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나를 봤다
한 팔을 뻗은 손끝에 내가 있으니
빛의 속력으로 계산해 보면
0.00000000333564095198152초 전의 내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지금 내 모습은 내가 본 낡음보다
조금 더 늙었을 것이다
그래도 빛의 속력 아홉 자리를 기억하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0.00000000333564095198152초 전의 모습이라는 것을
계산한 내가 꽤나 뿌듯하다
빛은 1초에 299,792,458m를 간다고 하고
어떤 이는 빛이 정지된 시간을 살아간다고 한다
삶에 하등 쓸모없는 과학 이야기에 하염없이 빠져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빛이 되어 영원한 찰나 속에서 온 우주를 여행하면
그제야 우리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까
그새 거울 속의 나는 조금 더 후줄근해졌다
늙기도 전에 더 낡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