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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Feb 19. 2020

현대인들이 결혼에 심드렁한 이유

현대인의 사랑과 결혼 #4


오늘날 결혼의 위상은 더 이상 예전같지 않다. 성인의 통과 의례로 여겨졌던 결혼은 이제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이러한 인식은 나이가 어릴수록 뚜렷한 경향이 있는데, 요즘 청년 세대가 가진 결혼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이다. 성인이 되자마자 곧바로 결혼한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 청년 세대는 공부하고, 일하고, 개인의 삶을 즐기는데 더욱 집중한다. 또한, 안 맞는 배우자와 불행한 결혼 생활을 지속할 바에는 이혼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다음 한국 통계청의 조사는 이와 같은 트렌드를 뒷받침한다.  


     1988년에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33.6% 였지만 2018년 조사에서 이 비율은 11.1%로 대폭 감소했다.   

     2018년 기준, 결혼에 찬성하는 입장은 60대 이상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 반면 (71.2%), 30대 이하에서는 가장 낮은 편이었다. 또한, 2008년과 2018년 동안의 통계 자료를 보면, 기성세대 대비 청년 세대일수록 결혼을 긍정하는 비중이 가파르게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1988년 한국인의 평균 초혼 연령 남성 27.5세, 여성 24.6세였으나 2017년에 해당 수치는 남성 32.9세, 여성 30.2세였다. 남성과 여성 모두 초혼 연령이 5년 이상 늘어났다.   

     1998년 이혼에 대한 부정적 응답 (어떠한 이유라도 이혼해서는 안 된다, 이유가 있더라도 가급적 이혼해서는 안 된다) 은 전체 응답자의 60.3% 에 달했지만, 2018년 이 비율은 33.2% 로 감소했다. 실제로 1990년 한국의 이혼 건수는 4만 5,694건이었으나 2017년에는 10만 6,032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만 상황이 이런 것은 아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결혼 비율 감소, 초혼 연령 및 이혼율 증가는 이미 전 세계적인 트렌드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결혼을 반드시 해내야 할 인생의 과업으로 여겼던 조상들과는 달리 왜 현대인들은 결혼에 대해 심드렁한 것일까? 도시화 및 산업화, 경제 성장, 기술 발전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맞물려 인간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했고, 이는 결혼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중에서도 특히 1) 여성의 지위 향상; 2) 경제적 불안감; 3) 개인주의의 확산; 4) 배우자에 대한 높은 기대와 같은 요인들은 현대인들로 하여금 결혼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각각의 요인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논의가 될 것이다..


우선, 여성의 지위 향상이 결혼에 끼친 영향을 보자. 지난 2백 년 간 여성의 사회 경제적 지위는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결혼은 여성의 삶의 1순위에서 뒤로 밀려났다. 게다가 ‘시월드’, ‘독박 육아’, ‘경력 단절’, ‘가부장적인 남편’ 등과 같은 부정성 때문에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여성들이 생겨났다. 고등 교육을 받고 충분한 경제력을 갖춘 여성들은  배우자를 까다롭게 심사하며 결혼 시기를 미루거나, 눈에 차는 상대가 없을 경우 차라리 독신의 삶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현대 여성들은 ‘결혼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게 된 셈이다.


여성의 결혼하지 않을 권리는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것이다. 과거에 여성은 스스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남편의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다. 때문에 가정 폭력, 불륜과 같은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여성은 꾹 참으며 불행한 결혼 생활을 감내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현대 여성은 여차하면 쉽게 이혼할 수 있고 부부 재산의 공평한 분배도 법적으로 보장된다. 또한, 현대사회에는 출산과 육아보다는 커리어적인 성취에 우선순위를 두며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독신으로 사는 여성들의 수가 결코 적지 않다. 자주적인 현대 여성들은 남편을 내조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 역할을 구식으로 여기며 수용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경제적 불안감이다. 이것은 아마도 현대인의 결혼 기피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우울한 요인일 것이다. 먼저 역사를 돌이켜보자.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결혼을 하고 가족을 꾸리는 것이 경제적으로 최적의 선택이었다. 당시에 독신으로 사는 것은 엄청난 사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렸다.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태동한 산업화 시기에는 남성은 밖에서 돈을 벌어오고 여성은 집안일을 하며 가정을 돌보는 분업 형태의 결혼 모델이 자리 잡았다.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이 시기에는 사람들이 대체로 미래를 낙관했기 때문에 경제적 불안감으로 결혼을 미루는 사례는 흔치 않았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불안감은 청년 세대의 어깨를 짓누른다. 오늘날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경제적으로 궁핍할 최초의 세대가 될 예정이다. 경제 성장 둔화, 불평등 심화, 경직된 계층 이동성은 전 세계적인 트렌드이다. 미래를 비관하는 청년 세대는 아무리 노력해봐야 자신의 삶이 나아지지 않을 것임을 냉정하게 인지하고 있다. 이렇게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청년 세대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준 카르본, 나오미 칸은 <결혼 시장>에서 결혼도 이제 계급을 드러내는 표식이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공감하는 바이다. "안정적인 결혼 생활은 이제 특권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결혼으로부터 벗어나는 비행기 안에 엘리트는 없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결혼 생활은 점점 더 이루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경제적 불안감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현대 사회에서 남녀 역할 구분이 많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기대는 여전히 남성들로 하여금 과중한 경제적 부담을 느끼게 한다. 예를 들어, 연인이 데이트할 때 대체로 남성이 여성 대비 돈을 더 많이 내고, (남성이 여성에게 더치페이를 요구하면 “찌질하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결혼할 때에도 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혼 시 남성이 집을 해가야 한다는 전근대적인 인식은 아직 한국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남자의 자신감은 지갑에서 나온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거나 경제적 압박을 느끼는 남성은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일부 남성의 경우, 이런 심리 상태가 지속되면 아예 짝짓기 경쟁에 나서지 않는다. 짝짓기 시장에서 거절당하고 수모를 겪을 바에 애초에 누구도 만나지 않고 혼자만의 삶을 즐기겠다는 것이다. 여성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지 않고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본의 초식남들이 바로 이런 예이다. 일본의 초식남 현상은 장기 불황에 거세된 서글픈 현대 남성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세 번째로, 개인주의의 확산에 주목해야 한다. 현대인들 사이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개인주의를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1인 가구와 ‘혼밥’, ‘혼술’ 문화는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개인주의 정신이 투철한 현대인들은 ‘나’를 가장 중요시 여긴다. 나를 희생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현대인들은 다소간의 희생을 요구하는 결혼에 대해서도 냉소적이다. 자신의 삶을 희생해서 불행한 결혼을 할 바에는 화려한 싱글로 살겠다는 것이 결혼에 심드렁한 현대 남녀의 공통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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