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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프릭 Jul 23. 2024

신자에게 주어진 삶에 대하여

영화 [그래비티, 2013] 묵상

연료가 다 떨어진 우주선 안에서 오도가도 못하던 주인공 라이언(산드라 블록 분)은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고 우주선 전원도 다 꺼버리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매트(조지 클루니 분)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라이언 : 못가요

매트 : 갈 수 있어.

라이언 : 연료가 없어요, 제가 다 해봤어요.

매트 : 어떻게든 살 구멍은 있어.

라이언 : 제가 다 해봤다니까요?

매트 : 연착륙 제트엔진은 시도해봤나?

라이언 : 그건 착륙용이잖아요.

매트 : 착륙이나 발사나 둘 다 시스템은 같아, 시뮬레이션에서 안 배웠어?

라이언 : 착륙해 본 적이 없어요.

매트 : 그렇지만 알고 있잖아.

라이언 : 매번 추락했다고요


매트 :

지구로 돌아갈 거야? 아니면 여기서 계속 살 거야?

그래, 여기 멋진 건 나도 알아.

그냥 전원 다 꺼버리고 불도 다 끄고 눈까지 감고 전부 무시해버리면 되겠지.

여기서는 자넬 해칠 사람도 아무도 없고 말이야. 안전하겠지.

그런데 내 말은…. 그러면 왜 사는 거야? 아니, 산다는 게 뭐지?

물론 자식을 먼저 잃은 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지.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하고 있는 이거야.

가기로 결정했으면 계속 가야지.

의자에 등 딱 붙이고 가는 거야.

땅에 두 발로 떡 버티고 서서 살아가는 거야.   

   

 - 영화 [그래비티] 중 라이언과 매트의 대화.     



삶이란 우리에게 언제나 버겁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주인공처럼 몽땅 내려놓고 그냥 다 포기해 버리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매트의 질문을 인용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왜 사는 거야? 아니, 산다는 게 뭐지?”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삶을 부여받은 자는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시대와 환경을 선택하여 태어난 자도 없으며 자신의 성향과 외모를 골라서 태어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무작위로 주어진 것만 같습니다. 열악한 환경이면 열악한 대로, 좋은 환경이면 또 그런대로 그냥 살아갈 뿐이죠.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주어진 삶을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로 포기하지 않고 생존의 본능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왜 사는가? 주어진 삶이기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는 소극적인 의미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삶의 태도는 거기에서 출발합니다. 삶이란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주어졌기에 걸어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는 왜 사는가? 신자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의 질문에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신자의 삶은 무작위로 어쩌다보니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당장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창조주의 섭리에 의해 주어진 것임을 인식하는 삶입니다. 비록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내 삶 속에 그 분의 뜻이 분명히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 길을 주신 이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전에도 지금도 또 앞으로도 영원히 실수 없이 인도하시고 주관하실 만군의 여호와시라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길을 걷는 사람인 것입니다.

 

삶을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로 힘들고 고난한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는 대부분 나름대로의 상처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라이언에게는 자식을 잃은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처와 고통만큼 지금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라이언은 그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했습니다. 더이상 길이 보이지 않았고 과거의 상처들이 얽혀서 삶의 이유를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매트는 그런 순간 마저도 지금 이 순간 내가 감당해가야 할 삶임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라이언에게 딸의 죽음은 여러 차례 죽을 이유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삶의 이유를 다시 찾은 라이언은 나중에 천국에서 딸을 다시 만났을 때에 내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 온 엄마로서 부끄러움이 없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고자 발버둥 치는 라이언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지구에 불시착한 라이언이 밖으로 나와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서서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장면입니다. 결국은 주어진 그 삶을 '계속해서' 걸어가기로 작정한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는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내 두 발로 당당히 걸어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책임을 내 마음대로 포기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변화를 요구하고 유행을 강요하는 이 세상은 우리에게 지금껏 하던 것을 멈추고 다른 것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과거는 구습이고 한물갔으니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하고 그것을 찾지 못하면 도태된다고 겁을 줍니다. 그리고 이미 이렇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말하며 체념케 하기도 합니다.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한 길을 꾸준히 걷는 것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악은 우리가 삶을 바르게 완주할 수 없도록 유혹합니다. 완주를 포기하든지, 설령 끝까지 가더라도 그 내용이 엉망진창이 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할지 생각만 해도 난감합니다.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을 직접 걸어가보기 전에 속단은 금물입니다. 고난과 시련이 있어도 주어진 길을 포기하지 않고 곁길로 새지 않고 꾸준히 견지해 가는 것은 한편으로는 두렵고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소망을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길은 창조주께서 우리를 지으신 의미, 나를 왜 이 땅에 이곳에 이 때에 살게 하셨고 왜 그 길을 걷게 하셨는지 알아가는 길이기도 할테니까요. 그 길을 걷기로 결정한 나에게만 비밀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험난한 길일수록 나를 향한 주의 계획과 섭리를 알아갈 소망은 더 커집니다.


땅을 딛고 일어선 라이언은 절망과 슬픔에 빠져 있던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살아갈 것입니다. 그동안은 무엇이 있을지, 어떤 새로운 것이 있을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나머지 삶 속에 숨겨두셨을 위대한 일들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고난을 헤쳐나오며 성숙한 자에게 주시는 선물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지 않을까요?


악인은 스스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두려움에 빠져있는 자요, 참된 신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아시는 이가 만드신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을 가진 자입니다. 그 마음으로 고난과 맞서야겠습니다.


#그래비티

#알폰소쿠아론

#산드라블록

#조지클루니

#영화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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