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건,2017] 리뷰
영화 로건은 화려했던 히어로들이 모두 사라지고 늙고 약해져가는 울버린(로건)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힐링팩터도 기능을 다했는지 다친 몸의 회복도 더디기만 합니다. 특히 울버린의 상징인 클로가 단번에 나오지 못하고 느리게 겨우 나오는 모습은 관객을 꽤 당황시키고 마음 아프게 합니다. 히어로도 오래걸릴지언정 결국엔 인생의 황혼이 온다는 걸 우리는 잠시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아니, 사실은 애써 외면했는지도요. 원래 그런 대리만족을 위해서 히어로물을 보는 걸 수도 있는데,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잔인함이 있습니다.
쇠약해진 '로건'은 자신보다 더 쇠약하여 이젠 거동도 제대로 못하는 '찰스'와 함께 요트를 띄우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여생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화로운 노년을 생각하기엔 세상이 너무 험하고 어둡습니다. 그런데 이젠 가진 것도, 지킬 것도 없어서 인생의 마무리나 생각하던 로건에게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바로 다음 세대인 '로라'를 만나고부터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습니다. 그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또한 우리는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당사자 입장이고 죽을 때 무엇인가 남기고 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지만, 그 빈손들 사이엔 많은 흔적들이 남습니다. 대부분의 흔적들은 이내 사라질 것이지만 어떤 흔적은 오래도록 남기도 합니다. 유행은 금방 지나가지만 전통은 오래 지속되고 있는것처럼요.
만일 우리가 어떤 것을 영원토록 유지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무 귀한 것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계속해서 이것을 유지시키고 간직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을 다음 세대에 전달해 주면 됩니다.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는 개념은 물질적인 것이나 정신적인 것이나 다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한 집안에 몇백년째 대대손손 내려오는 가보들이 그런 것이고, 오래 전에 만들어져 지금껏 책과 구전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수많은 고전과 지식들이 또한 그런 것입니다.
책이나 영상물처럼 의도적으로 무엇을 남기고자 애쓰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엔 그저 다음 세대를 지켜내는 것 자체만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간 드러날 소망을 생각하면, 그리고 아무리 책과 영상을 남겨도 그것을 보고 이어갈 사람이 없다면 아무 소용없음을 생각한다면 다음 세대의 의미는 무엇보다 크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로건은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을 이끌고 다음 세대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집니다. 그의 죽음은 세상을 구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소녀를 위한 작고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외롭고 초라한 죽음의 가치가 작지 않음을 공감하기에 그의 죽음 앞에서 눈물 짓게 되고 경건해집니다. 로라가 로건의 무덤에 꽂힌 십자가를 뽑아 X모양으로 세워놓는 장면은 로라가 그가 남긴 어떤 것을 이어갈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전달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앞 세대의 희생입니다.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앞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자신의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자신을 오히려 다음 세대의 희생을 요구하는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어리다', '철이 없다'고 말합니다.
전승이란 앞 세대가 자기가 누릴 것을 포기한 채 다음 세대가 그것을 더 잘 할 수 있게 물려주는 것입니다. 작은 물건 하나를 물려주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관리해야 더 오래 가는지를 알려주고 잘 다루는 법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가능합니다. 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이 귀한 것이 지속되기 위해, 그것을 더 잘 이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기대와 소망이 있어야 비로소 온전히 전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지식과 정신은 더욱 까다롭습니다.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달되면서 끼어들 수 있는 개개인의 주관, 사고방식들로부터 원래의 지식과 정신을 보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관리를 위해 신경써야 할 것은 물질적인 것의 몇 배 몇 십 배 많기도 하거니와 그런 노력을 하고서도 온전히 보존되지 못하고 변질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지식과 정신의 보존을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희생을 요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계승해 가는 사람인가요?
어린애처럼 움켜쥐고 있으면 그것은 내 안에서 끝이 날 것이되, 희생하여 다음 세대에게 전달한다면 나는 사라져도 그것은 계속 이어져 나갈 것입니다. 다음세대에게 이 의미까지 잘 전달을 해서 이해시켰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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