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주 오래전부터 무의식적으로 희미하게 느껴지는 두려움이 있다.
시력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유는 알 수가 없지만 순간 그 생각이 떠오를 때면 치열하게 그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애쓸 만큼 두려웠다.
인생서가 책방지기가 "6월의 책은 <잠수종과 나비>로 정했어요. 온몸에 마비가 온 저자가
15개월 동안 왼쪽 눈꺼풀을 20만 번 깜빡이며 완성한 책이에요 "라는 걸 듣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움이 울컥 올라오는 동시에 숨 막히는 두려움도 느꼈다.
그래서인지 지난주에 미리 책을 구매했음에도 막상 읽기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아서 저만치 멀리에 놓고 있었다.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미루고 있었나 보다. 풀어야 될 숙제를 하지 않은 부채감에 책을 째려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피할 수가 없었다. 다음 주 화요일 아침산책에서 나누어야 하니 오늘 드디어 읽기 시작했다. 많은 양의 용기가 필요했다.
" 나는 점점 멀어진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멀어지고 있다."
"시야에서 사라져 가는 광경을 바라보듯이, 나는 나의 과거가 점점 희미해져 감을 느낀다"
"잠수종이 한결 덜 갑갑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나의 정신은 비로소 나비처럼 나들이길에 나선다"
여기까지 읽었을 뿐임에도 눈시울이 촉촉해지고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용솟음쳐 올라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저자의 왼쪽 눈의 시력이 살아있어 볼 수 있었다는 것.
죽지는 않지만 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비된 상태에서 의식은 정상적으로 유지됨으로써 마치 환자가 내부로부터 감금당한 상태로 써내려 갔다고 생각하니 더 촘촘히 읽게 된다. 한 번, 두 번 눈을 깜빡이며 단어를 조합해 만드는 장면을 상상하며..
왼쪽 눈만 깜빡이는 상태에서 어떻게 책을 쓸 생각을 했을까? 생의 마지막 순간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난 어느 부분 변화되어 있으리라 생각이 된다. 무슨 깨달음이든 일반적인 상태에서 쓰인 책들에 비해 더 큰 울림을 주리라는 건 확실하다.
20만 번 눈을 깜빡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장 도미니크 보비에게 미리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