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사원, 극락사, 그리고..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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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떠 거울을 보니, 얼굴이 조금 부어 있었다. 제대로 먹지 않고 물만 마셔대니 몸에 조금 무리가 온 듯하다. 말라카에 오기전 검색을 해보니 페낭섬을 시내 버스를 타고 다닌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나는 여기에 흥미를 느꼈고 페낭의 뱀사원과 극락사를 시내버스로 다녀오기로 하였다.
구글맵에서 뱀사원을 도착지로 설정하고 대중교통을 살펴보니, 호텔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시내 버스를 탈 수 있는 지점(정류장)이 있었다. 구글맵이 제공하는 대중교통 경로와 시간이 맞는 경우가 복불복이라 일단 정류장에 가보고 30분이상 버스가 오지 않으면 그냥 그랩으로 갈 생각이었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서양인 1명과 동양인 커플이 있었다.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것을 보니, 분위기상 여기가 페낭 버스터미널쪽(뱀사원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지루함을 달래기를 30분.....(역시 구글맵에 나온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았다.) 드디어 시내 버스가 도착했고 기사에게 요금을 내고 탈 수 있었다.(기사님에게 목적지를 말하면, 얼마인지 말해준다.)
▣ 시내버스에서 보는 풍경
해외여행을 할 때, 기회가 있으면 시내버스를 타보려고 한다. 시내버스는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품고 있는 하나의 볼거리이다. 얼굴 표정과 서로간 오고가는 대화 분위기, 피곤한 얼굴과 설레는 표정으로 어디론가 향하는 그들을 보면, 우리처럼 삶의 모습은 달라도 삶에서 느끼는 가치와 감정은 어디든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버스에서 보는 페낭의 모습은 나의 상상과 조금 달랐다. 조지타운의 첫인상이 시골스럽지만 화려한 느낌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조지타운을 벗어난 외곽의 모습은 지극히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뱀 사원과 도보로 10정도 떨어진 곳에 내려 걸었다. 날은 뜨겁고 그늘이 별로 없어 내 정수리 피부가 타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요리조리~, 군데 군데 나무로 해가 가려진 곳들을 전략적으로 이동하면서 정수리에 햇빛이 최소한의 시간동안만 비추도록 움직였다. 동남아 여행을 할 때, 호텔에 돌아와 머리를 살펴보면, 주변보다 머리숱이 많지 않아 정수리 부분의 피부가 유난히 검게 변한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 뱀사원
뱀 사원의 입구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펴보니, 양쪽으로 물건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있었다. 작은 사원이다. 생각보다 크지 않고 왜 여기가 페낭에서 유명한? 곳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별한 장소라고 여기기에 너무 빈약하였다. 다만, 조금 들어가니, 물이없는 수조에 담긴 큰 뱀을 보았는데, 이곳은 뱀을 걸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코끼리 같은 큰 동물을 타거나 인간에 조련당한 동물들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에 얼른 지나쳐 갔다. 사원을 둘러보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큰 기대를 해서 그런지 실망감이 컸고 이곳을 빠져나와 다음 장소를 검색하였다.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페낭섬을 둘러볼 수도 있지만 더운 날씨에 오래 돌아다니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극낙사'라는 곳에 가서 둘러보고 다시 숙소로 가기로 하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극락사로 가자니, 이동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그랩을 타기로 하였다. 페낭섬이 생각보다 넓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 극라사
뱀 사원과 비교도 안될만큼 큰 규모의 사원이다. 페낭에서 꼭 사원을 가야 한다면, 극락사를 추천한다. 극락사 근처에 다다르자 많아지는 사람들과 가게들이 이곳이 유명한 곳이라는 것을 말해주는듯 하였다. 멈추고 가고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극락사에 도착하였고,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 것인지, 아니면 걸어서 둘러볼 것인지 선택하여야 했다. 나중에 방문을 마치고 느낀 것이지만, 엘레베이터를 타고 맨 위에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구경을 하는 코스가 가장 효율적이다. 일단, 극락사의 중간 높이 지점으로 이동하였다. 이동중에 연못에 거북이들을 볼 수 있었고 화려한 건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원 자체가 이름처럼 극락의 모습을 본딴 느낌이다. 내부는 화려했고 사진을 찍을 만한 장소들이 많았다. 사원 내부에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는데, 수도(修道)를 하는 느낌보다는 상업적 관광지의 느낌이 더 들었다.
극락사의 거대한 보살상을 보기 위해서 맨 꼭대기로 가야하는데, 급한 경사를 걸어서 올라가거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케이블카 요금은 생각보다 비싸다. 아주 비싼 것은 아니지만 왠지 비싼 느낌이다. 사실 걸어올라가도 되지만, 더운 날씨에 걸어올라가는 노력에 비해 요금을 내고 케이블카로 이동하는 방법이 체력 안배나 가성비를 따지면 케이블카를 탈 수 밖에 없다. 다만, 나는 편도만 구매했고 내려올 때는 걸어서 내려왔다.
