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에 일기 쓰기를 다시 시작하며
어렸을 적 일기를 매일 썼다. 처음에는 숙제로 썼던 걸로 기억한다. 방학 숙제에도 늘 '일기 쓰기'가 있었다. 그때는 '일기장'이라는 얇은 공책에 썼는데 나중에 보니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100권도 넘게 썼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겉멋이 들어 다이어리에 썼다. 그 시절 유행한 다이어리는 다 사본 것 같다. 대학생 때는 그나마 취향이란 것이 생겨 몰스킨을 사서 썼다. 매년 12월 새 몰스킨을 사는 건 은근히 즐거웠다. 여러 사이즈와 하드 커버, 소프트 커버를 번갈아 쓰면서 수첩에 적는 맛을 즐겼다.
일기를 쓴다는 게 매번 즐겁진 않았다. 어떨 때는 무거운 중압감으로 나를 짓눌렀으며 어떨 때는 억지로 써야 할 때도 있었다. 매일 일기를 쓴다는 것에 자부심이 있었던지라 한번 밀리면 밀린 방학숙제하듯 썼고 쓸 내용이 없어도 억지로 의미를 부여해서 썼다. 취업을 하고 난 뒤로는 일기 쓰기가 더 어려워졌다. 매일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앉아서 일기를 쓸 여유도 없었다. 결국 20대 후반부터는 거의 일기를 쓰지 못했다. 어느 날 한 달치 일기가 밀려있는 것을 보고 일기 쓰기를 그만뒀다.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2026년부터는 멈췄던 일기 쓰기를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한다. 처음 일기 쓰기를 그만뒀을 땐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오랫동안 지고 있었던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일기 쓰기를 멈추자 앞만 보고 나아간다는 것을. 써놓은 일기를 꺼내보는 시간이 없으니 과거의 잘못을 반성할 기회도 없다. 지난해가 아니라 지난주에 있었던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행복은 불투명한 미래가 아니라 지나온 길에서 그냥 지나쳤던 것들에 있는데 뭘 지나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30대 중반에 드디어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되도록이면 매일 짧게라도 일기를 쓰려고 한다. 걸으면서 드는 생각, 출근 준비를 하며 드는 생각, 일하면서 드는 생각 등 순간에 드는 생각을 포착해 의미를 풀어 기록해 두려고 한다. 몇 달, 몇 년이 지났을 때 그 순간의 생각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수많은 생각을 놓치며 살고 싶진 않다. 2026년에는 낭비하는 순간 없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가능한 매일 조금이라도 뛰려고 한다. 일기장에 적을 거창한 꿈은 이제 없다. 그저 삶이 힘들 때 되돌아볼 과거는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