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남편이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석 달 후,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아내가 화를 내며 따지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회사에서는 물론이고 집에서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어. 하지만 인생이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을 때, 갑자기 외로워졌어. 지금보다 더 나다운 인생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좀더 모험을 맛볼 수 있는 인생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중년의 사내 이야기를 접하며, 단테의 <신곡>이 떠올랐다.
“인생의 중반에서 나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을 헤매었네.”
위대한 시인 단테조차 인생의 중반에 길을 잃고 어둠 속을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신곡>에 묘사했다. 이는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혼란에 빠진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를 상징한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중반에 이르러 길을 잃고 위기에 빠지는 걸까? 혹시 중년에 찾아오는 위기가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단순한 일탈적 상황은 아닐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칼 융(C.G. Jung)에 따르면 중년의 위기는 인간의 심리적 성장 과정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다. 젊은 시절은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억제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정체성을 따라왔다면, 중년에 이르면 무의식에 억눌려 있던 우리의 진짜 모습인 ‘그림자(Shadow)’가 떠오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의문이 일어난다. 위에 중년의 남편이 말한 “지금보다 더 나다운 인생"은 그가 오랫동안 억눌러온 내면의 목소리이면서,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고자 하는 갈망을 나타낸다.
이러한 주장은 융 심리학을 현대적 중년의 문제로 끌어올린 제임스 홀리스(James Hollis)로 이어진다. 그는 이런 중년의 변화를 ’인생 후반기에는 좀 더 의식적으로 살라는 영혼의 다소 까다로운 초대’라고 표현한다. 이 의식은 그동안 익숙했던 환경에서 벗어나 컴컴한 숲으로 들어섰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데, 그 메시지를 이해한 사람들은 심리적 혼란 속에서도 자신과 조우해 성숙을 이룰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칼 융은 “중년의 위기는 일종의 자기 치유의 과정이다”라고 말하며 상황을 깔끔히 정리해 준다. 자, 그럼 우리가 중년에 찾아오는 위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답은 나와 있다. 대다수 사람은 위기의 시기라고 부르지만, 진실은 자신을 진실되게 들여다보라는 내면의 신호이며, 좀 더 의미 있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영혼의 부름인 것이다.
그렇기에 중년의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한 사람들은 더 깊은 자기 이해와 수용,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 그리고 삶에 대한 더 깊은 감사를 느낀다. 그럼 끝으로 이 시대의 마흔에 묻고 싶다.
당신은 이 까다로운 영혼의 초대에 응할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