사원의 맨 꼭대기에는 거대한 보살 동상이 있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그 거대한 크기에 대한 감탄보다는 지친 몸이 더 힘들었다. 더운 날씨에 만사가 귀찮게 느껴졌고 들어갈만한 건물은 자물쇄로 채워져 있어 동상 근처 조그만한 정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곧 내려갔다.
극락사는 참 상업적인 곳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케이블카를 설치한 이유가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기 어려운 사람들이나 걷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동을 돕기 위한 순수한 마음보다는 비싼 요금과 사원내 상점들을 보고 있자니, 그냥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사원이라는 타이틀을 등에 업고 돈을 벌기 위한 장소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극락사'라는 명칭 그대로 아름다운 사원의 모습을 케이블카가 일부 그 모습을 훼손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처음 극락사가 지어질 당시 꼭대기까지 차를 타고 올라갈 도로도 없었을 것이고 순수하게 두 다리로 올라가 기도를 하고 내려왔을 것이다. 케이블카와 도로는 극락사의 순수함을 망가트리고 인위적인 모습을 더해 그 가치를 훼손한거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이와 비슷하게도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개인의 큰 업적을 이룬 사람이 언제부터 그 순수함을 잃고 자신의 그 가치를 깍아먹는 경우들이 있다.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순수함이지만 그 결실을 유지하는 것도 순수함인 것 같다.
이제 다시 호텔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랩을 타고 갈 수 있었으나 호텔까지 먼 거리가 아니어서 다시 시내버스를 타기로 하였다. 점심 시간이 지나 허기를 느껴 일단 식당을 찾았다. 극락사 가는 길 양옆에는 많은 로드 식당들이 있었고 위생과 맛은 그리 상관하지 않기에 가장 먼저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위생 상태와 맛은.. 음..
시내 버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급하게 먹었나 보다 속이 더부룩하다. 일단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를 걸어 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현지인과 외국인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니, 정류장임이 틀림없다.
또다시 지루한 시간이 지나간다. 기다린지 20분이 지나고 있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천천히 밥을 먹을껄 그랬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버스를 타고 호텔 근처에서 하차하여 호텔로 향했다.
▣ 숨겨진 벽화를 찾아....
페낭에는 다양한 벽화들이 숨겨져 있다. 찾으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찾으려고 하면 비로소 보인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흐려질 무렵 호텔에서 나와 이른 저녁을 먹을겸 벽화를 보러 이동한다. 구글맵에 표시된 벽화의 위치를 살펴보고 최소한의 이동 경로를 설정한다.
'참 신기하다. 분명 이 거리를 지나왔는데, 왜 보지 못했자?'
이 거리는 분명 내가 낮에 지나온 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화를 볼 수 없었는데,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관심'과 '의미'의 부여이다.
아까 이 거리를 지나오면서 힐긋 쳐다보았을 때, 낙서로 생각하여 자세히 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벽화'라는 목적성을 가지고 관심있게 보고 있다. 그래서 낙서가 아닌 벽화로 보인다. 마음을 다잡고 벽화를 보면서 의미를 부여해 본다. 낙서는 점점 예술작품으로 변화해 간다.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낙서와 예술작품의 차이는 무엇인가? 지금 나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바로 나의 관심과 의미 부여이다. 내가 관심을 가져야 그것이 보이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단지 직선 하나라도 그것은 나에게 예술작품이 된다.
얼마나 허황된 가치인가? 지금 내 손에 들고 있는 코를 푼 휴지도 내가 의미를 부여하면 작품이 된다. 유명한 예술 작품들을 보면서 스스로 그것의 가치를 끄집어 내어 그것에 강제로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가치있는 물건으로 포장한다. 만약 내가 코푼 휴지가 예술 작품일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사람들에게 설득하여 인정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쓰레기가 아니다.
뭐.. 이런 관점에서 나의 인생도 예술 작품이라 생각한다. 하루 하루 의미없이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굳이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찾으려 노력한다. 이제, 나의 삶은 단순히 NPC가 아닌 주인공으로서, 하나의 소설로서, 나의 삶을 가치를 찾아간다.
참 몸이 지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자꾸 움직이려고 한다. 잠시 근처, 구글맵에서 평점이 괜찮은 식당에 들려 간단하게 저녁을 먹는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밥보다는 언제나 음료가 더 맛있다. 내 몸에서 빠져나온 수분을 달달함으로 보충하는 것은 물론, 기운을 샘솟게 한다.
해가 점점 저물어가면서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한다. 숙소로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아직 숨겨진 곳이 더 있다는 것을 알기에 주변을 더 둘러본다. 페낭의 벽화는 숨바꼭질처럼, 아니 보물찾기처럼 찾아가는 맛이 있다. 물론 더위라는 위협을 물리쳐야 하지만...
벽화도 슬슬 지겨워질 무렵,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물론, 어제 갔던 바에 들려 생맥주 한잔을 마신다.
페낭.. 피낭.. 이라고도 하는데, 참 좋다. 혼자도, 커플도, 가족과 함께 와도 참 좋다. 화려하지 않지만 소소한 볼거리들.. 곳곳에 숨겨진 벽화는 '당신이 발품을 팔아야 나를 볼 수 있다'라고 말해주는듯 하다. 오늘 페낭에서의 마지막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