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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같이 행복한 삶

입대하는 아들을 보며 생각난 할머니

by 신아현

"아침에 조간신문을 읽으며 세상을 배우고,

좋은 책을 읽으면 행복하다."

OO할머니가 말했다.




홀로 사는 OO할머니는 팔순이 넘었다.

허리는 굽었고, 걷는 것도 편치 않다.

그러나 어느 것도 자신의 손발을 쓰지 않고 공으로 얻는 것이 없다.


빗물을 받아 빨래하고,

식사도 손수 캔 나물로 해 드신다.

남들이 버린 옷을 깨끗이 빨아 입으면서 자신을 부자라 여긴다.


왜 그렇게 하냐고 물으니

내가 살아있으니,

내 몸뚱이가 아직은 성하니,

그리고 자연이 아름답고 소중하니 아껴야 한다고 했다.

그게 전부였다.


누군가는 할머니 너무 불쌍하다고 도와야 된다 했고,

누군가는 할머니가 이상하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본 할머니는 이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눈이 나빠 책을 코앞까지 가져와 읽으면서도

매일 책 읽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할머니에게 책을 선물했다.

"할머니 이거 우리나라 노벨문학상 받은 한강 작가님 책이에요."

귀한 책을 선물 받아 너무 좋다고 하시더니

며칠 뒤 꽁꽁 묶은 비닐봉지를 내게 던지듯 주고 가셨다.


비닐봉지 안에는 손수 적은 편지와 낡은 책이 들어있었다.

"동사무소 직원이 책을 선물한 건 처음입니다. 선생님이라면 내 마음을 알고

이 책을 좋아하실 것 같아 드립니다."

'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는 책과 함께

온 긴 편지 속 한 문장이다.


할머니는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법은 알지 못했지만,

자연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법을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했다.



오늘 아들이 군에 입대한다.

입영 통지를 받은 날부터 가슴이 아프더니,

며칠 전부턴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났고,

오늘은 잠이 오지 않는다.

처음 가족과 떨어져 혼자 견뎌낼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그런데 오늘 문득 다른 감정이 다가왔다.

군대를 시작으로 아이들이 내 곁을 떠난다는 것,

내가 늘 안쓰럽게 바라본 할머니, 할아버지들처럼

나 역시 늙고, 언젠가 혼자가 된다는

무서운 슬픔이 느껴졌다.


홀로 계신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보면서

그토록 신경이 쓰였던 이유가

나의 두려움이 내재해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때 OO할머니가 생각났다.

무수히 많은 시간을 혼자 살아온 할머니가 사람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진짜 행복을 찾은 모습에 감동했었다.


이제 나도 오십을 넘겼고, 내 삶의 전부라

생각한 아이들이 독립해서 나갈 것이다.

외로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닌,

할머니처럼 나를 위한 시간에 적응하고,

홀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와 친하게 지내는 법.

아이 없인 어색한 남편과 친해지는 법.


미래의 내가 홀로 같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글을 써봤다.

막상 생생하게 그려보니 잘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새벽에 써 둔 글이다.

방금 아들을 보냈다.

무사히 건강하게 잘 지내고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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