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 오브 마이 라이프
사건의 발단은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였다. 은회색의 오백 원, 그놈의 말썽쟁이 같은 오백 원, 대체 오백 원이 뭐길래…
그날도 화장실을 습관처럼 들락날락거리는 중이었다. 그것도 5분 간격으로.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난 커피 없이 못 사는 인생이라고. 아무리 카페인이 이뇨작용을 촉진한다지만, 그래도 너무 하잖아. 내가 무슨 커피 소화 머신이야? 뭐야?”라고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아무리 말이다. 내가 5분마다 아아를 병적으로 흡입한다고 치더라도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그렇다고 커피를 단칼에 잘라내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하면 두통 때문에 곧바로 난 죽고 말 것이다. 난 커피를 절대 끊을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단 말이다. 차라리 발자크처럼 소설이라도 쓰면 좋겠는데, 난 소설 따위는 써본 일이 없다. 소설은 쓰지 않지만 회사에서는 커피 없이 단 5분도 견딜 수 없다. 어제까지는 그래도 산발적으로 증상이 나타났었는데, 오늘은 뭔가 지나치다. 5분의 한 번은 말이 안 된다. 대체 방광에서 무슨 반란이라도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그런데 말이다. 어제도 밤을 세서 그럴까,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며 세수라도 하려고 세면대 앞에 무심하게 서 있는데, 내 시야에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가 쏙 눈에 들어왔단 말이다. 녀석은 발딱 서서 나를 잔뜩 노려보고 있었다.
'흐음. 오백 원, 뭐지? 누가 화장실에 오백 원을 두고 간 거야?' 선반 위에 올려놓은 걸 보니 일부러 놓고 간 게 분명한데 말이다. '흠 이건 함정이야!' 그래도 오백 원 정도야 주머니 속에 쓱싹해도 문제없지 않을까. 이거 내가 가져가도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주인도 없는 건데 주운 사람이 임자란 말이다.
난 고민 중이었다. 이미 세수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데카르트적인 생각에 빠져들었다. 눈앞에 나타난 어떤 현상이든 회의적으로 간주하며 그것이 과연 실존하는 건지 면밀하게 판단해야 했으니까. 오백 원짜리 동전 솔직히 흔하디 흔한 거다. 그깟 오백 원짜리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공원 벤치 아래에서 가끔 발견되는 낡은 나뭇잎처럼 무심코 마주치는 게 바로 오백 원짜리가 아닌가. 그런데 화장실에서 오백 원을 습득하는 게 또 그다지 쉬운 인연은 아니다. 인연을 허투루 받아들이면 안 된다. 해저에서 보물선을 인양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고민이 시작된 거다. 이게 행운인가 아니면 불행의 전조인가 싶어서. 문제는 한 번 고민이 시작되면 난 멈출 수가 없다. 절대 끊지 못하는 카페인에 대한 나의 짜증 나는 습관처럼 말이다.
아무튼 한 10분 동안 무슨 용무라도 있는 사람처럼, 세면대 앞에서 데카르트의 얼굴로 서 있다가 1미터쯤 왼쪽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서성거렸다. 그러다 고민을 중단시켰다. 계속 그렇게 넋을 잃고 서 있을 순 없으니까. '그깟 오백 원짜리 아무나 주워 가라지 뭐',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자리에 돌아와 앉아서 업무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도저히 생각이 모아지지 않았다.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계속 오백 원짜리가 눈앞에서, 마치 봄 아지랑이처럼 슬금슬금 되살아나는 거다. 생각을 아무리 관두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었다.
49인치 모니터 픽셀마다 온통 오백 원짜리가 가득했다. 나도 모르게 포털 사이트에서 오백 원이라고 검색했다. 세상으로 퍼져나간 모든 오백 원짜리가 연도별로 다 나오더라. 백 년은 묵은 듯한 낡은 동전부터, 반짝거리는 새 오백 원, 기념으로 제작된 한정판 오백 원, 심지어는 약간 찌그러진 오백 원까지. 그리고 어느 미국인은 우리나라 전국을 배회하면서 탐지기로 오백 원짜리를 수집하고 있었다. 와. 이거 나도 오백 원에 지금 환장했지만, 저 아메리칸도 제대로 미친 거 아닌가 싶었다. 오백 원짜리가 뭐라고, 아니 지금 일 끝내야 하는데,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란 말이야.
