 잘 나타나 있어” 아내가 말했다. 아니 대체 이런 건 왜 얻어 온 거야? 집에 복덕방이라도 차리려는 거야? 내가 두 번째 농담을 던졌지만, 아내는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유가 중요한 건 아냐. 지금 우리에게 쓸만한 물건이 있느냐 그게 중요한 거야"라고 말하며 아내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낮에 먹은 스낵 봉지와 바닥에 커피 찌꺼기가 말라붙어 있는 머그컵을 한 손으로 쓸어버렸다. 강마루 바닥에 머그컵이 떨어지며 뭔가 박살이라도 날 듯싶었지만, 그런 건 그저 내 상상일 뿐이었다. 테이블 위엔 실제로 스낵 봉지밖에 없었으니까. 먼지 떨어지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아내는 마치 2차 세계대전의 히틀러 친위대의 장성이라도 되는 듯이 지도를 골똘히 살폈다. 그리고 내가 취미로 만들어놓은 레고 피겨들을 가지고 오더니 지도 곳곳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여긴 파리바게뜨, 여긴 뚜레쥬르, 여긴 노티드 도넛이야. 잘 보고 있어? 아내는 피겨를 요소요소에 배치하더니 집에서부터 그곳까지의 거리가 얼마냐 되는지 줄자로 재기 시작했다. 그리곤 동네의 빵집과 빵을 취급하는 베이커리 카페들의 위치를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더러는 빵집의 대략적인 매출현황과 아르바이트생의 숫자를 적으라고 명령했다. 대체 빵집의 매출을 어떻게 파악한단 말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반경 100미터 이내에 파출소가 있냐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을 두고 대체 왜 저런 짓을 하는 걸까.
대충 파악이 끝나자 아내는 시장 한가운데 새로 생긴 천 원짜리 빵가게를 손가락 끝으로 지목했다. 나는 오늘 네일숍에서 빨갛게 칠한 아내의 매끄러운 손톱을 대신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자 아내는 내 이마를 한대 툭 치더니 "내 손톱을 보지 말고 여기 이 위치를 잘 보란 말이야." 하더니 빨간 립스틱으로 목표물에 동그라미를 크게 그렸다. 그리곤 천 원짜리 빵 가게 위에 올려두었던 피겨를 쓰레기통에 휙 던져버렸다. 어... 저거 리미티드 에디션인데...
그러더니 내가 베트남 출장 갈 때 햇빛을 피하려고 구매해 두었던 복면 하나와 장갑, 그리고 팔 토시를 들고 나왔다. "아니 내 건 없어?"라고 물었더니 "당신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타입의 인간이잖아. 그런 인간한테는 딱히 이런 장비가 필요 없어"라고 말했다. 정말 그런 걸까? 나는 특징이랄 게 전혀 없는 무색무취의 인간인 걸까.
아내는 그러더니 나에게 “당신 군대에서 휴가 나올 때 챙겨 온 수류탄 있지? 그거 좀 갖고 와봐.”라고 말했다. "수류탄이라니?", "아니 그거 탄통에 들어있던 수류탄 말이야. 그거 갖고 오라고.", "아니 그거 가짜야. 당신 디올백처럼 이미테이션이라고. 그거 모의 수류탄이야.", "아무튼 상관없어 갖고 와 그거라도 협박을 해야지. 빵을 안 주면 다 같이 폭사하는 거라고 외쳐야 하지 않겠어?"
탄통을 가지고 나오자 아내는 이미 등산화와 바람막이를 입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우리는 아파트 지하 4층 주차장으로 내려가 2022년식 기아 레이에 올라탔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는 타이어 공기압이 빠져나가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바람막이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빵가게 재습격》을 꺼내곤 내 허벅지에 툭 던졌다.
“거기에 그런 대사가 나오데? ‘당신과 함께 산 지 아직 반달 정도밖에 안 됐지만, 확실히 나는 신변에 일종의 저주를 느껴왔어’라고 아내가 말하더군. 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휴… 그런데 나는 당신과 20년을 함께 살아왔잖아. 당신은 늘 먼지 다듬이처럼 책에 파묻혀 살았지. 아주 늘어진 팔자인 거야. 내가 외국계 기업에서 인정받아 전무로 승진하기까지 어떤 역경과 고난을 거쳐왔는지 대체 당신은 알까?” 아내는 예의 그 연설을 시작했다. 지루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훈시처럼… 도대체 빵집은 언제 털러 가는 걸까.
