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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y Jun 24. 2019

당신이 모르던 넛지의 2가지 포인트

<넛지>는 아포가토같은 책이다


"요새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넛지라고 말이야."
친구와 밥을 먹으며 이야기할 때였다.

"아, 그거 잘 알지. 유명하잖아 그거."

하며, 친구는 바깥쪽에 있던 숟가락을 슬며시 안쪽으로 옮겼다.

"오, 그치그치ㅋㅋㅋ 맞아 맞아."


<넛지: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은 워낙 유명한 책이라, 사실 그에 대한 개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저자 중 한 명인 리처드 탈러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건 차치하더라도 소변기의 파리 예시는 아마 대부분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다.

간단히 짚자면, 넛지는 대상이 자유롭게 선택할 권한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선택을 이끄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 방식을 의미한다.

그런데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던 몇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1. 이 책은 "똑똑한 선택"에 대한 책이 아니다.

유난히 헷갈렸던 개념이기도 한데, 이 책은 우리가 똑똑한 선택을 하도록 조언해주는 책이 "전혀" 아니다.(물론 읽고 나면 현명한 선택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인사이트는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넛지는 설계자가 취하는 설계 방식이지, 대상이 선택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선택 설계자"가 "선택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책을 썼다. 책에 나오는 2가지 주장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중 한 가지로, "사소해 보이는 선택 상황이라도 사람들의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의도적이건 아니건, 상황은 반드시 대상에게 영향을 끼친다. 영양사가 식판을 배치할 때, 반찬을 배치하는 방식은 어떻게든 밥을 먹는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준다.

이러한 주장과 예시로부터, 넛지는 어떻게 하면 설계자가 대상을 더 나은 길로 인도할 수 있는지에 시선을 두고 있다.



2. 넛지는 설계자가 아닌 대상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다.

사실상 이 부분이 책의 본 의도와 다르게 쓰이고 있는 대표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 소개한 예시에서는, 선택 설계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설계자의 주관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 주관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바로 "선택 대상의 이익"이다. 이를 위해서는 초반부에서 저자가 말하는 "인간이 체계적으로 틀리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넛지는 거기에서 출발한다.

설계자가 넛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인간이 비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동물이어서 손해를 보기 쉽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굉장히 합리적으로 묘사하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연구결과로부터 인간은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것도 체계적으로 틀리는" 행동을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예시로, 우리는 보기보다 우리 자신을 과대평가한다. 숙제를 1시간 만에 끝낼 거라 다짐하지만 한 번도 1시간을 지켜본 적이 없다(이를 '계획오류'라고 한다).

우리의 비합리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 더 생각해보자. 우리는 생각보다 게으르다. 아마 지하철에서 벨소리가 울리면 대다수가 자신의 휴대폰을 쳐다보는 걸 경험해봤을 것이다. 그 이유는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의 벨소리를 디폴트 옵션 그대로 해놓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초기 설정이 좋아서 그대로 했을 수도 있다는 노이즈가 분명히 있을 테지만, 책의 연구 데이터에서는 그 이유가 우리의 타성 때문임을 입증해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선택을 해야만 한다. 무언가를 구매할 수도, 재테크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마주하는 그 갈림길에서, 인간은 위와 같은 취약점을 갖고 있다. 그에 따라 몇몇은 선택의 복잡성 때문에, 혹은 자신을 과대평가해서 최선의 결과를 고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마치 우리를 뜯어먹으려고 안달 난 전문가들 사이에 둘러싸인 초보자와 같다.

이로부터 현명한 선택을 돕기 위해 설계에 변화를 주어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고자 하는 것이 선택 설계자의 목적이다. 설계자 역시 이익을 취하려 든다면, 그건 또 하나의 하이에나가 늘어난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책의 부제가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이라는 걸 명심하자.