그리고 그 이후로는 오백 원에 대한 집착이 더 심각해졌다. 마치 동해에서 오징어를 낚는 오징어잡이 배처럼, 나는 오백 원을 찾는 여정을 멈출 수 없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오백 원'을 검색해보기도 하고, 캐럿 마켓에 '희귀 오백 원'이 올라왔는지 1초 간격으로 확인했다. '특별한 오백 원'이라도 발견하면, 그게 진짜 특별한지 아닌지 눈이 떨어져라 들여다봤다. 심지어는 오백 원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며, '이 오백 원이 나에게 어떤 철학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는 걸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곤 했다. 집 안에 모아돈 모든 오백 원짜리를 그러모아 대화라도 나눠보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드디어 제정신을 잃은 것 같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오백 원은 내게 어떤 신비로운 마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상하게 그 이후부터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어느 순간 느낌이란 게 딱 멈춰버린 것이다. KTX열차가 정시에 플랫폼에 멈춰서는 것처럼 감각이 그냥 멎어버렸다. 사고가 그냥 정지 돼버렸다.
난 화장실에 다시 가야 했다. 녀석이 나를 불렀다. 오백 원짜리의 향방이 너무 궁금했으니까. 주인이 누군지도 궁금하고 그 녀석이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지 확인도 해야 했다. 누군가 집어 갈 수도 있고, 아니면 그대로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릴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나와 오백 원짜리의 질긴 운명이 시작될 수도 있는 거니까.
화장실에 갈 때마다 오백 원짜리의 존재를 확인했다. 말하자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빈자리를 찾는 게 아니라, 세면대 선반 위에 올려진 오백 원짜리의 근황을 묻는 것이다. 난 생각했다. '넌 왜 그곳에 올려져 있는 거니? 누가 어떤 이유 때문에 널 거기에 버려두고 갔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오백 원짜리, 누구에겐 소중하고 다수에겐 아무런 의미도 안 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지폐조차 거추장스러워하며 카드와 모바일 결제만 사용하는 세상인데, 오백 원짜리 동전을 누가 들고 다니겠는가. 아마도 그 동전의 주인은 기억 속에서 잊힌, 그러니까 귀찮아진 동전을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딱히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어딘가에 버리기에는 지나치게 눈에 띄고, 길바닥에 실수로 떨어뜨린 것처럼 행동하기도 애매하니, 그렇다고 사무실 책상 위에 방치하기도 민망한 상황이다. 결국 아무나 드나드는 화장실에 놓고 간 것이 아닐까. 나는 그런 식으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상황을 상상했다.
그래, 맞아. 오백 원짜리의 주인은 화장실이 오백 원짜리의 용도 폐기처로 적당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명징한 근거는 없다. 다만 그렇게 추정할 뿐이다. 일종의 허술한 가설인 셈이다, 언제든 허물어질 수 있는 백사장 위에 세워진 모래성 같은 것.
그 순간부터 오백 원짜리와 나와의 대결이 시작됐다. 화장실에 입장하면 오백 원짜리는 언제나 같은 얼굴과 자세로 나를 반겼다. 우리 집에서 같이 산 지 벌써 5년이 넘은 고영희도 이제 나한테는 아는 체도 안 한다고, 그 녀석은 언제나 나를 본체만체하며 추룹이나 가져오라가 손톱을 세운다니까. 그런데 저 오백 원짜리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한결같은 자세를 보여준다는 거 말이다. 녀석이 무생물이건 박테리아 덩어리이건 상관없었다.
난 매일매일 녀석의 위치를 확인했다.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의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의 다음날이 몇 개 겹쳐진 또 다른 다음날에도 녀석의 존재를 확인했다. 어느 날부터 내 하루는 회사의 일보다 녀석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으로 채워질 정도였다. 옆자리 동료는 근심스러운 내 표정을 보고 말했다.
“공 과장 요즘 무슨 일 있는 거야? 요즘. 마치 불이 난 영화관에서 비상구를 찾아 눈동자를 분주하게 옮겨 다니는 사람처럼 보여. 어떨 때는 똥 마려운데 바깥에 나가지 못해서, 안방과 거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우리 집 시바견처럼 보인다니까. 뭔가에 안달 난 사람처럼 보여. “
동료가 그런 말을 했어도 나는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어깨를 으쓱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아니 어떻게 화장실에 놓인 오백 원짜리 때문에 근심 걱정에 사로잡혔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 건 집착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생길 문제니까.
