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행복의 비밀’을 배우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현자를 찾았다. 청년은 40일 동안 사막을 건너 산꼭대기에 위치한 아름다운 성에서 현자를 만날 수 있었다. 가는 길은 고됐지만, 마침내 현자의 가르침을 받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현자님, 저는 행복의 비밀을 배우러 먼 길을 왔습니다. 부디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어서 오게. 자네가 찾는 행복의 비밀을 알려주겠네. 하지만 먼저 이 저택을 구경하고 오게나. 다만 한가지, 이곳을 걸어 다니는 동안은 이 찻숟가락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흘려서는 안 되네.”
그렇게 저택을 한 바퀴 구경한 청년이 다시 현자 앞에 섰다.
"자, 어떤가? 저택의 아름다움은 잘 감상했는가?”
“저… 죄송하지만, 저택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기름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그럼 다시 한번 저택을 감상하고 오게나. 이번엔 꼭 저택의 아름다움을 보고와야 하네.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대해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나.”
청년은 다시 찻숟가락을 들고 저택 구경에 나섰다. 이번엔 저택의 천장과 벽에 걸린 예술품들을 자세히 살펴봤고, 정원과 주변 산들, 그리고 화려한 꽃을 보면서 감탄했다. 그렇게 돌아와 현자 앞에 선 청년은 자신이 본 것을 신나게 설명했다. 흐뭇하게 듣던 현자는 이렇게 물었다.
'그래, 그럼 내가 그대에게 맡긴 기름 두 방울은 어디로 갔는가?'
그제야 숟가락을 살핀 청년은 기름이 흘러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청년에게 현자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 내가 그대에게 줄 가르침은 이것뿐이라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과 동시에 숟가락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다네."
현자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가? 내가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사람의 인식에 따라 의견이 분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는 숟가락에 담긴 기름이 흘러넘칠 것이고, 기름만 신경 쓴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지 못할 것인데, 어찌 둘 다를 구하라는 것인지, 그 뜻이 명확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나는 이야기가 주는 깊은 의미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현자는 완벽한 균형이라는 불가능한 과제를 제시한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적인 이중성을 깨닫게 하는 지혜를 주기 위함이었음 말이다.
젊은 시절 나는 한쪽에 치우친 삶을 살았다. 바쁜 회사 일을 핑계로 날씨 좋은 날에도 아이들을 집에만 머물게 했고, 남보다 빠른 승진을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희생했다. 주변에선 성공했다고 말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마치 기름만 신경 쓰느라, 저택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젊은이처럼, 나는 성공에만 집중한 채 삶의 진정한 의미를 놓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성공과 행복을 양극단에 놓고 생각한다. 성공을 위해 쉼 없이 달려가다 보면 정작 행복을 놓치게 되고, 행복을 찾기 위해 모든 걸 내려놓으면 목표를 이루기 어려워진다고 여긴다. 그러나 진정한 삶의 지혜는 성공과 행복의 양자택일적 선택이 아니라, 둘 간의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
현자가 말한 '행복의 비밀'도 오직 하나만을 붙잡으려는 집착에서 벗어나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때 가능하다. 이제 나는 내 삶을 다시 돌아본다. 나는 지금 숟가락 속 기름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주변의 아름다움에 빠져 정작 내가 지켜야 할 본분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가? 현자의 가르침은 마흔의 나에게 다시 한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의 삶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