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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기적의도서관에 아이의 그림이 전시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림으로 묻고 배우다

by 작가의식탁 이효진

지난 8월 2일, 나는 아이의 여러 그림 중 한 장의 그림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림은 화려하지 않았다. 대단히 뛰어난 기법이 쓰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세상의 어떤 명화보다 벅찬 그림이었다. 바로 우리 아들의 자화상이다. 순천 기적의도서관 기적을 꿈꾸는 전시실에서 열린 '2025년 상반기, 기적을 그리는 화가 12인전'에 전시된 아이의 작품이었다.


IE003504191_STD.jpg 순천기적의도서관 안에 마련된 기적을 꿈꾸는 전시실


미술 시간 부담스러워 하는 아이, 이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우리 아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미술 시간이 부담스럽다고 했고, 담임 선생님도 상담 자리에서 "그림을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그 말을 듣고 난 뒤, 부모로서 마음 한편이 참 무거웠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잘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었지만, '못한다'는 평가 앞에서 마음이 움츠러들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던 중, 동네 순천기적의도서관에서 '기적을 그리는 화가'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림 그리기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그 결과물을 전시까지 하는 활동이었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은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아닌, 몇 달에 걸친 정규 과정이었다. 고민하지 않고 신청했다. 무료였지만 경쟁률이 높았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들어갈 수 있었다.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아이는 수업을 들으러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렇다고 아이가 흔쾌히 갔던 것은 아니다. "오늘 안 가면 안 돼?" 매주 반복되는 아이의 질문에 나는 그때마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가보자. 조금만 가보자."


심지어 프로그램 중간에는 도서관 지붕 공사 때문에 더 먼 곳으로 이동해야 했던 날도 있었다. 아이에게는 큰 변화였다. 좋아하지도 않는 그림 수업을, 낯선 공간에서 계속 이어가는 것은 아이에게 꽤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갔다. 내가 등을 떠 밀고, 아이는 투덜거리며 따라오고, 그렇게 몇 주를 채웠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기적의 자아', 부제는 '나를 그리고, 알아가다'였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중앙 진열대에 놓인 전시 취지를 담은 글이 눈길을 끌었다.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자아를 탐구해 왔습니다. 자화상이나 형상화된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며 이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본 전시는 그러한 예술가들의 형식적·내용적 접근을 바탕으로, 어린이들이 직접 실습하며 자기 자신을 탐색한 결과물을 담고자 합니다.


단순한 그림 수업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 그림을 그렸고, 그 안에 자신을 담았다. 보통 자화상을 그릴 때는 거울을 준비하지만, 이 수업에서는 아이들의 사진을 미리 보내 달라는 안내 문자가 왔다. 사진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다시 바라보며, 자신을 탐색하고 표현해보는 시간.


그림엔 단순한 외형만 담긴 게 아니었다. 아이들의 그림 옆에는 글이 함께 붙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내 친구", "나의 습관" 등등. 그림은 외적인 표현이었지만, 그 안엔 내면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담겨 있었다. 자화상은 그래서 단지 그림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자 성장의 기록이었다.



아이의 그림을 오래 바라본 이유


IE003504190_STD.jpg 이번 전시의 주제는 '자화상', 전시 제목은 <기적의 자아>


우리 아이의 그림은 정교하지 않았다. 색이 조금 삐져나온 곳도 있었고, 표정도 어색했다. 하지만 나는 그 그림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 한 장의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걸어온 수많은 '싫어'의 순간, '안 가면 안 돼?'라는 질문을 참아가며 꾸준히 참여한 시간,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따라간 우리 아이의 용기와 성실함이 모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나는 깨달았다. 무언가를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싫어도 해내는 힘, 좋아하지 않아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끈기라는 것을. 이 그림은 그래서 우리 가족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기적의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새삼 와 닿았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그림이라는 매개로, 아이와 내가 경험한 이 시간은 분명 하나의 기적이었다. 이 기적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반복되는 설득과 갈등, 그럼에도 놓지 않은 끈기, 그리고 작은 참여의 연속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아이에게 이번 경험이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오늘 그 전시장에 걸린 그림처럼, 아이는 앞으로도 스스로를 표현하고 탐색하고, 그려나갈 것이다. 부모인 나는 그 곁에서 끝까지 같이 바라보고, 묻고, 기다릴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아이가 또 어떤 얼굴을, 어떤 마음을, 어떤 세상을 그려나갈지 조금은 기대하고 응원하면서. 이 도서관에서 한 걸음을 더 내디딘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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