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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곰 Oct 15. 2019

#_아빠는 왜 똑같은 양말이 이렇게 많아?

똑같아 보이는 하루도 사실은 같은 하루가 아니다

늘 어머님이 집안일을 도와주신다. 그 덕분에 아내도 나도 둘다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수 있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번 주는 어머님께서 새로운 걸 배우시느라 시간이 없으실 것 같다고 연락을 받았다. 불평할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누군가 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불만이 되지만,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지금까지 해주셨다고 생각하면 감사가 된다.


어쨌거나 어젠 퇴근하자마자 살림모드에 돌입했다.  아이들 저녁 차려주고, 빨래 돌리고, 마른 빨래 걷어서 정리하고, 다 된 빨래 널고, 설거지하니 시간이 다 갔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이 땅의 모든 주부님들 존경합니다.

혼자 하는 게 더 효율적이겠지만, 아이들이랑 같이 있으니 재미있게 일을 분담해서 해 보기로 했다. 내가 빨래를 너는 동안 아이들은 빨래를 갰다. 자기옷은 자기가 개고, 엄마아빠 옷은 할 수 있는 만큼만 개라고 했다. 수건은 쉬우니 둘이 반씩만 나누어 개기로 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매일 하는 일이 아니고, 놀이처럼 미션과 약간의 보상을 줬더니 신나서 경쟁적으로 한다.

아이들이 많이 컸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았지만, 어제는 빨래를 정말 깔끔하게 개는걸 보고 또 한 번 느꼈다. 

'멈추어있는 건 나뿐이었구나. 아이들은 이렇게 해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구나.'


열심히 빨래를 개던 지우가 갑자기 나에게 물어본다.

“아빠, 근데 아빠는 왜 이렇게 똑같은 양말이 많아? 하하하. 똑같은게 완전 많아. 하하하”

회색발목양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유는 알수 없지만, 그게 그렇게 웃기단다. 그래봐야 3켤레인데. ㅡㅡ


“응, 아빠는 똑같은 양말도 좋아해. 그러면 짝이 섞여도 헷갈리지 않고 신을 수 있잖아.”

“아니야. 그래도 모양이 다 달라. 그래서 비슷한 거끼리 접고 있어.”


내가 같은 옷을 즐겨입거나 같은 양말을 신는 이유는 옷입는데 신경을 덜 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우와 대화하면서 어쩌면 그저 타성에 젖어서 그게 옳다고 믿어왔기 때문은 아닐까 반성했다.


똑같은 양말도 똑같지 않다니.

그렇다. 똑같은 하루도 같은 날이 아니고, 어제의 아이들이 오늘과 같지 않다. 성장은 같은 것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그 반복에서 체득하는 미묘한 차이에서 온다.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던 진실을 아이들과 빨래를 개다가 발견한다.

어제와 같지만 또 다른 성장을 만드는 하루가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오늘 출근길엔 어제 지우가 갠 양말을 꺼내 신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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