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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Oct 24. 2024

불경 소리

아웃 오브 마이 라이프

새벽 2시였다. 오늘도 어김없었다. 기분 나쁜 소리가 벽 너머 어디선가 집구석으로 몰래 잠입한 것이다. 가슴 저 밑에서 자비롭지 않게 밀려오는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누군가 새벽마다 주문을 외우며 요란하게 제사를 치르는 듯했다. 


눈을 떠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아내는 옆에서 잠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곤 벽 가까이에 귀를 대봤다. 분명히 벽을 타고 바깥에서 이쪽으로 둔탁한 목탁과 불경 소리가 동시에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그 소리는 벽을 타고 전기처럼 흘러서 온 집안에 불길함으로 에워싸는 듯했다..


처음엔 꿈일 거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한 달이 넘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아내에게 다가가 기묘한 소리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아내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또 그 소리야? 불면증 때문에 잠 못 드는 사람을 왜 건드리고 그래?"


아내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내의 불면증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었다. 입면이 되는 날이 거의 없었고, 선잠 탓에 뒤척이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아내의 눈동자는 퀭하게 동태처럼 힘을 잃어 갔고,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드리워졌다. 


결국 나는 견디다 못해 경비실에 신고했다. 경비원은 뜻밖의 불성실한 반응을 보였다. 새벽 2시에 주거지에 찾아가 일일이 그런 걸 점검할 수는 없다고, 자신은 정해진 시간에 초소에서 근무를 서거나 순찰만 돌뿐, 개인 가족사에 대해서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서 말했다. 필요하다면 녹음을 하거나 생활지원센터에 별도로 민원을 제기하라고 알려주곤 귀찮다는 듯이 인터폰을 먼저 끊었다. 황당했다.


다음날 밤, 소리는 더 강하게 울려 퍼졌다. 뭔가 강력한 증폭기를 쓴 게 분명했다. 어쩌면 진공관 오디오를 쓸지도 모른다. 트랜지스터 라디어를 쓸 리는 없잖은가. 아무튼, 이번엔 웅얼거림에 더해 북을 울리는 소리 같은 것이 추가되었다. 마치 벽 너머에서 북과 목탁을 번갈아가며 규칙적으로 심기를 건드려 대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주먹으로 꽝꽝 가격을 해봤지만, 오히려 저주를 감싼 섬뜩한 기운이 내 몸으로 흘러들어왔다. 등골이 서늘해진 나는 주춤하며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아내는 여전히 잠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일찍 퇴근해서 생활지원센터를 찾아갔다. 관리 직원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불경 소리 말씀이시죠? 그렇지 않아도 다른 세대에서도 민원이 들어와서 조사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당장 오늘 밤에 전 세대를 순찰 돌면서 진원지를 찾아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댁으로 돌아가 계시기 바랍니다. 오늘 밤에는 반드시 원인을 찾을 겁니다. 안심하세요." 관리 직원의 살뜰한 태도에 화가 누그러진 나는 "필요하다면 새벽 2시에 집에 방문해도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조사하다 필요하면 꼭 들르겠습니다."라고 관리 직원이 대답했다.


그날 밤, 2시 무렵이 되자 아내는 복권이라도 당첨된 사람처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아내는 처녀귀신처럼 발을 질질 끌며 협탁 앞으로 걸어가서 서랍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의 행동을 멍하게 바라봤다. 아내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보였다. 잠시 후, 서랍에서 낡은 스케치북을 한 권 꺼내더니, 계획된 동작인 양 차분하게 한 장을 북 뜯었다. 다만 아내는 무표정했고, 꿈을 꾸는 듯 초점은 흐릿했다.


아내는 벽 앞에 다가섰다. 아내는 벽에 커다란 종이를 붙이더니, 매직을 들어 소리가 나는 벽에 문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아내는 분명히 입을 닫고 있었지만 중얼거리는 소리가 바닥을 스치는 소복 소리처럼 들려왔다. "이걸로 될 거야... 이걸로... 이제는 끝내야 해." 아내의 목소리에는 깊은 불안과 피로가 섞여 있었다. 뭔가 기괴하다고 해야 할까. 아내의 손은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그러자 문의 형상이 나타났다. 더 사실적으로 그리고, 왼쪽에 작은 손잡이까지 그려 넣었다. 


나는 "당신 왜 그래?"라며 웃음을 지으며 말했지만, 아내는 너무나도 진지했다. 그 눈에는 어떤 굳은 결심이 서려 있었다. 아내는 떨지도 않고 정숙하게 동작을 이어나갔다. 나는 아내의 행동이 단순한 불면증의 산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졌다.


"이걸로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기다려 봐." 아내가 말했다.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그런데!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도화지에 그린 문이 갑자기 입체적으로 변하더니, 콘크리트 벽체에 오래된 나무 재질의 문이 하나 생겼다. 문의 모양새는 중세풍으로, 거친 나뭇결과 쇠못이 박힌 손잡이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비볐다. 문은 실제로 벽에 분명히 나타나 있었다. 마치 수백 년 전 중세성의 비밀 방으로 이어지는 관문 같았다. 아내는 손잡이를 가만히 돌려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나는 아내가 어떤 전염병에 오염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아내는 마치 이 모든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침착했다.


아내는 문 안쪽 세상으로 거침없이 진입, 아니 빨려 들어갔다. 나는 뒤따라가려 했지만 두려움이 앞서 주저했다. 순간, 장면이 확 전환됐다. 아내가 어떤 스님처럼 생긴 남자에게 다가선 것이다. 그리곤 아내가 눈앞에서 이내 사라졌다. 나는 비겁하게 또다시 벽 뒤에 숨은 것이다. 다시 벽 건너편에 나타난 아내는 다짜고짜 남자의 얼굴에 따귀 한 대를 작렬했다.


