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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Feb 07. 2018

엄마'사람'으로 살겠습니다.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결이는 선천성갑상선기능저하증이었습니다. 생후 15일부터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해 돌이 지나며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추적검사는 받고 있습니다.


2주, 한 달 간격으로 검사를 받고 호르몬제 복용양을 조절하다 생후 8개월이 지날 때 쯤 갑상선 호르몬 수치는 안정세를 찾았습니다. 병원에 갈 때면 “이제 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듣기 좋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선생님이 “복직 언제 해요?” 물으시더군요. 병원 예약시간에 애 둘 챙겨 도착하느라 민낯에 단발머리를 짤뚱하게 묶고 있는데 복직에 관한 질문을 들으니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습니다. 게다가 의사는 하이힐 신고 예쁘게 꾸민 ‘여자’였죠. 괜시리 내 몰골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해야죠.” 건성으로 대답하고 진료실을 나섰습니다.


2주 후 진료일, 의사선생님은 검사결과를 알려주며 또 물었습니다. “복직 언제 해요?” ‘아직 아이가 없나? 아이가 아플 때 엄마 마음이 어떤지 모르니 이런 질문을 두 번이나 할 수 있나’ 순간 조금 짜증이 났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결이 다 나으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마치 내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결이가 약을 끊으려면 최소 3년이에요. 세 돌이 됐을 때 검사를 해보고 약을 끊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거죠. 결과에 따라 평생 약을 먹을 수도 있어요. 그럼 엄마는 평생 일 안 할 거예요?” 선천성 갑상선기능저하증을 앓는 아이들 중 일부는 갑상선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갑상선 호르몬이 필요한 양보다 적게 분비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경우 평생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런 경우 결이의 완치 판정 이후로 미뤄둔 복직을 어떻게 해야할지는 고민한 적 없었습니다.


“결이의 경우 갑상선호르몬 수치가 잘 유지되고 있어요. 지금처럼 지낸다면 큰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매일 약을 먹여야 하지만 옆을 지키며 간호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에요. 엄마가 결이의 질환을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대해야 아이도 ‘나도 다른 아이와 다를 게 없구나’ 생각하며 자랄 수 있어요. 약을 유산균 비타민같은 영양제와 비슷한 거라고, 이걸 먹으면 튼튼하게 자라는 거라고 생각하게 해주세요.”  


의사선생님은 그래서 복직을 권유한다고 했습니다. “같은 뜻에서 결이의 상황 때문에 복직을 미룰 필요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엄마가 엄마의 삶을 이어갈 때, 아이도 ‘내 병이 별 것 아니구나’ 느끼는 데 도움이 됩니다.”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진료실에서 나서려는데 의사선생님은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나도 아이 키우는 엄마예요. 그래서 지금 결이 엄마 머리 속이 결이로 꽉 차 있다는 걸 알아요. 근데 그게 건강한 것 같지는 않아요. 우리는 엄마이지만 엄마가 우리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그 뒤로 내내 ‘나는 엄마이지만 엄마가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며 엄마가 됐습니다. 엄마를 공부한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데 눈도 뜨지 못하는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돌보는 일이 모두 내 ‘할 일’이랍니다.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엄마노릇에 집중했습니다. 아이가 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엄마’에 푹 빠져 ‘엄마 이전의 나’는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생각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이 너무 길지는 않은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우는 아이 붙잡고 “엄마도 좀 살자.” 울음이 터져나올 때면 ‘살 궁리’를 시작해야 합니다. 하루 세끼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하루 한 끼는 양 손을 이용해 맛을 음미해가며 밥을 먹고, 아이의 울음소리에 방해받지 않고 통잠을 자는 날이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조금씩 ‘엄마 이전의 나’로 돌아갈 준비도 해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엄마도 좀 살자’라며 가장 크게 울었던 날은 내가 없어진 것 같은 날이었습니다.


심리학자인 헴마 카노바스 사우는 저서 『엄마라는 직업』에서 “여성의 정체성은 엄마가 된다는 사실만으로 규정되지 않으며 고갈되지도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지나가는 아이를 넋놓고 바라보다 넘어지기 일쑤인 사람이고, 32살에는 꼭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했었고, 아이는 품어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두 아이 모두 유모차 한 번 태우지 않은 엄마이지만 엄마가 된 뒤에도 ‘엄마 이전의 나’는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이기적인 엄마라서가 아닙니다. 그냥 사람이기에 잊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엄마 손이 필요하지 않은 시기가 온다고들 합니다. 그 때 어떻게 살지를 대비하라고들 합니다. 아닙니다. 칠순을 바라보고 계시는 친정엄마는 주말마다 퀭한 눈으로 친정을 찾는 딸을 품고 “환갑먹은 자식도 자식이라더니, 내 눈엔 아직 너는 챙겨야 하는 자식일 뿐”이라고 하십니다.


아이들에게 엄마 손이 필요하지 않은 시기는 없습니다. 엄마 손이 필요하지 않은 때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아이와 어떻게 같이 살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그 고민에는 엄마 이전의 나, 엄마인 내가 모두 들어 있어야 하고요.


지난해 회사에서 태스크포스(TF)팀에 소집됐었습니다. 그동안은 TF에 차출되면 일과 업무에서 손을 떼고 TF 업무에만 집중하곤 했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하고 부서장에게 언제부터 어디로 출근하면 되냐고 물었습니다. 부서장은 이번 TF는 장기 프로젝트이니 일과 업무를 수행하며 TF와 병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단기 프로젝트라면 일과 업무에서 떨어져나가 새로운 미션을 수행하고 원래의 업무로 복귀하면 됩니다. 장기 프로젝트면 기존 업무와 병행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엄마라는 역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엄마가 된 이상 앞으로도 쭉 엄마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긴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장기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엄마 이전의 나’와 ‘엄마인 나’를 잘 조화시키는 것 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엄마를 넘어 엄마‘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틈틈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대학 4학년에 언론사에 입사해 14년째 그 언론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올해 7살 5살이 된 아이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워킹맘 생활을 더 즐겁게, 덜 힘들게 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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