아무튼, 3일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녀석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마치 변심한 옛 애인이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한 자리에 뿌리를 묻고 기다리는 존재 같았다. 변심이란 없었다. 난 한결같은 녀석의 마음에 동화되었을지도 몰라. 녀석과 나의 대결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고 그러니까 주말이 지나가고 다시 월요일이 찾아왔다. 나는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녀석이 과연 제자리에 그대로 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따라 더 분주해졌다. 새벽 4:30에 눈이 저절로 떠진 것이다. 난 세수만 대충 하고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회사로 달려갔다. 심지어는 비상금까지 털어서 콜택시를 불렀다.
회사에 내리니까 6시가 조금 넘었다. 난 가방을 내 자리에 던져놓고 한숨을 크게 내쉰 다음, 그러니까 심호흡을 하고 나서, 화장실로 침착하게 뛰어갔다. 음, 녀석은 변함없이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역시 변함없어. 나의 오백 원짜리여. 너를 찬양하노라.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화장실에서 오백 원을 들고 사무실에 돌아와 버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마치 누군가 내 심장을 움켜쥐고 쥐어짜는 것 같았다. 손바닥에는 땀이 차오르고, 그 동전은 마치 불타오르는 돌멩이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숨을 깊이 들이마셔도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도둑질을 한 것처럼 죄책감에 짓눌렸다. 이 작은 동전이 나를 이렇게 몰아넣다니, 머릿속은 혼란스럽고 시야가 흐릿해졌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에 좀체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소름이 돋으며 몸이 움찔했다. 마치 내 비밀이 탄로 날 것만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박히는 듯했다. 그들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오백 원에 꽂히고, 그들이 내 머리 위에 '도둑놈'이라고 적힌 표찰이라도 붙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얼굴은 마치 비웃는 표정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침이 마르기 시작했다. 이 작은 동전이 이렇게나 무겁게 느껴질 줄이야, 난 그저 웃음을 참으려다 결국 헛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사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화장실에서 오백 원을 가져간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내용이 들려왔다.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머리에서 갑자기 흰머리가 돋아나는 듯했다. '설마, 나를 찾는 건가?' 화장실에는 CCTV가 없으니 내 범죄(?)가 드러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 위안해 봤지만, 그럼에도 걱정이 가시질 않았다. 불안은 점점 커져서, 나는 탕비실에 뛰어가 미친 듯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5분마다 차가운 커피를 마시고, 5분마다 화장실을 다녀왔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내 눈은 점점 충혈되고, 내 머릿속은 격정으로 가득 찼다. 결국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면서 헛소리를 내뱉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도 사내방송이 울렸다. 이번엔 범인을 색출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복도 CCTV에 촬영된 영상의 시간을 역추적하고 있다며 곧 성과가 나올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그 오백 원은 단순한 오백 원이 아닙니다. 특별한 가치를 가진 동전으로, 경리 과장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물건입니다. 어떤 파렴치한 인간이 오백 원을 주워갔단 말입니까." 내 심장은 더욱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냥 오백 원이 아니라고? 특별한 가치라고?' 그 말에 압도된 나는 더 깊은 두려움에 빠졌다. 이 동전이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나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차라리 나는 오백 원으로 빨리 편의점에 가서 빵이라도 사 먹을까, 고민했다. 내 주머니 속에 방치하고 있으면 이 동전이 나를 더 미치게 만들 것 같았다. 빠르게 바깥에 나가서 소비해 버리면, 마치 증거를 없애듯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오백 원으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편의점에 들어가도 그 빵 한 조각조차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작은 동전을 손에 쥐고 있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는 온갖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빵, 사탕, 아니면 그냥 기부함에 넣어버릴까? 하지만 또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정말 그걸로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 온몸이 떨리고 손은 차갑게 식어갔다. 이 오백 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 공포로 몰아넣었다. 마치 이 작은 동전 하나가 내 삶의 모든 결정을 쥐고 있는 것만 같았다. 결국 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오백 원을 손에서 손으로 옮기며 갈팡질팡할 뿐이었다.