"표정이 왜 그래?" 아내가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 밑에는 짙은 피로감이 가라앉아 있었다. "고마운 줄 알아야지. 내가 먹여 키워줬으면, 아하, 키워준 건 잘난 당신 어머니겠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로워졌고, 손은 무릎 위에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아무튼 그동안 월세도 안 내고 마치 고결한 왕의 자손처럼 자유의지를 만끽하며 살았잖아." 아내의 말에 담긴 비난이 무겁게 퍼져나갔다. "그런데 이따위 저주를 나한테 전염시키지는 말았어야지." 그녀의 손이 갑자기 멈추고, 깊게 주름진 얼굴은 고요 속에서 화석처럼 굳어갔다.
금서로 지정된 《빵가게 재습격》은 이 나라의 어두운 정치 현실을 대변하는 상징이었다. 권력가의 한 마디가 마치 거대한 파문을 일으켜 버리 듯, 모든 것을 왜곡하고 재해석하게 만들었다. 사전검열은 그들의 안녕을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어느 날 저녁, 싸구려 조명이 비추는 고급 식당에서 권력자는 자신의 하수인들과 함께 소주와 오동통한 오겹살을 즐기고 있었다. 기름이 반짝거리는 불판에서 고기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는 순간, 누군가 요즘 재유행 중이라는 하루키의 《빵가게 재습격》에 대해 언급했다. 빵 때문에 저주에 걸린다는 설정과 '습격'이라는 단어가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찡그린 표정으로 고기를 씹으며, 그는 이 책이 대중을 선동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은 마치 여의도 밤하늘에 던져진 폭죽처럼, 아무도 모르게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왜 그 책이 내 베개 밑에 있었을까?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아내의 저주를 풀기 위해 빵가게를 습격해야 한다는 논리에도 수긍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힘이 없다. 나는 우스운 인간이다. 나는 능력도 없고 아내를 등쳐먹고사는 나약한 책벌레에 불과하다. 먹고살려면 아내의 행동에 따라야 한다.
“그들처럼 빵가게를 습격하는 거야. 그뿐이야. 그것도 지금 당장.” 아내는 책을 휙 뺏어가더니 소설 속 대사를 제 마음대로 지어냈다. 마치 자신이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루이스라도 된 듯이. “나한테 계획이 있어.” 아내가 말했다.
“명일 시장에 천 원짜리 빵가게가 오픈했어. 밀가루가 인색하게 섞인 싸구려 원가 100원짜리 단팥빵과 완두앙금빵을 천 원에 팔며 폭리를 취하고 있지. 가끔 카스텔라나 상투 과자도 팔지만, 주로 단팥빵을 취급한단 말이야,” 아내가 마치 마피아 조직을 밀고하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그런데 왜 천 원짜리 빵 가게야?” 내가 물었다.
“좋은 질문이야. 왜 천 원짜리 빵 가게냐고?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 같은 프랜차이즈 빵집엔 사람도 많고, 시종일관 CCTV가 우리를 감시하겠지. 빵 몇 개 먹고 감옥 가고 싶진 않아. 하잘것없는 천 원짜리 빵 가게엔 아마도 이쑤시개처럼 생긴 노인이 꾸벅 졸며 앉아 있을 거야. 그런 노인네가 지키는 가게라면 당신 같은 약골도 쉽게 제압할 수 있겠지. 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 그리고 노인네 뺨을 세게 한 대 후려치는 거야. 정신이 얼얼해진 노인네 따위는 무시하고 앉아서 빵 파티를 여는 거지. 배 터지도록 먹고 나면 저주가 풀릴지 누가 알아? 이 지독한 지옥의 굶주림을 벗어나는 방법은 그것뿐이야. 자, 어때? 내 계획이?”
나는 천 원짜리 빵 가게와 성심당의 이중적인 이미지를 갑자기 떠올렸다. 느닷없는 발상이 아닌가. 성심당은 망고 시루 케이크의 달콤한 향과 부드러운 식감으로 유명하다. 천 원짜리 단팥빵이 내 허기를 달랠지는 잘 모르겠다. 성심당의 망고 시루를 떠올릴수록 달콤한 향기가 내 입안을 맴돌았다. 하지만 아내의 주장처럼 우리가 저주에 빠진 거라면, 그것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오직 노략질한 빵을 배불리 먹는 것뿐이라면, 천 원짜리 빵가게를 습격하는 것도 나름 일리가 있었다. 저주를 풀기 위해 대전까지 내려가 성심당을 습격할 수는 없으니까. 다만 천 원짜리 빵가게 노인네가 불쌍할 뿐이다.
여행의 시작은 ‘나’라는 존재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헤겔은 절대정신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탐구하는 여행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시련을 겪고 위기를 돌파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한다. 나라는 자아가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확장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목적지에 도달하면 우리는 그간의 경험을 통합해 자아를 완성시키는 결말을 맺는다. 헤겔은 그 여행의 최종 순간을 절대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래, 천 원짜리 빵가게를 터는 일은 절대정신을 회복하는 일이다.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