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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고양이 Aug 11. 2019

흥겨운 콧노래처럼 '라'

4화 

그녀가 쓴 글이 “라”처럼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는, 글이 그녀에게 “라라라”로 시작하는 즐거운 멜로디가 되어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은 글쓴이를 닮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그녀에게 흥겨운 노랫가락이 나올까. 그녀의 인생 어느 구석에 흥겨움이 있었을까? 내가 본 그녀의 수많은 미소와 웃음은 그녀의 진정한 행복이긴 했을까?

     

........

     

연재에게 할머니집은, 빡빡한 부모에게서 벗어나 마음껏 티비보며 게임할 수 있는 해방공간이었다. 내가 처음 연재에게 스스로 글씨 공부도 할겸 할머니에게 글씨를 가르쳐주라는 이상한 요구를 했을때 그가 걸었던 조건은 일주일 3천원의 용돈이었다. 흥정은 빨랐고 진행도 일사천리였다. 약속한 다음 날부터 그는 매일 자전거로 10분 길을 달려 할머니집에 갔다.

엄마와 말되는 동무하나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살갑지 않은 그 녀석이 할머니를 좀 더 살갑게 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큰 건 엄마에게 말의 도구를 주는 일이었다. 듣고 말하는 것을 대신해줄 무엇. 전화가 안되면 문자라도 보내어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어려서부터 귀가 좋지 않았던 엄마는 남들보단 티비소리가 좀 크다 정도였지 생활이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전화 소리조차 못듣게 되자 공포로 다가왔다. 평생 혼자 산 그 여인이 귀마저 멀어 침묵속에 갇히는게 무서웠다.

불편해서 틀니도 제대로 못하는 엄마가 보청기라고 멀쩡히 끼고 있을리 없었다. 정성껏 겨우겨우 달래서 보청기를 해오면 보청기 회사를 탓하며 기술자를 탓하며 불편하다고 처박아 두었다. 처음엔 얼르고 달래고 아이처럼 뜻 받들어 병원까지 데려가 보청기를 해 끼워 넣었다가도 얼마 후 근무시간에 전화해 불편하다며 보청기 회사를 막 욕하는 걸 듣자면 화가 치밀어올랐다. 전화기에 대고 소리소리 지르며 설명해도 못 듣는 엄마지만 내가 화난 건 귀신같이 알아 한마디 할라치면 전화를 끊어버린다. 엄마에게 화내지 말자고 다짐해도 소용없다. 하루를 못 간다.

     

그래서 나보단 연재가 낫다. 내게는 투덜이 스머프 연재지만 그래도 편견없는 아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을 정도로 무심하고 투덜대고 웃어주는 아이라 할머니에게도 똑같다. 몸 불편한 할머니이니 내가 더 잘해주어야한다거나 배려해야한다는 생각이 없고, 그러다보니 쏟아 놓은 본전 생각에 더 화를 내거나 짜증 내는 일도 없다. 할머니 글씨 가르쳐주는 일을 하며 그 녀석은 직접 노트를 골랐고 내게 교재도 주문했다. 얼마 후 진짜 엄마가 한글을 읽고 쓰기 시작했다.

     

난 엄마가 진짜 글씨를 배우리라곤 생각 못했다. 글씨를 몰랐지만 그녀는 원하는 가게를 찾았고 타야할 버스를 골라잡아 탔으며 세금 한번 밀리는 일이 없었다. 전주며 수원이며 지역을 돌며 모내기를 했고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식당일을 했지만  글씨를 몰라 어려운 일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엄마 밑에서 우린 각자 알아서 필요한 모든 것을 읽고 쓰고 결정하며 자랐다. 내가 ‘가요무대’를 보며 띄엄띄엄 ‘비내리는 영동교’와 ‘얄미운 사람’ 등의 가사를 필사해 한마디 한마디 불러주면 엄마는 흥얼대며 마늘을 까고 마루를 닦고 김치를 담았다. 그녀와 함께한 모든 시간동안 엄마가 글을 배울 수 있다거나 그녀가 그럴 마음과 시간을 내리라곤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던 것이 내 생일에 “부부간에 사이가 좋으니 보기 좋다. 차 조심하고 몸 건강해라”라고 쓰더니 모든 봉투마다 글씨가 쓰였다. 쓴 글을 보여주며 이렇게 썼노라 읽어줄 때는 한 번도 그녀에게서 본 적 없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제대로 썼는지 한번 들어봐라.”

     

“그간 늘근 사람 써주어 고맙소. 내가 손이 빠르고 눈치가 좋아 아무리 안들려도 알아서 한다 햇지만 그래도 늘 재대로 잘 햇는지는 모르것소.

갑자기 그만둔다고 인사하는게 내 성미에는 좀 거시기하여 이리 인사 합니다.

고마웠고 이리 끝나니 시원하기도 섭섭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끝낫소. 끝.”

     

“우리 엄마 진짜 잘하네.”

     

“그리도 좀 잘했쟈?!”

     

“응, 진짜 잘했어!”

     

그녀는 웃으며 말한다.

“내일 놓고 와야겄다”

     

그때 나는 그녀의 글이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공부를 안해서 그렇지 내가 똑똑한 인간여. 다 알아.”라고 늘 말하는 엄마가 자신의 말처럼 제법 배운 척 아는 척하는 도구로 글을 쓰길 바랐다. 그러나 엄마는 나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가장 엄마답게 글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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