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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선 그러면 바람피우는 줄 알아

by 정민유

작년에 강릉으로 이주해서 살게 되었을 때 40년 전 강릉에 내려와 사시는 선배님 부부와 식사할 기회가 자주 있었다. 선배님 남편분도 아내를 정말 살뜰히 챙기시는 분이셨고 울 남편도 아내 챙기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사람이다.


처음 만나던 날 물도 떠오고 셀프 반찬도 가져오고 하는 남편을 보고 선배님 남편분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시며 " 이 사람도 우리 과 네. 너무 좋아"라고 하셨다. 우리는 왜 그렇게 흡족해하시는지 그때는 영문을 몰랐다.


두세 번 만남을 갖게 되었을 때 그날도 열심히 챙기는 우리 남편을 보시고는 "강릉에서는 그렇게 하면 남편이 바람피우는 줄 알아요" 하시는 거다. "네? 진짜요?" 놀라는 우리에게 오래전에 선배님 남편분이 선배님께 외투를 입혀주는 걸 보고 그렇게 소문이 났다고 하셨다.


그 시절만 해도 그런 행동이 더 눈에 띄긴 했겠지. 그래서 만날 때마다 강릉에 적응하며 겪었던 에피소드를 얘기하시며 걱정스럽게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하지만 배려와 챙김이 몸에 배어있는 남편이 바뀔 리가 없었다.


오늘도 여자 옷가게에 린넨 쟈켓을 사러 갔다.

흰색, 핑크색. 하늘색, 검은색, 초록색 등등

하나하나 입어볼 때마다 어떤 지 봐주며 옷을 골라주는 남편. "그건 색깔이 너무 평범해 , 그건 기장이 너무 짧아, 그건 색깔이 튀어서 자주 못 입을 거야, 그게 제일 낫긴 하는데 가격이 좀 비싸네"

라고 세세하게 평가해 주는 남편을 쇼핑을 하시던 여자분들이 휘둥그런 눈으로 쳐다보시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아내가 예쁜 옷을 사길 바라는 마음에 꿋꿋이 그 행동을 계속했다.


결국 아주 만족스러운 쇼핑을 하고 우리가 나가고 나서 그분들이 어떤 얘기들을 하셨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아마 "부부가 아닐 거야." 그러지 않았을까?

그래서 우리에게 요즘 유행어가 생겼다.

남편은 밖에서 날 챙겨줄 때마다 꼭 이 말을 한다.

"이러면 바람피우는 줄 알아"


이젠 세월이 많이 흐르고 세대도 달라졌으니 이렇게까진 아니겠지만 확실히 서울과 강릉의 문화적인 온도 차는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사랑둥이 남편과 사는 건 너무 행복하긴 하지만 눈치가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글은 인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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