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가시

회사에 낼 일이 있을 거라며

by Pinggu

아빠가 건네준 종이를 펼쳤다. 사망진단서. “봉투에도 안 넣어줬어?” “그러게.” 장례식을 다녀오는 내 손에 남겨진 할머니의 흔적은 고작 이 서류 한 장이 전부였다. 나의 아빠의 엄마. 하지만 지난 30년간 그저 여러, 여러 차례 만났을 뿐인 사람. 서울로 돌아오는 길, 아빠가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 누워 열어본 그 종이 위에는 담백한 사실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성명, 성별, 나이, 발병일시, 사망일시, 사망장소. 사망의 원인. (나)(다)(라)에는 (가)와 직접 의학적 인과관계가 명확한 것만을 적습니다. 사망의 종류. 죽음의 종류. 인과관계. 의학적 인과관계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34년생인 그녀, 나의 할머니는 그 무렵의 많은 소녀들이 그러했듯, 십 대 앳된 나이에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었다. 그랬을 것이다. 그녀는 내게 이런 얘기를 해 준 적이 없으므로. 아니, 나에게 말을 건 적이 거의 없으므로. 아무도 그녀에게 글자를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한다. 학교도 가보지 못했고, 혼자 버스도 타지 못했으며, 돈은 색으로 구분했고, 밭을 매고 허벅지에 붙은 거머리를 떼가며 새벽부터 밤까지 몇십 년을, 평생을, 그 고된 노동시간을 견뎠으며… 인과관계. 의학적. 굽은 허리가 펴지지 않는 것.


아들이 아니란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녀가 거절했던 딸, 손녀, 손자들도 장례식장, 화장장, 장지를 따라나섰다. 두 번째 임신에도 딸을 낳은 그녀의 첫째 며느리는, 둘째를 출산한 바로 다음 날부터 밭으로 일을 하러 나가야 했다. 몸을 푼다는 건 사치였다. 돌이 갓 지난 첫째 딸이 엄마를 보며 삐악 대고 있었지만 둘러업고 밭을 매러 나가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바로 어제 태어난 갓난쟁이가 눈에 밟히고, 아직 피가 흘렀지만, 시어머니의 눈초리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 아들이 아니라는 것. 대를 잇지 못했다는 것. 이토록 나의 존재와 바로 맞닿아 있는데. 당연히 장지까지 따라가야겠지. 그런데 이런 관계는 뭐라 불러야 하나.

그녀는 그렇게 원망을 먹으며 늙어갔다. 손녀 손자들은 그녀를 잊어갔다. 살아있지만 잊었다. “어차피 내 이름도 모르는 걸. 내가 다녀간 줄 기억도 못 할 거잖아.” 사실이었다. 그녀는 손녀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네가 용호 딸이냐? 올해 몇 살이냐?” 삼십 년. 삼십 년이 흘렀지만 그녀는 내 얼굴과 이름을, 내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대를 이을 위대한 자손, 가문을 일으킬 자랑스러운 아들, 손자가 아니니.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묘 앞에 놓인 묘비에는 이미 가묘를 지을 때 새겨둔 이름들이 있었다. 자손들의 이름. 아들. 손자. 물론 내 이름은 없었다.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 묘비에도 쓰지 않을 이름을.


무리는 영정사진을 들고 마을을 한 바퀴 돌다가 그녀가 생전에 살던 집에 다다랐다. 이제는 아무도 들러서 보살피지 않는 공간. 빈집. 닭장. 가마솥. 마당. 경운기. 장례를 도와주던 이가, 빈집을 둘러보고 나온 첫째 며느리에게 밥그릇을 주며 대문 앞에 던지라고 했다. 사기그릇이 깨지는 맑은 소리가 깨끗한 겨울 공기 속을 타고 전해졌다.


설 추석마다 차디찬 부엌 바닥에서 밥그릇조차 채 올리지 못할 조그만 밥상 위에, 모양이 예쁘지 않은, 좋은 부위를 도려내고 남은 나머지 음식들로 배를 채우던 기억. 안방 따뜻한 아랫목에 올라갈 남자 어른들, 아들들, 손자들의 식탁을 차리느라 새벽부터 닭을 잡고, 생선을 튀긴 습기 찬 차가운 부엌 바닥에서 딸들의 옷깃을 동여매주며 얼른 먹으라고 재촉하던 손길들. 이제 그럴 일은 없다는 뜻이다. 그 손으로 밥그릇을 깼다. 추운 겨울, 동틀 시간도 한참 남은 어둡고 차가운 새벽부터 쪼그려 앉아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아 퉁퉁 부은 시뻘건 손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닭의 내장을 꺼내고, 전을 부칠 필요가, 더 이상 없다.


따뜻한 할머니의 정, 그건 내 인생에서 일어날 법하지 않은 것이었다. 손녀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는 현실의 할머니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무언가였다. 동화 속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운 아기 위로 드리우는 따뜻한 햇살, 아기가 깰까 조심스레 살랑이는 부채 바람보다, 지금 이 손 위의 사망진단서가 더 현실적이다. 사망장소 의료기관. 경남 창원시 ㅇㅇ요양병원. 사망의 종류, 병사. 사망의 원인, (가) 직접 사인 : 다발성 장기부전증, (라) (가)의 원인, 치매.


“할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 따뜻하게 이불 덮어 드린다고 생각하세요.” 할머니 묘지에 흙을 덮어드리라고 삽을 쥐어주던 이가 말했다. 모르겠다. 이것을 슬픔이라 불러야 하나. 그녀와의 조금이라도 행복했던 애틋했던 기억을 떠올려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내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건 지금 이 종이 위의 담백한 사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장지를 올라갔다 오느라, 알지도 못하는 얼굴들과 하루종일 인사를 하느라, 옷에 달라붙은 도둑가시를 떼내느라 지친 몸을 뒤척이며 담요를 끌어올리고 잠을 청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밤이었다. 자동차 뒷좌석에 누운 채로 눈을 떴을 때, 창문이 살짝 내려져 있었다.


불현듯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뒷좌석. 창문. 봉투. 저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온 손가락. 꼬질꼬질한 봉투. 몇 번의 시장바닥을 거쳐온 듯한 낡은 봉투. 그 봉투를 내 얼굴을 향해 던지는 손길. 그 손길을 예의상 마다하려고 창문을 올리다가 그녀의 손가락이 끼어버렸던 일. 어린아이였던 내 잘못으로 할머니의 손가락이 잘려버린 게 아닌가 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일. 봉투. 더러운 것이 잔뜩 묻어 있던 봉투. 어린 내 눈높이에는 올려다보아야 했던 그 창문의 작은 틈, 그 사이에 끼어 있던 손가락.


“근데 왜 사망진단서씩이나 되는 걸 봉투에 넣어주지 않는 거야? 이거 나름 중요한 서류 아냐?”

“곧 음성휴게소 나와. 들를 거지? 호두과자 먹을 거야?”

“응. 화장실도 가야 돼.”


갓 나온 따뜻한 호두과자 한 알을 입에 넣고 차로 돌아가며 내려다본 치마 끝에, 도둑가시가 보였다. 다 떼고 왔다고 생각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