따라서 종종 회자되는 "넛지 마케팅"은 이익 창출과 동시에 고객이 행복해지는지, 아니면 회사의 배만 두둑해지는 구조인지를 설계자가 반성해야 한다. 철저하게 회사만 이익을 본다면, 그건 인간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버는 행위에 지나지 않다. 책에서 얘기하는 나쁜 넛지가 된다.


물론, 시장의 자유주의적 성격을 감안한다면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는 없다. 인간의 본성을 활용한 엄연한 마케팅 전략에 해당한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적 측면에서, 윈-윈구조가 아니라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 고객은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넛지의 또 다른 구성 요소인 자유주의, 선택의 자유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설계자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의도적이든 아니든 설계에는 불순한 의도가 들어갈 수 있다. 이를 캐치하고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보장받을 필요가 있다.


나아가, 넛지가 대상의 이익을 반영하는지 아닌지를 파악하기 위해 투명성-넛지를 설계한 목적, 이를 통해 대상이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대해 정보를 공개-을 강조한다. 만약 설계자가 이득을 취하기 위한 구조를 설정했다면, 설계 목적을 대상에게 쉽사리 밝힐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아포가토 같은 책이다.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한다. 책을 펴면 아이스크림의 시린 감촉이 먼저 느껴진다. 인간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편향적인 존재인지를 연구결과로부터 낱낱이 입증한다. 우리 안에는 저마다 호머 심슨이 있다는 우스갯소리에는 우리가 그동안 겪었던 선택에서 아쉬운 결과를 고른 전적이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케 한다.


그 뒤에는, 따라오는 에스프레소의 미처 식지 않은 뜨끈한 열기가 잔잔히 타고 흐른다. 넛지라는 개념은 객관적이지 않다. 설계자의 주관적인 관점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관점이 대상의 행복, 이득과 같은 공공의 안녕이라는 목적에서 따뜻함이 드러난다. 이는 마치 자유주의와 개입주의라는, 다소 상반되는 두 개념의 조합이 전혀 모순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뒤로 갈수록 어렵고 우리의 실상과 맞지 않은 사례들의 나열로 읽기 힘든 면이 없잖아 있긴 했다.(이건 비단 나만 느끼지 않았다는 걸 다른 서평을 통해 확인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한 개인 개인의 여생이 어떻게 편안히 마무리될 수 있을지, 어떻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지 목차 하나하나에 고심한 흔적에서 설계자가 취해야 할 방법론을 넘어 그 마음가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상적인 구절


100달러짜리 수표의 현금화라는 인센티브가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은 매우 교훈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탈러가 수표를 현금화하여 데이비드가 없는 곳에서 좋은 와인을 마신다는 사실이, 추상적인 데다 아득히 먼 은퇴연금 지원금보다 훨씬 더 생생한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p. 79


핵심은, 시장이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 있긴 하지만 동시에 종종 기업들에게 인간의 약점들을 뿌리 뽑거나 그 효력을 최소화하려 노력하기보다는 그것을 부추길 만한(그리고 거기에서 이익을 얻을 만한)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p, 119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노력을 요하는 옵션, 즉 최소 저항 경로를 취할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주어진 선택에 디폴트 옵션이 있으면 그것이 자신에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많은 사람들이 결국 그것을 택한다고 예상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p.138


기본적인 메시지는 간단하다. (...) 삶이 필요 이상으로 훨씬 더 복잡해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교묘하게 이용을 당한다. 종종 최선의 방법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조심하도록 당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지닌 약점들은 대출을 받을 때 심각한 고충을, 심지어는 재난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선택 설계에서 몇 가지만 개선하면 사람들이 치명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다. -p.229


스웨덴 국민이 모두 이콘(경제학에서 설정하는 합리적인 인간)들이라면 이러한 설계는 전혀 논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유로운 시장 진입에 자유로운 경쟁과 막대한 선택권까지 결합된 게획은 분명히 훌륭히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스웨덴 국민이 인간들이라면, 선택안을 최대한 늘린다고 해도 최선의 결과가 도출되지는 않을 것이다. p.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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