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에서 페이스가 비슷한 몇몇의 러너들을 만나게 되었다. 시드니의 바닷가 부자 동네인 모스만에 살고 있는 닉 (Nick)은 20대의 패기 넘치는 청년이다. 나처럼 처음으로 80 km 대회에 참가했다. 엄마 아빠가 몇몇 에이드 스테이션(물, 전해질 음료, 간단한 음식과 의약품을 제공해 주는 휴식 공간)에서 필요한 응원과 도움을 주고 계신단다. 그는 힘이 들어서 그런지 가끔씩 기침을 하곤 했다. 잠깐 동안 함께 뛴 후에 서로 잘 뛰라는 말을 건네고 헤어졌다.
이 대회의 에이드 스테이션은 음식이 빈약했다. 고작 바나나, 오렌지, 젤리, 과자, 에너지젤 정도뿐이었다. 전해질 음료는 농도가 너무 묽어서 마치 물을 마시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군대 특식으로 나온 돼지찌개에 막상 돼지고기는 없고 돼지가 잠깐 헤엄치고 나간 것처럼 말이다. 유튜브로 본 한국의 트레일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는 주먹밥, 떡, 컵라면, 우동, 어묵 등등 맛있는 먹거리가 다양하고 풍부했는데...
처음 5 km는 많은 러너들이 함께 무리를 지어 달렸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러너들 간의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앞뒤 50m에 아무도 없는 구간이 전체의 80%가 넘었다. 함께 달리지만 결국 혼자 달리는 것이다. 나보다 빨리 뛰는 러너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나보다 늦게 뛰는 러너를 깔보지 않는다. 나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달릴 뿐이다.
큼지막한 나뭇가지가 길에 놓여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뒤에 오는 러너들이 걸려 넘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리를 숙여 나뭇가지를 들어 길옆으로 던졌다. 전혀 몰랐는데 바로 뒤에 다른 러너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뭇가지에 맞을 뻔했어"라고 외치며 지나갔다. '내가 선의로 한 행동이 오히려 남을 다치게 할 수도 있구나.'
길 위에 에너지젤 봉지와 스낵 봉지가 널브러져 있는 게 꽤 많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 실수로 떨어뜨린 거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았다. 대회 끝나고 쓰레기를 수거하는지는 모르겠다. 다음번에는 대회 관계자가 출발 전에 꼭 러너들에게 "Leave No Trace" 원칙을 강조해서 아예 쓰레기를 길에 버리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 이게 오렌지 색 리본을 따라가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을까?
60 여 km 지점이었다. 아침 7시에 출발해서 10시간을 뛰었다. 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켰다. 급한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뛰어 내려가는데 다리가 아우성을 쳤다. 입에서는 '아이구, 아이구' 소리가 연신 나왔다. 머리에서는 '헉, 완주를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몸의 아픔보다 그 생각이 더 아팠다. 길지 않은 내리막을 지나자마자 다리 통증은 사라졌다. 하지만 조마조마했다. '또 그러면 어떡하지.' 다행히도 다음 내리막은 통증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
6시가 되니 주위가 캄캄해졌다. 헤드램프를 머리에 차고 대회 필수 물품인 형광색 재킷을 입었다. 급한 오르막 길을 헤드램프로 비추며 올랐다. 뒤에서 러너 한 명이 따라왔다. 램프 두 개로 길을 비추니 뛰기 더 수월해졌다. 꽤 오래 혼자 뛰다가 둘이 함께 뛰니 반갑고 힘도 덜 드는 느낌이었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David)이다. 전에 80 km를 뛰어본 적이 있고 이번이 두 번째란다. 그는 물집이 심하게 잡히고 피가 나와서 양말에 달라붙었다. 고통스럽지만 끝까지 완주할 거라는 그의 말이 나에게 힘이 되었다.
컴컴한 밤에 오렌지색 리본이 잘 보이지 않았다. 세 개 리본 중에 하나씩만 야광 표시가 있어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두 번씩이나 길을 못 찾아서 데이비드와 함께 헤맸다. 지도를 보면서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 해야만 했다. 그런 동안에 82 km 마라톤에서 길 잃은 두 남자의 브로맨스가 시작되었다.
누군가 뒤에서 따라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돌아보니 낮에 만났던 닉 (Nick)이었다. 11시간을 넘게 뛰어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거의 모두 소진된 상태에서 기적처럼 다시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자연스레 합류한 조쉬 (Josh)와 함께 4명이 무리를 지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구간을 함께 달렸다. 그들이 없었다면 컴컴한 어둠 속에서 나 홀로 외롭게 달려야 했을 것이다.
이제 결론을 내야겠다. 마라톤은 혼자 달리는 것인지 아님 함께 달리는 것인지? 마라톤은 혼자 달리지만 함께 달리는 것이고, 함께 달리지만 혼자 달리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거의 13시간을 뛰어 저녁 7시 50분에 드디어 마지막 에이드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이제 남은 거리는 단지 4 km였다. 전날 가족들에게 빠르면 5시 늦어도 7시에는 결승선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는데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렸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이제 4 km 남았으니까 빠르면 30분이면 도착할 거라고. 이때만 해도 마지막 4km가 그렇게 길 줄은 몰랐다.
잠깐동안 내리막이더니 바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오르고 또 올라도 계속 급한 경사길이 이어졌다. 초등학교 (그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렸다) 여름방학 때 시외버스를 타고 강원도 홍천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갔다.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다 컸다는 마음에 부모님 없이 처음으로 혼자 갔다. 근데 아뿔싸,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고 말았다. 시내버스와는 다르게 한참 먼 곳에 있는 다음 정류장에 내렸다. 신작로로 불리는 도로가를 따라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강원도 산골이라 길은 굽이 굽이 이어졌다. 몇 번의 길모퉁이를 돌았다. '이번 길모퉁이를 돌고 나면 외할머니댁이 보이겠지.' 하지만 나무만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나오겠지?' 경사진 곳에 집은 없고 밭만 보였다. 그러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마침내 외할머니댁이 보이고 외할머니를 만나자, 다 컸다는 자부했던 사나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사정없이 쏟아졌다.
'아, 징하다. 진짜 징하다.' 가도 가도 오르막은 끝이 없었다. 4 km의 짧은 거리라 금방 도착하리라 생각했는데, 오르막과 지친 몸으로 인해 페이스는 느려지기만 했다. 마침내 1시간 만에 결승선이 보였다. 두 손을 쳐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힘을 내서 결승선을 통과했다. 아침 7시에 출발해서 13시간 47분 만에.
머리에는 헤드램프를 차고, 하루 종일 흘린 땀으로 인해 3 kg이나 체중이 줄은 상태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사진을 찍었다. 내 모습은 마치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가끔씩 나왔던, 탄광 매몰 사고로 인해 갱도에서 며칠씩 갇혀 있다가 구조된 광부 같았다. 이제 끝났다. 살아남았다.
감사하다는 마음뿐이었다.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준 가족들, 응원을 보내준 친구들과 성당 교우분들, 펀드레이징에 동참해 준 직장 동료들에게. 그리고 뛰는 동안 함께 해 준 하늘, 바람, 나무, 물, 새 같은 자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