결국 나는 조퇴를 결심했다. 범죄 현장에서 도망치기로 한 것이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지며 숨을 죽였다. 주머니 속에 있던 오백 원을 꺼내 들었다. 도덕적 딜레마가 나를 짓눌렀다. '내가 왜 이걸 왜 훔쳐, 아니 가져왔지?' 공황 상태에 빠진 나는 스파클링 커피를 원샷했다.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면서 거품이 목구멍에서 뿜어져 나왔다. 나는 헛구역질을 하며 책장 앞으로 달려갔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꺼내 발작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마치 동전이 나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환청이 들려왔다. '너의 자유의지는 이제 나, 라스콜니코프가 가져갈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비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는 왜 훔쳤어? 왜, 죄책감을 견딜 재간도 없으면서 이 작은 동전을 훔친 거야?' 그 목소리는 점점 날카로워졌다.
나는 라스콜니코프의 영웅적인 얼굴을 상상했다. 그의 냉소적인 미소가 점점 가까워지고, 그의 눈빛은 나를 꿰뚫고 있었다. 그의 음성은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너는 나와 다르지 않아. 범죄자야. 네가 무엇을 했든, 결국 너는 나와 같은 죄를 짓고 말았어.' 그의 말이 나를 철저히 짓밟았다. 그리고 내 마음속 깊은 곳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아보았지만, 그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더니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제 끝이야. 너의 자유의지는 이제 내 것이야.' 그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반복되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라스콜니코프의 목소리는 자극하며 나를 점점 더 깊은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결국 책을 바닥에 던지고, 침대에 쓰러졌다. 이 작은 동전 하나가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넣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망치를 꺼내 들었다. 녀석을 작살내야겠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분노와 절망이 뒤섞여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손이 떨려서 망치를 제대로 잡을 수조차 없었다. '이걸 박살 낸다고 모든 게 끝날까? 아니면 더 나빠지기만 할까?'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망치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누군가가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걸 박살 낸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CCTV가 역추적한다면 내 범죄는 내일쯤이면 모두 들통날 것이다. 상상 속에는 내가 회사에서 쫓겨나는 모습이 있었다. 보안팀이 내 팔을 붙잡고 나를 밖으로 끌어내며, 동료들이 수군거리는 장면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아, 난 끝났어.' 나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망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내가 길거리에서 떨며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머리카락은 떡져 있고, 헐거운 옷을 입은 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길가에 앉아, 그들이 던져주는 오백 원짜리 동전으로 연명하는 내 모습. 길거리에 앉아 내 앞에 놓인 컵에 떨어지는 오백 원의 쨍그랑 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그 순간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아 망치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그 비참한 거지 같은 모습이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결국 회사에 가서 오백 원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또 다른 오백 원이 있었다. 심장이 멎을 듯했다. 마치 양자 역학의 불확정성 원리가 내 삶에 개입한 것처럼 느껴졌다. 오백 원은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머니 속을 뒤져 보니 그 안에 얌전히 앉아 있던 오백 원이 사라졌다! 그런데 또 다른 오백 원이 세면대 선반 위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이건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아니라 슈뢰딩거의 오백 원인가? 마치 차원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나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오백 원이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는, 말도 안 되는 현실 속에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현실과 상상이 완전히 뒤섞여 버린 것이다. 마치 내가 양자 중첩 상태에 빠진 전자처럼,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것일까?' 그런 의심이 나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마치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닌, 그저 어떤 무작위적 힘에 의해 좌우되는 입자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오백 원을 돌려놓으려는 순간 아뿔싸, 세면대 위의 오백 원이 갑자기 굴러 떨어졌다. 마치 녀석은 살아 있는 것처럼 나에게 비웃음을 남기며 바닥을 가로질러 하수구 쪽으로 곧장 향했다. 그 장면이 마치 슬로 모션처럼 느껴졌다. 동전이 바닥을 튕기며 내는 금속성 소리가 공명하며 내 심장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으악!"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급히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닿을 듯 말 듯한 순간, 물이 넘쳐흐르는 바닥 위로 미끄러져 넘어졌다. 바닥은 차갑고 축축했고, 물은 내 옷을 적셔가며 온몸을 감쌌다. 내 손이 허우적거렸지만, 그 동전은 하수구의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수구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 오백 원은 마치 마지막 인사라도 하는 듯 반짝였다.
