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되죠?”
“날기를 갈절히 원하면 돼.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
“그럼, 죽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 있단다. 삶의 모습은 바뀌지만, 목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나비가 되어보지도 못하고 죽는 애벌레들하고는 다르단다.”
- <꽃들에게 희망을> 중, 트리나 폴러스 -
어려서 읽었던 책을 마흔에 다시 읽었다. 나이가 들어서 철이 든 걸까? 어려서는 단지 재미로 다가왔던 내용이 지금은 내 삶에 비쳐 큰 깨달음을 준다. 나비가 되면서 겪게 되는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변화의 과정은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
나도 간절히 변화를 갈망했다. 마흔 즈음 찾아온 마음속 불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누구보다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반복적인 일상과 익숙함에 갇힌 내 모습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마흔을 넘어서며 나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대로 가다간 등 떠밀려 변화해야 한다. 이 생각이 나를 두렵게 했다. 나는 내가 중요한 갈림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어느덧 세 권의 책을 쓴 저자가 됐다. 그때 내가 알게 된 건, 아무 의미 없이 버티다 보면 결국 한계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절박함이 느껴진다면 그때가 변화해야 하는 순간이다. 물론 마음먹는다고 모든 사람이 변화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마흔의 변화가 힘든 이유는 오랫동안 몸에 뵌 습성을 끊어내는 과정에서 혼란과 고통이 크기 때문이다. 길든 시간에 비례해 저항도 커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마흔의 전환은 달라야 한다. 정말로 살고 싶은 인생이 있다면 일대 전환을 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건 걸고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걸어야 할 건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과거 타성을 끊어내고 내가 바라는 일에 집중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조셉 캠벨식으로 말하자면 ‘세상을 향해서는 죽고, 내부로부터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는 신화학자답게 부름이 오거든 영웅 여정을 떠나라고 촉구한다. 약속된 시간이 다 지나도록 그곳에 머물러 있다면 결국 썩어버리고 만다.
이 책 <꽃들에게 희망을>은 이 말로 시작하는 결론을 내두었다.
“세상이 꽃으로 가득 차려면 수많은 나비가 필요합니다.”
나는 이것이 작가가 우리에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희망을 전하는 나비로 변혁하라는 응원이며, 격려의 소리 말이다. 자기 변혁에 성공한 개인들이 넘쳐나야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그렇다. 자기답게 살아가려 애쓰는 이 시대의 마흔들이 넘쳐나는 모습은 얼마나 황홀한 전경이겠는가!
마흔들이여, 자신을 향한 진정한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