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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미용사

by 김효정


달님은 여우 같은 기질이 있다.


"이게 누구야, 우리 푸디... 엄마가 엄청 이쁘게 미용해 줬네."


집에 오자마자 털을 다듬고 목욕을 한 푸디를 보고 폭풍 칭찬과 감탄사를 내뱉는다.


"자기 이제 정말 푸디 머리 잘 자르는 것 같아."

"그래?... 망한 것 같은데..."

"아니야, 정말 귀엽게 잘 잘랐어."



기대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 제법 미용사 흉내라도 낸 것에 대한 놀라움인지, 그는 내 실력을 자꾸만 추켜세운다. 강아지 미용을 따로 배운 적이 없는 나로서는 특별한 기술도, 방법도 알지 못한다. 오래전 전문가에게 푸디의 미용을 맡겼을 때를 떠올리며, 그 모양 비슷하게 잘라 보려고 흉내만 낼뿐이다.


한참 곰돌이컷이 유행이기도 했고, 곰돌이컷이 잘 어울리는 푸디는 매번 애견 미용실을 방문할 때마다 곰돌이컷으로 주문을 했다. 그 시절에는 푸디의 다리가 건강했기 때문에, 큰 걱정을 하지 않고 푸디를 미용실에 맡겼다.


수술 후 푸디는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의사는 자꾸 걷게 하지 않으면, 영영 걷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나에게 겁을 줬다. 푸디 곁에서 나는 늘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산책을 나가도 푸디는 거북이처럼 걸었다. 빨리 갈 수 없으니 제 딴에는 다른 것으로 자신의 욕구를 채웠다.


바로 냄새를 맡는 것. 산책하면서 푸디가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것은 바닥에 코를 들이밀고 킁킁대는 일이었다. 세상의 모든 냄새를 다 맡아야 직성이 풀리는 푸디는, 1미터 정도의 짧은 거리를 움직이면서도 1분이 넘게 걸렸다. 나는 푸디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있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내 인내심은 그렇게 강인한 편이 아니었다. 할 일은 늘 쌓여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서 멈춰있는 푸디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누군가 지나가면 그를 향해 무한 눈빛을 보내며, 귀여움을 받고자 했다. 원치 않았지만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눠야 했다. 아무렴 어때, 푸디가 조금 더 잘 걸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푸디의 다리는 천천히 회복되어 갔지만, 잘 못 움직이는 탓에 몸무게는 늘어갔다. 병원에서는 살을 빼야 한다고 호되게 경고를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후 푸디의 미용은 내가 전담했다. 미용실에 가면 서 있는 자세를 유지하면서 미용을 해야 하는데, 몇 시간을 아픈 다리로 힘겨워할 푸디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게다가 미용사에게도 부담이 될 일이었다.




살짝 동그랗게 휜 가위, 일자 가위, 숱 치는 가위. 세 가지 스타일로 구성된 세트를 사서 강아지 미용을 시작했다. 푸디가 가장 편안해할 만한 자세(옆으로 눕기)를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털을 잘랐다. 푸디는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털을 자르고 있으면 가만히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다. 어느새 코까지 골고 자는 푸디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둥글게 휜 가위는 얼굴과 엉덩이를 동그랗게 자르는데 유용했다. 곡선이 들어가야 하는 부분에 적합한 가위로, 실력이 좋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듯한 느낌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일자 가위는 반듯하게 잘라야 하는 부위에 사용했다. 사실 나는 일자가위는 잘 사용하지 않고, 둥글게 휜 가위와 숱 치는 가위만 자주 쓴다.


푸디 미용에만 한두 시간이 걸린다. 처음에는 세 시간도 걸렸는데, 이제는 한두 시간 안에 해결한다. 미용 후에는 바로 목욕을 하는데, 푸디의 모량이 워낙 많은 데다가 이중모라 꼼꼼히 씻겨야 한다. 요즘에는 피부도 좋지 않아서 샴푸질을 두 번이나 한다. 기본 세척 샴푸를 사용하고 씻어 낸 후, 약용 샴푸를 바르고 마사지를 한 다음, 5분 정도 기다렸다가 씻어낸다. 목욕 후에는 드라이기를 사용해 말려야 한다. 털이 많은 아이라서 말리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는 허리 한 번을 못 피고, 푸디의 건강과 미모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세 시간을 쓴다. 그렇게 모든 힘을 쏟아내고 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힘이 빠지고 쉬고 싶은 생각만 가득하다. 이 날은 밥을 차릴 힘도 없어 배달 음식을 주문한다.




아직은 젊다고 하지만, 더 늙으면 내가 푸디를 어떻게 케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체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만 하염없이 하게 되는데, 달님은 내게 고생했다는 말은 하지만, 그저 말 뿐이다. 달님은 단 한 번도 푸디의 목욕을 시켜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달님의 칭찬이 얄미울 때가 있다.

팀장이 손 하나 까딱 안 하면서 똘똘한 직원들에게 돈 안 드는 칭찬과 함께 일을 더 많이 시킨다. 마치 나는 그 똘똘한 직원이 된 것처럼 팀장이 너무 얄밉다가도, 어쩔 도리가 없음을 직시하게 된다.



나는 푸디의 하나뿐인 미용사다.

내겐 푸디를 최대한 편안하고 행복하게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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