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그 안에서 편안함을 찾다
나는 무인가게를 운영하기 전까지 무인 기계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 흔한 스마트뱅킹조차 잘 하지 않았다. 은행에 직접 가서 번호표를 뽑고, 창구 직원에게 통장을 내밀며 돈을 입금하거나 이체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기계는 차갑고 딱딱한 존재 같았고, 그 앞에 서는 일은 낯설고 불편했다. 그래서 늘 사람이 있는 마트나 편의점을 찾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종종 들렀고, 가격도 더 저렴한 그곳이 더 편하다고 했다.
"엄마, 왜 우리 집 앞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는 안 가?"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엄마는 결제를 못 해서 그래."
결국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갈 때는 늘 아이와 함께였다. 나는 카드를 내밀 뿐, 계산은 언제나 아이 몫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 손을 빌려 조금씩 무인 기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올해 4월 나는 무인가게 주인이 되었다. 무인 기계를 멀리하던 내가 직접 무인가게를 운영하다니 나 자신도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이제 오십을 바라보고 있다. 디지털 기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세대지만 새로운 것 앞에서는 여전히 주저하곤 했다. 새로운 메뉴가 많은 뷔페에 가도, 남들은 낯선 음식을 맛보며 즐거워했지만 나는 달랐다.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서툴게 보일까 걱정했고, 그 모습이 남들에게 비칠까 부끄럽기도 했다. 결국 늘 먹던 음식만 접시에 담았다. 나는 새로운 것에는 쉽게 발을 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무인 기계에 대한 두려움도, 사실 그런 습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인가게를 운영하면서 처음 마주한 것은 무인 주문기였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상품을 바코드에 갖다 대고, 결제 버튼을 눌러 보았다. 몇 번 반복하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새로운 것 속에는 불편함만 있는 게 아니구나. 오히려 편안함이 숨어 있네.'
▲무인가게 안의 무인 주문기- 나는 용기를 내어 상품을 바코드에 갖다 대고, 결제 버튼을 눌러 보았다. 몇 번 반복하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 이효진
스마트뱅킹도 그랬다. 나는 늘 은행 창구를 찾았지만, 아들이 어느 날 모바일 앱으로 이체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아들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 엄마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직접 해보니 은행에 가는 것보다 훨씬 편리했다.
무인 주문기도, 스마트뱅킹도 결국은 나에게 새로운 편리함을 선물한 것이었다. 막상 해보니 신세계였다.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내 곁에서 일을 대신 똑똑하게 처리해주는 든든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
생각해보면, 나와 같은 사람이 꽤 많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가 유난스러울 수도 있지만, 새로운 기계 앞에서 머뭇거리는 이들은 분명 많을 것이다. 그날도 오전에 가게 정리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 신나게 들어왔다.
"빨리 골라! 내가 쏜다!"
한 분이 흥에 겨워 말했고, 다른 친구분이 아이스크림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분들은 무인가게에 익숙하신가 보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을 다 고른 아주머니들이 막상 어디서 어떻게 계산을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계산 도와드릴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두 분을 무인 주문기 앞으로 안내했다. 직접 해보면 다음에도 자신 있게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신 눌러주기보다는 하나하나 스스로 해보도록 안내했다.
"여기 바코드를 갖다 대 보세요."
"어? 안 되는데?"
"너무 바짝 붙이지 말고, 조금 떨어뜨려서요."
'삑-' 소리와 함께 가격이 뜨자 아주머니들은 환하게 웃었다.
"어머, 되네? 가까이 대니까 안 되고 조금 떨어뜨리니까 되네!"
결제 버튼을 누르고 스마트폰 안의 카드를 갖다 대는 과정을 하나하나 따라 하던 두 분은 연신 신기해 하며 즐거워했다.
"너 이제 할 수 있겠지?"
한 아주머니가 옆 친구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것도 해봐야 할 수 있는 거구나."
계산을 마친 두 분은 기쁨에 찬 얼굴로 내게 고맙다 인사까지 하고 가게를 나섰다.
바코드 결제 방법을 알려주면서 문득 예전에 운전을 배울 때가 떠올랐다.
"여기서 방향을 트세요, 브레이크를 밟으세요."
하나하나 배워가며 직접 운전대를 잡았던 순간 말이다. 사고가 나면 어쩌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직접 운전을 해보니 오히려 세상이 넓어지고 편리해졌다. 걸어서만 다닐 때는 멀고 불편했던 길들이 차를 몰게 되면서 편리한 신세계로 바뀐 것이다.
무인 기계도 마찬가지였다. 두려움만 있던 낯선 기계가 직접 경험해보니 편안함을 주는 존재로 다가왔다.
우리는 새로운 것에 대해 쉽게 두려움을 가진다. 예전에 내가 그랬듯 말이다. 하지만 그 새로움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한번 관심을 가져본다면 달라진다. 기계와도 마치 대화하듯, "너는 어떤 아이니?" 하고 다가가 본다면, 그 기계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곁의 든든한 도구, 편안한 친구가 될 수 있다.
지금은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다. "나는 디지털 세대가 아니야" 하며 거부하기보다, 함께 소통하며 새로운 신세계를 경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두려움 너머에 숨어 있는 편안함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의 일상은 더 넓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