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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함이 갖는 가능성

2025.7.26 말레이시아 그랜드 오픈을 마치고서

by hyejinsung

“일본 말차보다 너넨 저급이야.”

말레이시아 1호점 가오픈 직후, 구글 리뷰에 처음 본 문장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녹차와 말차 맛에 익숙했던 국내 고객들의 오랜 반응과는 달리, 해외에서는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렸다. 심지어 맛의 취향 차이를 넘어 그저 “너넨 틀렸어”라는 평가가 전해졌을 때는 심장이 한순간 내려앉는 듯했다.


그동안 여러 국가의 예비 파트너와 외국인 방문객들을 통해 한국 말차의 반응을 수년간 검증해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설명과 학습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과 ‘소비자가 한 잔을 들고 즉각적으로 느끼는 것’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었다. 열린 태도의 조건이 없는 순수한 고객들에게는 전후 맥락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냉철한 맛의 평가만 내려졌다.


차의 맛과 색은 재배 방식에서 크게 갈린다. 우리나라 말차는 주로 재래종에 유기비료를 더해 길러져, 자연스러운 빛깔과 깔끔하게 떨어지는 끝맛이 특징이다. 반대로 일본 말차는 질소비료를 집중적으로 사용해 선명한 초록빛을 띠며, 감칠맛과 고소한 묵직함이 강하게 살아난다. 모든 차가 그렇진 않지만, 두 나라 말차의 결은 이렇듯 서로 다른 방향으로 드러난다.

또다시 리뉴얼에 리뉴얼을 거듭하며 현지 다원과 생산지를 다니던 나날들

그러나 일본 말차로 처음 경험을 쌓은 외국인들에게 한국 말차나 중국 말차는 여전히 낯선 기원이다. “한국에서도 말차를 생산하니?”라는 질문이 해외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놀라움이다. 6년 전 국내에서 유기농 한국 말차라고 소개할 때 받던 반응이 이제 해외 무대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시장은 달라졌다. 더 이상 한국 안에서의 경쟁자가 아니라, 다국적 글로벌 플레이어들이다. ‘왜 한국 말차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지는 자리에서, 나는 국기 대항전에서 패배한 듯 잔뜩 움츠러든 심정으로 한국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일본 말차에 이미 익숙해진 글로벌 소비자들을 위한 테이스팅 기준점의 조정이었다.


해외 소비자들 입맛 기준을 고려한 제주 싱글 오리진 버전의 퓨어.

“한국 말차의 차이를 알아달라”는 호소만으로는 부족했다. 학습의 진도는 너무 방대했고, 국내 차 산업의 역사적 자료도 충분치 않았다. 그래서 작년 리뉴얼에서는 보성과 제주산 말차를 확장해 메뉴별로 감칠맛의 강도를 다르게 가져가려 했다. 라떼 베이스에는 고소하고 묵직한 바디감을 살리되, 외국인 고객들이 주로 찾는 워터 베이스에는 산뜻하고 청량한 풍미를 강조했다. 무엇보다 유기농 말차가 낼 수 있는 최상의 색도를 끌어올리고자, 깔끔한 피니시를 유지하면서도 선명한 색을 찾는 전면 교체를 1년 넘게 이어갔다.


리뉴얼 원물에 맞춰 또다시 현지 레시피에 맞게 조정하는 말레이시아 트레이닝팀과 우리 교육팀

6월 12일, 숨 막히는 4개월의 과정 끝에 다시 제품 리뉴얼과 말레이시아 그랜드 오픈을 맞이할 수 있었다. 품질 개선만 바라보고 힘들게 밀어붙인 결단이었고, 그 과정은 모든 부서와 파트너들의 치밀한 합과 신뢰가 아니었으면 절대 이뤄낼 수 없는 변화와 속도였다. 정식 오픈일에 앞두고 다시 말레이시아로 넘어가 실제 해외 고객들이 남기는 잔의 정도와 차이를 살피고, 리뉴얼된 테이스팅에 맞춰 파트너들과 포스트잇에 레시피를 적어가며 곧장 수정을 거듭했다. 리뉴얼된 매장의 전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객이 남기는 직관적 반응이었다.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현지에서 들려오는 작은 힌트까지 엄중하게 받아들이려 했다. 우유, 현지 온도, 말차의 습도까지 모든 조건이 우리를 다시 원점으로 데려다 놓았기 때문이다. 파트너들의 만족과 고객의 현지 반응을 다시 들었을 때 그제야 해외 무대에 진짜 서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올해 2월 말 가오픈에 이어, 7월 5일 해외 첫 1호점 그랜드 오픈일 행사한 날

슈퍼말차가 전하고 싶은 ‘왜 한국 말차인가’, ‘왜 우리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긴 숙제이자 미완의 가능성으로 남아 있다. 일본 말차 문화는 이미 성숙 단계에 올라, 전통과 역사가 만든 기술과 자산이 풍부하다. 반면 우리나라 차 문화는 생산과 소비는 많았음에도, 그것을 계승하고 자산화하며 가치를 알려온 역할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역사적 아쉬움이다. 그래서 힛더티라는 이름으로 첫 사무실을 열었을 때, 우리가 그 역할을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무모한 도전에 함께하는 해외 파트너들에게까지 무거운 미션을 더하고 있는 것도 안다. 안정된 길이 아니라 가능성과 패기 하나로 시장을 개척하는 길을 함께 걸어주는 파트너들과 멤버들에게, 늘 미안함과 감사가 교차하는 나날들로 더없이 무거운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부족한 점 투성이인 우리를 믿고 늘 지지해주는 말레이시아 파트너팀과 그랜드 오픈 축하 기념 서프라이즈


일전에 르라보 편 매거진 B에서 창립자 파브리스 페노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언제 진도를 멈춰야 할지를 아는 그런 천재적인 감각을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완벽해져서 오히려 지루해져버린다.”


곧, 균형이란 완벽한 상태에 이르러서가 아니라 그 직전, 아슬아슬한 순간에 의도적으로 멈출 줄 아는 데 있다는 메시지였다. 완벽에 집착하다 보면 불완전한 역사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꾸만 메우려 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르라보 편 매거진을 집어 든다. 미완의 형태는 때때로 불안과 위태로움을 안기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과 동력이 되기도 한다. 분명한 건 그 적정선을 올바른 철학과 신념으로 이해 시켜야 하며, 그 역할은 창업가의 엄중한 책임이자 무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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