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사는 임대사업자 K
그녀는 아침마다 호수공원을 달린다.
일산. 서울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도시.
물의 기척이 조용히 살아 있는 이 도시는, 그녀가 평온을 허락한 유일한 무대일지도 모른다.
눈 뜨고 일어나면, 무작정 달린다. 고요한 의식처럼.
“호수공원이 없었으면 그 동네를 빨리 나왔을지도 몰라요.”
그 말이 전부였다.
누군가의 일상에 단단하게 박혀 있는 장소는 한 사람의 마음 안쪽을 묵묵히 다져 놓는다.
새벽의 물기처럼 붙어 있던 말들.
그녀가 좋아하는 장소는 대부분 조용했다.
건축가 조병수의 ‘ㅁ자 집’, 유리로 둘러싼 중정이 있는 북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처럼.
그곳엔 설명이 없고, 의도가 묻히고, 재료가 말을 아끼는 질감이 있었다.
그녀는 거기서 편안하다고 했다.
“공간이 사람을 배려하는 것 같았어요.”
그녀는 직업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임대사업자? 아니 그냥… 김 아무개로 불러주세요”
어떤 상황에서는 이런 게 적확한 대답일 수 있다.
지금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지금 어떤 상태로 있느냐가 더 중요한 사람.
그녀는 ‘있는 그대로’를 실험 중인 사람이었다.
인터뷰는 서툴면서도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먼저 그녀를 나타낼 수 있는 단어를 물었다.
그녀가 처음 꺼내놓은 단어들은 네 개였다.
친구, 음식, 돈, 아름다움.
의외로, 무감각해서 떠올랐다는 단어라 했다.
“좋지도 싫지도 않고, 아무 느낌이 없는 단어들이에요.”
난 이것들이 과연 '그녀를 나타내는 단어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혹, '질문이 잘못 전달했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이런 단어들이야말로 감정의 중심에 오래 있었던 단어들이다.
너무 오래 곁에 두어, 이제는 무게를 잃어버렸을지 모르는 것들.
때로는 실망해서, 다시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것들.
그녀는 스스로에게 무뎌지는 법을 아는 사람 같았다.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름다움’은 그녀가 평소 자주 언급하는 말이었고 풍족함, 안정감, 건강함, 자연스러움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왜 중요한지 도통 눈치채기 어려웠다.
“아름다움은 저를 지켜주지 않아요.”
그녀는 한 시절,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살았다고 했다.
“아름다움은 쓸모없는 단어, 중요하지 않은 가치.”
그래서 삶은 재미가 없어졌고, 고요는 지루해졌고, 풍경은 흐릿해졌다.
다시 아름다움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을 미뤘다.
“나는 아직 진짜 나를 못 만나고 있어요.”
‘진짜 나’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흔치않다.
역설적이지만 그건 대부분, 어떤 자유를 잃어버린 기억에서 온다.
그녀가 ‘진짜 나’를 경험했던 과거의 여행에 대해 말해줬다.
한 달가량 일본으로 떠났던 여행이었다.
“그 여행이 저에게 진짜 자유를 줬어요.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저.”
그건 한 시절에만 허락된 감정 같았다.
일상이 되지 못한 자유.
일상으로 옮겨오지 못한 나.
다시 한번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단어 세 개를 요청했고 그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좀 오글거리지만… 별, 아름다움, 엄마.”
세 단어가 부끄럼을 많이 타는 소녀처럼 천천히 입 밖으로 나왔다.
별은, 누구의 시선도 필요 없이 존재한다는 의미였고 엄마는, 가장 사랑하지만 한편으론 가장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그런 것들로 자신을 말하고 싶어 했다.
그녀가 관계를 말할 때는 더 깊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과의 거리.
친밀함에 기대지 않는 방식.
그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거리 두는 법을 배운 사람처럼 보였다.
좋아하는 것을 규정했지만, 이제는 조용히 감추는 법을 택한 사람. 그래서 그녀의 문장은 오래 돌아서야 의미에 닿았다.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에서 지내는 게, 제일 건강하더라고요.”
그녀는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했다. 욥 베빙(Joep Beving), 생소한 이름의 음악가가 궁금해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미니멀리스트 클래식을 추구하는 피아니스트라고 나온다.
이쯤 되니 그녀의 명확한 취향에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그런 음악을 들을 때, 비로소 존재가 가벼워진다고 했다.
“그냥… 다 괜찮다고 느껴져요.”
음악은 그녀에게 풍요의 다른 이름이었다.
돈도, 아름다움도, 친구도 결국 음악과 닮아 있었다.
가볍게 흐르다가도, 어딘가를 깊게 눌러주는 감정.
이 인터뷰는 그녀의 와이(Why)를 찾는 여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진행되었다.
누군가의 존재 이유를 찾아내겠다는 다소 성급한 목적을 눈치챈 것처럼 대화는 자꾸 길을 이탈했다.
그녀의 말은 직선으로 가지 않았다.
스스로도 모르게 빙 돌아서,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왔다.
'아름다움'
다시 그 앞으로 돌아왔다.