나는 미끄러운 바닥 위에서 버둥거리며 일어나려 애썼다. 머리가 벽에 부딪히는 순간, 강한 충격이 내 두개골을 울렸다. 세상이 흔들리며 모든 것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눈앞이 아찔하게 흐려지고, 귀에서는 피가 나는 듯한 윙윙거림이 들렸다.
바닥에 누워있는 동안 나는 천장의 빛을 바라보았다. 빛이 어지럽게 일렁이며 나를 향해 속삭이는 듯했다. '너는 끝났어, 그깟 오백 원에 집착한 네가 이 지경이 되는 것도 참 신기하지.' 마치 누군가가 내 귀에 대고 조롱하듯이. 오백 원짜리 하나가 이렇게까지 나를 망가뜨릴 줄이야. 정신을 잃어가는 순간에도 그 비웃음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오백 원이 사라진 하수구의 어둠 속에서, 그 작은 금속 덩어리가 나를 향해 마지막으로 비웃고 있는 듯했다.
나는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차가운 타일의 감촉과 물기가 온몸을 감싸며 나를 현실에 붙잡아 두려 했지만, 어둠이 나를 삼켜갔다. 마지막으로 내 귓가에 울린 것은 오백 원이 굴러가는 금속성 소리와, 그 소리에 담긴 냉소였다.
정신을 차렸더니 탕비실 옆 침대였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였다. 텅 빈 공간은 너무나 고요해서, 심장 박동 소리조차 크게 들렸다. 누가 나를 이곳으로 옮겨준 걸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대로 이 증오스러운 곳에서 지낼 수는 없다.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벽을 응시했다. 나를 감싼 공기는 무겁고 축축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미세한 윙윙거림이 마치 누군가 나를 비웃는 듯했다. 나는 원래 내 자리, 내 보금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 안에서 내내 귓가엔 그 금속성 소리와 비웃음이 울렸다. 창밖을 바라보며 눈을 감고 싶었지만, 닫히는 눈꺼풀 너머로도 그 소리가 계속 나를 쫓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대로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마치 모든 체력이 방전된 것처럼 몸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몇 시간을 잔 걸까. 눈을 뜨니 세상은 암흑처럼 어두웠다. 머리맡의 스마트폰을 찾기 위해 손을 더듬거렸다. 손가락 끝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때, 내 손에 느껴지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소름이 등골을 타고 흐르며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내 손안에 잡힌 건 화장실 하수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오백 원짜리였다.
그 오백 원이 어둠 속에서 축축한 하수구에서 사는 더러운 물고기의 비늘처럼 번들거렸다. 녀석은 내 손에 다시 포획된 것이다. 그 차가운 금속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손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땀은 오백 원의 표면을 타고 천천히 흘렀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나는 오백 원의 저주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걸 절대 만지지 말아야 했다. 그건 마치 금단의 열매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아... 오백 원 때문에 나는 결국 파멸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아무리 도망치고 싶어도 이젠 녀석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미치도록 공포에 몰아넣었다. 오백 원은 손바닥에서 점점 뜨거워지더니, 귀를 찢는 금속성 소리와 함께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점 커져서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는 결국 비명을 지르며 오백 원을 바닥에 던졌다. 하지만 그 소리와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까이에서, 더 크게.
바닥에 떨어진 오백 원은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반짝거렸다. 그 작은 금속 덩어리가 내 모든 걸 파괴하고 말 것이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압박감을 느꼈다. 마치 온 세상이 오백 원을 주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소리를 생산하는 곳은 바로 오백 원이었다. 나의 심장 박동, 내 숨소리조차 그 금속의 냉소에 맞춰 울리는 것만 같았다. 침대에 주저앉아 나는 손을 움켜쥐었다.
어둠 속에서 오백 원의 금속성 빛은 악령이라도 된 것처럼 내 앞에서 춤을 췄다. 나는 두려움에 빠져 몸을 떨었다. 오백 원의 저주에 걸린 나는 이제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었다. 그 차가운 동전은 내 삶 속에, 내 영혼에 깊이 새겨진 것이다. 나는 이 동전이 만든 원형 지옥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에 사로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