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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나 Dec 02. 2020

주여, 나를 보살피소서

신을 잃었다


<주여, 나를 보살피소서>

원망도 남지 않았다.
그토록 미워하고 원망한다던데 생각보다 밉지도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그래. 신이 나랑 무슨 상관이길래 나를 보살피겠어. 그녀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아네스라는 세례명을 가진 그녀의 엄마는 모태신앙을 강요하기보다 자녀들에게 일찌감치 종교 선택의 자유를 주었다. 물론 강요만 하지 않았을 뿐 가정의 분위기와 소극적인 포교가 성장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되긴 힘들었을 것이다. 사춘기가 되자 그녀는 크리스티나라는 세례명을 얻었고 그녀의 오빠는 무신론을 선포하였다.

종교는 그녀에게 인생의 다양한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첫사랑 그는 성가대에서 매력을 발산하는 모두의 첫사랑이었고 왕초보인 중2는 그가 다니는 학원의 마스터반에 들어가 영어를 두 달 만에 끝내는 기염을 토해내었다. 첫사랑의 가슴앓이가 학생에겐 가장 학업적인 방식으로 빛을 발했다. 아일랜드 출신의 신부님은 그녀를 붙들고 틈틈이 영어를 가르치고 발음을 교정해주었다. 대회를 나갈 때마다 늘 꽃을 들고 축하해주시는 신부님은 그녀에게 완벽한 스승이고 멘토였다.

고3이 되어선 주말 자율학습에 밀려 미사를 보는 날은 줄었고, 대학 신입생이 되어선 소위 ‘핫’한 남학생들이 많이 온다는 연희동 성당을 몇 번 가본 것을 제외하면 그녀에게 종교는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주말엔 연애를 하네 스키장을 가네 늘 바빴고 성인이 되어선 냉담엔 항상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가 태어나며 종교를 언급하는 건 어느새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해야만 나올 수 있는 소재로 고리타분한 옛날 옛적 이야기가 시작될 때뿐이었다.


십 년이 훌쩍 넘은 냉담에도 불구하고,
늘 다시 돌아가고 싶은 좋은 추억만 가득한 인생의 선물 보따리 같은 곳.
그곳이 성당이었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믿음은 무용했다.
그리고 신은 무력 했다.
그녀는 그 흔한 미움도 원망도 들지 않았다. 나와 무슨 상관이길래 나를 보살피겠어.
그녀에게 신은 남이고 모르는 존재였다.
그저 그녀의 삶의 철없던 격동기에 그녀에게 최소한의 도덕적 행동지침을 주고, 이기적이고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그녀에게 조금은 이타적인 성격과 타인에 대한 관심을 습득시킨 곳.
그곳이 종교이고 그리고 신이었다.

죽음 앞에서 어떤 노력과 염원도 무기력해지는 트라우마 같은 경험은 심장을 쥐어짜다 뽑히는 듯한 공황 발작으로 이어졌다. 무력함의 감정은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심장의 통증마저도 죽음으로 이를 수 있다는 공포로 식은땀이 흘렀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너무 사실적이어서 단순히 공황장애라는 말로 정의내려지는 것이 억울할 정도였다.

그리고 생각한다. 갑자스런 죽음 앞에선 신은 나와 상관없다. 그런 신이 나를 보살필 리가 없어.

지금도 그녀는 냉담 자다.
하지만 1년에 한두 번쯤은 아이들과 친구들과 함께 미사를 보러 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그녀의 엄마처럼 소극적 포교활동을 한다. 왜 성당을 가야 하냐며 묻는 아이들에게 어떤 종교를 가져도 좋지만 이왕이면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엄마도 선택한 가톨릭이었으면 좋겠어.라는 꼰대 같은 설명을 늘어놓는다.

마음이 그렇다.
나는 신을 잃었지만, 누군가는 나를 다시 데려다주길. 다시 신을 찾아 내 손을 잡고, 네 탓이 아니야. 삶과 죽음의 순간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저 그렇게 정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가며 마지막을 조금은 빠르게 조금은 느리게 맞이하는 것일 뿐. 너의 무력함이 잘못이 아니야.

그런 순간이 오면,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의 공황 발작의 공격 따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혹여 찾아오더라도, 더 이상 내 탓은 아닐 테니. 죽음의 공포는 느끼지 않을 거야.


처음으로 공포속에 기도하였다.

주여, 나를 보살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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