의식하지 않게, 무심한 듯 다시 그 단어가 중심에 와 있었다.
그녀가 말하길
“사실… 그게 저한테 제일 중요한 단어였어요.”
말끝을 흐리며 덧붙였다.
“하지만, 한동안 너무 멀리 밀어놨어요.”
난 주제를 바꿔 사랑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조용히 답했다.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순간이요?”
질문을 반복하는 건 시간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질문의 결을 가늠하려는 의식이다.
“내가 무언가를 진심으로 해주었을 때, 그 사람이 정말 기뻐하면… 그때 사랑받고 있다고 느껴요.”
받는 게 아니라, 주는 순간. 그게 그녀에게는 사랑이었다.
호수공원의 아침, 강아지 한 마리가 지나가고, 햇살에 반사된 물빛이 고요할 때.
그녀는 말없이 사랑받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구체적인 누군가가 아니어도 된다고 했다.
한편 그녀는 자신이 그다지 많이 사랑받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존재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렇게 느껴진 적은 별로 없어요.”
이 말에는 쉽게 동화된다.
우리는 모두 존재만으로 사랑받고 싶어 하면서도, 존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믿도록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태양처럼 살고 싶었다고 했다.
그 말엔 낭만보다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20대 때, 늘 그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태양처럼 살지 못하고 죽으면… 관 뚜껑을 닫을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녀는 한동안 그렇게 살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야 그렇게 살 수 있는지를 모르겠어요.”
그녀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찾음은, 시작이 아니라 반복이었다.
“이거 저거 해봤는데, 아직 모르겠어요.”
이 말은 체념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반복에 지친 고백이었다.
삶이란 결국,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덜어내는 과정.
그녀는 스스로의 와이를 찾아가는 구조 안에서 자신을 탐색했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반은 포기였고, 반은 수긍이었어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완벽한 확신보다, 어중간한 동의가 오래갈 수도 있다.
그녀는 그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 결론이 맞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과정이 나한테 충분하지 않았던 거죠.”
대부분의 정답은 설득이 아니라 타이밍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그 타이밍을 기다리는 중이다.
문득 궁금했다. 그녀에게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질 않을 때는 언제일까?
그건 전쟁도, 정치도, 쇼킹한 뉴스도 아니었다. 가장 아끼던 세계에서, 가장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받은 실망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들을 가장 이기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말했다.
그녀는 그걸 지옥 같다고 말했다.
개인의 악함보다, 믿었던 공동체의 위선이 더 아프다고도 했다.
그건 분노보다는 슬픔에 가까웠다.
그녀는 그것 때문에 뭔가를 포기하거나 떠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저, 마음속 무언가가 닫혔다고 했다.
닫힌 마음은 말이 적고, 대신 눈을 자주 깜빡인다.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방식에 대해서도 그녀는 무심하게 털어놓았다.
“요즘은 사람들과 거리도 두고, 웬만한 일엔 억지로 맞추지 않아요. 다만 가족… 부모님한텐 여전히 애를 많이 써요.”
그녀는 엄마에게 고심해서 선물을 골라도 늘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걸 말하면서 웃었지만, 웃음 아래 단단한 감정이 있었다.
“이젠 그냥 돈으로 드려요. 그게 제일 안전하니까요.”
가장 사랑하는 존재에게, 가장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
그녀는 그걸 배워버렸다.
그녀는 친구라는 단어를 말할 때, 의외로 범위를 넓게 잡았다.
“위로는 70대, 아래로는 10살 차이 나는 동생까지요.”
다양한 세계를 넘나드는 사람같았다.
그 말은 화려하지 않고, 고요하게 들렸다. 그리고 덧붙였다.
“하지만, 제 친구들을 한 공간에 모아두면…
서로 친구가 되긴 어려울 거예요.”
그녀는 매개자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 공간과 감정 사이.
그리고 자기 자신과 삶 사이.
그녀는 균형보다는 유지를 택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진짜 나를 만나는 건 두렵지 않아요.”
이 말은 의외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못해서 답답해요. 어떻게 꺼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그녀는 자신을 감추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꺼내는 방식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아까 말했던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는 말 있잖아요. 그건요, 그걸 절감하지 못하는 제가 지금의 저예요.”
말이 조용했지만, 정확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사람들은 존재만으로 사랑받고 싶다고 하지만, 정작 진짜 좋아하는 걸 마음껏 해보지 못해서 그 감정이 어색한 거 아닐까요?”
그녀는 그걸 알고 있었다.
마음껏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믿긴 어렵다는 것.
이 인터뷰에는 결론이 없다.
그녀의 말들처럼, 이 인터뷰도 계속 돌아 나온다.
다시 친구, 다시 음식, 다시 돈, 다시 아름다움. 그리고 다시, 자신.
그녀는 지금 자신을 꺼내는 중이다.
무언가를 설명하려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보이려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조심스럽게. 마치 유리창 너머로 호수를 바라보듯이.
그녀는 아직 빛나지 않았지만, 빛을 품고 있었다.
그건, 태양처럼 사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