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리자 목탁 소리도 북소리도 모두 멎었다. "짝!" 너무나 선명한 소리였다. 남자? 뭐라 할까 스님의 뺨이 울그락불그락 붉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이 슬로 모션처럼 느리게 재생됐다. 스님은 깜짝 놀라 불경을 외우다 눈을 떴다. 충격은 받았으나 당황한 것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스님은 그저 아내를 멍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아내의 손은 벌벌 떨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무심했다.


"시끄럽다고! 이 개자식아! 잠을 질래야 잘 수가 없어! 밤에는 잠 좀 자야 할 거 아니냐고!" 아내의 목소리가 스님의 방을 두쪽으로 쩍 가르더니 남자의 귀를 따갑게 찔렀다.  스님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내를 바라봤다. 아내는 냉정하게 그에게 다시 한마디를 던졌다. "이제 그만하라고!" 아내는 꿀벌처럼 욍욍거렸다.


아내가 작업을 마치고 문을 열고 우리 집으로 들어왔을 때, 그녀의 손에는 붉은 흔적이 나타났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피라도 본 거야?"


"다 끝났어, 이제 조용해질 거야." 아내가 용무를 마치고 말했다. 아내는 문 쪽으로 다가가 태연하게 그것을 지우개로 지웠다. 문은 여봐란듯이 말끔하게 사라지고 원래 벽으로 복구됐다. 나는 말없이 아내를 바라볼 뿐이었다. "무슨 일이야? 정말 해결된 거야? 그 남자는 누구였어?" 내가 물었지만, 아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후로도 나는 파블로프의 강아지라도 된 것처럼 새벽 2시마다 눈이 번쩍 떠지곤 했다. 의문의 그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지만, 벽 너머에서 누군가가 조용하게 우리를 저주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생활지원센터에서는 전날 밤, 순찰을 돌았으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뭔가 라디오 잡음 같은 게 전파를 타고 벽으로 흐른 게 아니었겠냐고 과학자처럼 말했다. 


나는 벽 앞에 앉아 문이 그려진 그 공간을 바라보았다. 아내는 나에게 절대 벽에 그림을 그리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 문 너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어. 거긴 우리가 관여해서는 안 되는 곳이란 말이야."


며칠 후, 나는 스케치북을  넣어놓은 서랍을 바라보았다. 만약 문을 내가 직접 그린다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아내의 말이 머릿속에 울렸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는 결국 열리고 마는 것이며,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소돔의 여인처럼, 인간의 본능은 억제하기 어렵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서랍을 열고는 스케치북을 꺼냈다. 손이 떨리긴 했지만 문 따위야 쉽게 그릴 수 있었다. 펜을 들고 온갖 예술적 감각을 동원해 마치 내가 바우하우스의 예술가라도 된 마냥, 벽에 문을 그리기 시작했다.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문 손잡이를 천천히 그리며 마치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거라고 상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손잡이를 돌렸다. 문 너머로부터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내가 본 것은... 또 다른 기괴한 현실이었다. 방 한가운데에 앉은 스님은 이번엔 주문을 외우는 대신, 커다란 밀짚모자를 쓰고 한 손엔 수탉을 들고 기묘한 춤을 췄다. 스님은 뼈마디가 부자연스럽게 조합된 꼭두각시처럼 비틀거렸다. 스님의 얼굴에는 어딘가 정신이 나간 듯한 웃음이 씌어 있었다. 방 안에는 온갖 기괴한 소품들이 널려 있었는데, 해골 장식, 희미한 촛불, 그리고 피로 얼룩진 오래된 천들로 가득했다. 


"넌 왜 왔니?" 그는 아내에게 따귀를 맞았던 바로 그 스님이었다. 목소리는 이전보다 더 낮았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래 나 왔다! 아니, 대체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너 우리 와이프와 무슨 관계야!" 


스님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다 오해야. 사실 나는 수십만 광년 떨어진 다른 성운, 아라클리스 성운의 티오그란 행성에서 온 존재야. 그녀와의 관계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됐지. 그녀는 나를 찾아온 거라고. 내가 너무... 시끄럽게 굴어서... 그게 말이야... 나 오랫동안 기다렸거든... 불면증 내가 치료할 수 있을 거야... 대신 말 해줄래? 나 여기에서 계속 기다릴 거라고. 이제 얌전하게 앉아 있을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모른 척하며 방에서 나가려 했다. 그때였다. 스님이 한 마디를 외친 것은...


"거기 무릎 꿇어. 그러더니 스님은 갑자기 손을 들어 내 뺨을 향해 냅다 내리쳤다. "짝!" 하고 울려 퍼진 소리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 순간, 내 몸속의 모든 세포가 교란을 일으켰다. 저주가 나에게 옮겨온 것일까. 머릿속에 깊은 침묵이 바이러스처럼 퍼졌다.


스님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제 너도 알게 될 거야. 넌 견뎌야 해." 


스님은 나를 향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목탁 소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치 그가 했던 방식과 마찬가지로 기괴한 춤을 따라 했다. 내 손엔 수탉 대신에 노란 병아기가 쥐어졌다. 팔다리가 부자연스럽게 꺾이며 춤을 췄다. 온몸이 실로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처럼 비틀거렸다. 방 안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다시 무릎을 꿇고 108배라도 할 것처럼 자리에 정좌할 수밖에 없었다. 


스님은 큰 웃음을 남기고 내가 들어왔던 문으로 스케치북을 들고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문을 닫았다. 그러자 벽이 사라졌다. 완전히, 말끔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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