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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n 06. 2020

어른이 되면 괜찮아지나요 01

괜찮지 않습니다

나도 괜찮지 않다.

말을 잘하지도 말이 많은 편도 아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도 의사 선생님에게 아픈 곳을 말하는 것이 부끄럽고 긴장되어 병원에 혼자 가고 싶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부터 조금씩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그저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정도랄까. 여전히 말을 잘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요즘은 언니들 틈에서 의식의 흐름대로 떠들기도 하지만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거의 듣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경청을 잘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인생에 이벤트가 그다지 없다 보니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여러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인생이 아무리 밋밋하다 해도 아무 일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가끔은 목이 터져라 울고 싶을 때도 있고 너무 행복해서 떠들고 다니고 싶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할 줄 안다는 말이 있듯,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의 감정을 듣는 것이 익숙했지 내 아픔이나 기쁨을 털어놓는 게 익숙한 사람은 아니다. 특히나 아픔이라면 더욱더.

나의 아픔의 정도는 누구와도 비슷한 정도라 생각한다. 누구나 이 정도의 아픔을 가지고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이 투정이나 생색같이 느껴진다라고나 할까.


누군가가 나에게 털어놓는 말들에는 공감하고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정작 나 스스로에게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괜찮지 않다!!!!


가끔은 내 이야기를 해볼까도 하지만 너무 부정적인 감정들인가 싶어 밀어놓고, 또 어느 날은 상대가 너무 힘들어 보여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어버릴 때도 있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서운했다거나 그 시간이 아깝거나 하지는 않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다시 힘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정식이 번쩍 나 우울에서 빠져나오기도 하니까.


하지만 언제부턴가 답답함과 서운함이 조금씩 내 마음에 자리잡기 시작했던 것 같다.

글을 쓰기 며칠 전, 친구와의 통화 도중 그 서운함이 삐져나오고 말았다.


"너는 항상 내가 잘하고 있다고 나랑 비교하지만 나도 하루에도 수십 번 흔들리는 날들이 있어. 재작년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힘들기도 했고.. 다 괜찮지는 않아. 잘 견뎌내고 있지 않은 날들도 많아. 다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이지."


"어?... 그렇게 힘든데 왜 이야기 안 했어?"


"더 힘들어 보여서. 그래서 말을 할 수 없더라."


낡은 바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고 싶은 날


누군가에게나 힘든 시절이 있다. 누군가를 붙잡고 내 우울을 퍼부어버리고 싶은 날들도 있고 이 모든 게 나의 탓이라고 돌리기에는 견디기 힘든 그런 날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 사람은 꽤 당신을 염려하느라 자신을 돌보는 것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괜찮다고 되뇌면서 조용히 당신의 곁을 지켜주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사실을 너도, 나도 내 안의 폭풍이 잠잠해져야 볼 수 있더라.

... 이 폭풍은 언제쯤 잠잠해질까?


2020년 4월 15일

생색내려고 했던 건 아닌데 괜히 생색내고 싶게 만드는 날.

그래서 찝찝한 날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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