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몸서리치게 싫어했던 적이 있다. 젊은 시절,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세상에서 도태될 것만 같고, 고요한 방 안에 홀로 남겨지면 마치 내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누군가의 말소리, 웃음소리, 따뜻한 시선 하나가 절실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다. 외로움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마흔이 넘으면 자신을 고독 속에 내몰 수 있어야 한다. 고독은 마음 깊이 묻어둔 질문들과 마주할 유일한 기회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에 집중하며 살 것인지, 남은 인생에 대한 계획은 혼자있을 때만 가능하다.
나는 바쁜 생활 중에서도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늘 바쁜 회사 생활이지만, 의도적으로 휴가를 내고 온전히 나 자신과만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혼자 강변을 걷거나 도심 속 대형 서점에 들러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그런 날은 별도의 약속을 잡지 않는다. 온전히 혼자 시간을 보내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정리한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해 복잡한 일상에 가려져 미뤄두었던 나만의 질문들이 떠오르는 경험을 한다. 이 시간은 끊임없이 타인의 기대와 요구에 맞춰 살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페이스대로 숨을 고르고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고독한 시간을 피하는 이유는, 그 속에서 마주하는 ‘진짜 나’가 낯설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가 되는 순간 드러나는 자신의 민낯을 온전히 바라볼 준비도, 연습도 되어 있지 않다. 더욱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고요하게 혼자 있을 권리마저 쉽게 빼앗아 간다. SNS와 유튜브는 끊임없이 혼자있는 시간을 침범하고,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에 우리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만든다. 그렇게 타인의 일상에 빠져 지내다 보면, 정작 나 자신의 삶은 점점 흐려진다. 유혹이 넘치는 시대에서 고독의 권리를 지킨다는 건, 어쩌면 가장 어렵고도 필요한 용기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고독은 본래 어려운 것이라는 릴케의 말에서 위안을 얻는다. “고독하다는 것은 훌륭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독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어렵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 일을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그 어렵고 힘든 일을 기꺼이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고독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다듬는 시간이다.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그 조용한 공간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짜 나를 만난다.
자,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다. 하루의 끝에서, 나와 함께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는가. 오롯이 혼자 있는 그 적막한 시간 속에서 내게 말을 걸 수 있는가.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이 길 위에서, 이제는 묻고 싶다.
오늘, 당신은 얼마나 자신과 함께 있어보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