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 큰 다락방에 앉은 이방인
어제 밤 이곳에 도착했다.
왠일인지 나는 15시간의 비행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고, 도연언니와 상현오빠가 준비한 간단한 야식과 맥주를 마시고서야 꿀 잠을 잤다. 하지만 나는 또 할머니처럼 새벽 5시에 깨어났고, 한참을 핸드폰을 만지며 뒤척거리다가 겨우 다시 잠이 들어 오전 열시가 다 되서야 일어났다.
이곳에 도착한 느낌은 참으로, 시골에 온 느낌이었다. 언니와 오빠가 나를 마중나왔던 뒤셀도르프 공항은 마치 시골의 버스터미널 같았고 나는 방학 중 내려 온 친척 동생의 느낌이었다.
나를 방해하는 소음따위가 전혀 없는 이곳에서 나는 글을 쓰고 혼자 있고 걷고 걷고 싶다. 바람이 매섭고 낙엽조차 떨어져버린 겨울에, 오후 4시면 해가 질 준비를 하는 그런 계절을 여행하게 되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다. 분명 더 아름다운 것들을 보지 못해 아쉽지만 내가 이곳에 왔다는게 중요했다.
25년을 지방에서 살았던 나는 약 3년간의 서울생활에 꽤나 지쳐있었다. 서울에서의 생활이 싫었던 것은 아니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그 곳의 일원이 되어 생활하게 되겠지만 이상하게도 많이 지쳐있었다. 적절하게 배분되지 못한 나의 일과 사생활, 그리고 치열해야만 했던 회사생활이 답이지 않을까. 나는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사람처럼 시들어갔고 무기력증과 우울감에 시달리며 제 3자의 도움을 찾아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 어느정도 극복을 하며 지냈지만, 마음속의 무기력감은 떨쳐내기 힘들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늘 나는 작은 것에 화가 났고 그 마음을 숨기려 애쓰다가 혼자 멍이 들어버렸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좀 더 현명하게 대처 해낼 수 없었던 나의 미성숙한 결정들이 낳아놓은 결과였다.
피곤하긴 했지만 심심한 비행시간이 좋았다. 그 누구도 나에게 연락을 취해 올 수 없는 온전한 나의 시간,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합법적으로 내가 서울 그 곳에서 멀어져 있을 수 있는 먼 곳.
나는 이곳에서 한 달 동안 일하고, 여행하고, 글을 쓰며 지낼 예정이다.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삶과 나의 것을 대조해보며 작은 시간을 내어 일도 해보고, 독일 내 근사한 도시들을 여행하고, 이렇게 내 이야기와 내 생각을 써 내려가야지.
내가 숨어든 이곳 / 독일 서부 에센
2016.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