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매의 학업 속도
우리집 삼남매의 선행 여부는 아이에 따라 다르다.
실제로 우리집은
1호는 선행하지 않는다.
2호는 선행을 한다.
3호는 아직 선행을 고민하지 않는다.
아이에 따라서 선행 여부가 달라지는 이유. 아이의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인 1호.
수학은 6학년을 마친 정도, 영어는 제대로 테스트해보지 않았지만 중학교 2~3학년 수준. 회화는 편하고 문법도 모르진 않지만 영문 에세이를 쓰는건 어려워 한다.
선행도 하지 않고 학원도 다니지 않는다.
물론 고려해야 할 사항은 아이가 사립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교과 과정에 따라 공부를 잘 챙겨주시고 학교에서 보는 시험을 통해서도 학업 수준을 점검하고 있다.
영어는 미취학 시절 놀이학교를 다니면서 기본기를 익혔고(전체 수업의 50%가 영어), 학교 입학한 후로는 방과후 영어를 꾸준히 하고 있다.
교내에서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못따라갈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학원을 보내면서까지 압박하고 싶지는 않다.
1호는 새로운 지식을 배울때 신나하고 집중력과 몰입력이 올라간다.
그래서 선행을 해버리면 학교에서의 학습 태도가 나빠질 위험이 있다.
게다가 정확히 모르는거여도 용기있게 손들어서 발표하고 틀리면 "앗! 헤헤헤"하는 성격이다.
문제는,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면 진짜 아는거'라고 믿는다는 사실.
예를 들어 수학 시험을 봤는데 틀린 이유가 연산 실수라면, 실제로 문제 푸는 법은 알지만 계산하다가 실수가 발생한 것이니 "틀렸어도 맞은 것으로 본다"고 주장한다.
글씨도 개판이다. OMR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단원평가는 거의 암호 해석 수준이다.
그래서 이 아이는 연습을 겸한 복습이 중요하다.
6학년이지만 여전히 교육 과정에 맞는 연산 문제집을 푼다.
2호는 아는 내용이 나올때 신이 나고 용기가 생긴다.
그래서 선행이 반드시 필요하다.
학교 수업 끝나면 영어유치원에서 연계된 애프터 스쿨을 매일 다닌다.
방과후영어 수업은 재밌지만 애프터스쿨 수업은 어렵다고 말하는 아이, 그럼 우리 딱 2년만 빡세게 해서 영어는 잡고 가자고 말하면 알겠다고 말한다.
숙제도 꼬박꼬박 잘하고, 책도 잘 챙긴다. 학교에서 더 잘하기 위해 학원을 열심히 다니는 성격이다.
수학은 집에서 봐준다.
형과 달리,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스스로 99%를 알아도 1%를 모르면 모른다고 생각하고 계속 파고 드는 특징이 있다.
솔직히 여기까지만 보면 2호가 좀더 공부에 특화된 인재 같지만, 이런 친구들이 어느 순간 지쳐버리는 경우가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반드시 쉬게 해주고, 자신이 어떤 동기부여로 움직이는지 이야기하면서 목표 수립과 동력을 다듬어주는 케어가 필요하다.
3호는 영어유치원을 다니지만 그 밖에 다른 선행 학습은 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아직 고민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맞다.
6세 고시를 치루지도 않았으며 수학이나 과학 학원을 다니지도 않는다.
한글도 조금씩 눈에 들어오는 정도이지 제대로 쓰거나 읽지 못한다.
학원은 모두 예체능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굳이 영어유치원을 다니는 이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유치원이 그렇게 인기가 많은 줄은.... 처음 알았다.
대신 영어유치원을 고를 때, 영어 교육 이외 커리큘럼도 함께 살폈다.
2호가 같은 영어유치원을 2년 다니고 졸업했는데(여기도 사연이 있다...), 다른 학원 안다니고도 초등학교 입학하기에 차고 넘치는 지식을 탑재하게 된 것이 만족스러웠다.
수학, 한글, 과학, 사회, 상식 등등... 모두 영유에서 커버해 주셨다.
(영어유치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선행학습에는 여러가지 목적이 있겠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1순위는 아이의 정규 교육 과정에 대한 학습 태도, 소화력 지원이다.
빠르게 60%을 소화하며 달리기 보다 제대로 150%를 이해하는 깊이가 아직은 필요한 나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부분적으로 정규 교육과정을 뛰어 넘는 이야기를 하게 되기도 하지만.
간혹 선행 많이 한 어린이들의 모르는 문제를 봐줘야 할 때도 있는데, 문제를 대하는 태도나 풀이 방식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지금이야 친구들보다 선행하니까 더 잘하는 것 같지만, 꽉찬 어느 지점에서 만나면 분명히 밀릴게 뻔히 보이는 속상함이 있다.
아- 종종 아이의 수준이 명확하게 정규 교육 과정을 넘어선 것 같다고 느낄 때에는 과감하게 선행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건 저학년 때에는 천재가 아닌 한 판단하기 어렵고 보이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서 1호에게만 적용된다.
1호는 사실 상 국어(언어영역)에 관해서는 상당한 선행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권장 도서 수준이나 문제 난이도, 풀이 방법, 글쓰기 수준 등은 2년 이상 앞서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홈스쿨링 수준인데 언어 관련해서는 학원을 보내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처음 이 글을 쓰면서, 굉장히 장황한 서론을 썼었다.
선행 학습에 대한 생각, 관점, 어떤 마음으로 의사결정을 하는지 등등을 풀어냈다가
지웠다.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가 중요한 것 같았지만 하루이틀 지나고 보니 의미를 잃었다.
이 문제는 정답이 없으니까.
틀린 사람은 없고 그저 다를 뿐이고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옆에서 누가 뭐라던, 아이에 대해 제일 많이 고민하는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