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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삶의 본질이다

by 엄태형


나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신은 내게 물었다.

“그래, 내게 궁금한게 있다고?”


나는 대답했다.

“네, 인간에게서 가장 놀라운 점은 무엇입니까?”


신이 답했다.

“어린 시절에는 지루하다고 서둘러 어른이 되길 바라고, 어른이 되어서는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길 갈망하는 것.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리고, 그리고 다시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돈을 다 잃는 것.

미래를 염려하다가 현재를 놓쳐 버리고, 결국 미래도 현재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하는 것.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살더니, 결국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무의미하게 죽는 것이다.”


- 신과의 인터뷰 / 나짐 히크메트 -





신도 놀란 인간의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신의 의도에서 벗어난 것이었고, 인간 스스로가 키운 재능이었다. 본능적으로 인간이 생존에 유리하게 생각하고 진화해 왔다면, 신의 놀람은 분명 감탄이 되어야만 했을 터였다. 그럼에도 그 놀람이 연민으로 비친다면 인간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본업이 IT 엔지니어다 보니, 나는 항상 논리적인 비약 없이 완벽한 결과를 원했다. 좀 더 빈틈없이, 좀 더 나은 내용으로, 무엇하나 결점 없이 해내야만 한다. 이런 직업병이 원인이 됐을까. 내가 사는 삶의 모습 또한 비슷하게 흘러간다. 좀 더 상황이 나아졌을 때, 좀 더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을 때, 그럼 좀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완벽을 좇는 삶은 늘 현재를 미루게 했다. 나에게 있어 지금이라는 순간은 미완이며, 불완전한 상태였고,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다. 언젠가 올 ‘그날’를 위해 지금은 참고 희생하는 게 습관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조금만 더 지나면 행복도 여유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 믿으며 나를 채찍질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바람은 더 흐릿해지고 멀어져갔다. 어쩌면 나는 길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흔이 지난 어느 시점에 문득 든 의구심이 나를 잠 못 들게 했다.

“언제가 그날이 오면 정말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신이 가진 연민이 내게도 닿은 듯한 기분이 들었을 때, 나는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삶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일들을 모두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 노력했고, 우리의 인생은 완벽하게 설계되어야 할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흔들림 속에서도 눈부신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 불안전함 속에서도 찬란한 지금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그 순간을 내 인생을 통해 직접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런 마흔의 각성은 내게 새로운 희망을 준다. 모든 것을 애써 통제하기보다 흐름에 맡기고, 예상치 못한 변화마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여유를 주고, 실패와 흔들림 속에서도,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배움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면서 내가 좀 더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이제는 완벽한 미래를 기다리기보다, 불완전한 오늘을 온전히 살아내는 연습이 필요한 순간이다. 조금 서투르고 때론 멈춰 서도 괜찮다. 내가 선택한 이 길 위에서, 매 순간을 진심으로 경험하며, 나만의 색으로 인생을 채워가고 싶다.



오늘도 마흔의 각성은 내게 속삭인다.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라. 흔들림과 불완전함 속에서도, 네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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