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8.할머니집
코이카를 지원할 때 가장 크게 걸렸던 것은,
취업도 다녀와서의 진로도 비용도 안전도 아닌-
'우리 할머니'였다.
르완다로 떠날 당시 89세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의 꽉 채워진 연세만큼이나 내 마음을 꽉 채운 것은,
'혹시나', '만약에'라는 단어들이었다.
오랜 고민과 고민을 거듭,
나는 혹 '만약'의 상황이 왔을 때에도 겸허히 받아들이리라는
마음의 결정을 한 뒤에야 코이카 해외봉사단에 지원할 수 있었다.
만약의 상황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정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미래의 내가 나의 이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혹시나 오랫동안 죄책감을 갖게 되진 않을지,
인생의 중요한 우선순위가 정말 이것이 맞는 것인지,
여러가지로 고민되는 나날이었다.
나는 결단했고. 해외봉사단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만약'의 상황이 절대 오지 않길 바란다.
1년 뒤에도 할머니가 건강하시길 바란다.
2년이 되더라도, 우리 할머니가 그대로 건강하게 계시길 바란다.
임기 후에 내가 찾아왔을 때도,
그림을 색칠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
성경을 찬찬히 읽으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길
나는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