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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 Apr 17. 2023

어느 날, 알래스카에서 노래가 나를 찾아왔다.

제3화 내 집이 나타났다

알래스카는 저마다의 꿈을 안고 온다. 나도 그랬을까? 잔인한 추위와 해가 사라진 어둠의 시간, 알래스카의 겨울 속에서 봄을 기대한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것처럼.


불만을 품었던 학생의 성적 정정 요구를 응하지 않았던 다음 학기. 나는 교수직에서 해고됐다.  오래전 알고 지내던 선배에게 알래스카에서 메일이 왔다. 자기가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었다. 집과 자가용 그리고 어학연수까지 제공한다니 구두적 제안이었지만 나는 알래스카를 선택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알래스카의 가을이었다. 그러나 이사 세 번으로 가을은 사라졌다. 이사 가는 길에 스키를 타러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스키인 들의 성지기도 한 세계 3대 산맥의 아랫길을 지난다. 저 멀리 보이는 호텔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던 빨갛고 큰 집이 내가 살집이다. 펑펑 내리는 눈 속에서도 가만히 서 있는 무스를 본다. 왠지 모르게 평안하다.


이사한 집에서 맞이한 아침, 오전 열 시가 지나 해 가 떴다. 태양은 대지를 깨웠지만 냉기가 온몸을 파고들어 내 몸은 밤이다.  통유리로 된 집 밖의 풍경이 보인다. 한강만 한 호수가 냉동실에 얼려있는 얼음 같다.


“선생님 또 이사하셨요?”


H를 만난 건 그의 부모의 간청이었다. 그를 만나러 그의 집에 갔을 때 그는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 후로 그에게 몇 번의 문자를 받았다.


”나도 학교에서 준 차가 브레이크가 들지 않아서 사흘째 집에 갇혀있어, 너와 같은 신세야 “


며칠 후 그는 알래스카의 운전사가 되어주겠다며 아침마다 숙소에서 기다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H가 보인다. “선생님 여기 왜 이렇게 추워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여기 난방이 안돼”  “여기서 어떻게 사셨어요?” 그는 손에 쥔 폰으로 어디론가 다급히 전화를 했다. 몇 분 후 H 어머니의 문자를 받았다.

“몇 년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던 아들이 선생님을 걱정하며 스스로 방문을 열고 나왔어요.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알래스카에 계실 동안 따듯하게 지내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가까운 주소를 보내주셨다.  

사실 눈과 얼음에 갇힌 건 나였고 나의 발이 되어주었던 건 H였다.


한국에서도 아쉽게 지나는 가을을 알래스카에서 스쳤다. 믿었던 선배는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만남과 도움으로 세 번째 이사를 간다.


스쳐 간 계절 속에서 내 생애 이토록 시린 가을을 만날 수 있을까? 인간의 생이 알래스카의 가을처럼 느껴진다. 눈 덮인 숲 속의 빙판길을 달리며 잊고 있던 나의 연약함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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