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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시누 Sep 23. 2016

실화가 전달하는 무게감

영화 리뷰: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2009년 1월 미국, 155명의 승객을 실은 여객기가 이륙 직후 새 때와 충돌한다. 역사상 새때와의 충돌로 여객기가 추락한 전례는 없었지만 당시 A320 항공기는 충격으로 양쪽 엔진을 모두 손상 입었고 추락의 위기에 빠졌다. 당시 기장이었던 ‘설리’는 비행기가 공항까지 무사히 귀환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해 근처에 위치한 허드슨 강에 착수를 시도한다. 이는 매우 위험한 시도로 자칫 잘못하면 기장을 포함한 승객 전원이 위험을 겪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비행기는 무사히 착수에 성공했고 155명의 승객들 전원이 생존하는 기적 같은 일이 발생한다. 영화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이하 ‘설리’)은 당시 기장이었던 설리를 중심으로 국가운수 안전 위원회와 설리간의 청문회 싸움을 다루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저지 보이즈>에 이어 다시 한 번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비행기 추락과 영웅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사실 실화를 다루는 영화는 칭찬받기가 쉽지 않다.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데만 그쳐도, 너무 과한 허구가 들어가도 비판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영웅적 이야기를 그리는 것은 고루한 흐름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기에 더욱 연출이 어렵다. 하지만 <설리>는 결말이 빤히 예상되는 스토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감정묘사와 사고 당시의 상황들을 세밀하게 표현함으로 그러한 우려들을 잠식시킨다.





         <설리>는 실화를 토대로 한 영화가 갖는 위험을 회피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오히려 이 위대한 이야기가 실화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그 때문에 이 영화는 극적 감동이 가져다주는 뜨거움보다는 실화 영화가 가져다주는 오싹함이 더 강렬하다. 여기서의 오싹함이란 공포감보다는 일종의 경외심에 가까울 것이다. ‘영화 같은 실화’, 혹은 ‘사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라는 말들이 있는데 A320 항공기 추락 사건은 문자 그대로 영화 같은 사건이었다. 처음 겪어 보는 추락 속에서 기장과 부기장, 그리고 스튜어디스의 행동들. 더군다나 그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책임져야 할 100명 이상의 승객들이 있다면 그 무게를 감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이 영화가 특히나 절절하게 다가오는데 그 이유는 근래 발생했던 한국의 수많은 안전사고들 때문이다. 특히나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사고’는 이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관객들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당시 사고가 극단적 결과로 치닫게 된 큰 원인 중 하나는 무책임한 선장 때문이었다. 자신의 배에 탄 승객들을 객실에 남겨놓고 자신의 생존만을 신경 쓴 선장 이준석 씨. 그가 떠오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행동과 180도 반대로 행동한 기장 설리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항공기가 강에 빠진 이후 모든 탑승객들을 체크하고 반쯤 수몰된 비행기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그의 직업윤리는 참으로 대단하다. 그는 기장으로서 적절한 상황판단에 더불어 자신의 직업이 갖는 무게까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은 설리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유독 각자의 직업윤리가 빛나는 작품이었다. 기장과 부기장은 자신의 위치에서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청문회는 혹시나 빠뜨리고 넘어가는 것이 없는지 설리를 철저히 추궁했다. 스튜어디스들은 당황하지 않고 승객들은 안심시켜주었으며, 구조요원들과 현장 근처의 배들은 늦지 않게 인명 구조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윤리와 책임감에 부합해 상황에 대처했기에 기적 같은 전원구조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실제로 발생한 날 것 그대로의 실화라는 점이다.



           2016년 연이어 발생한 대규모 지진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다시 불안감에 떨고 있다. 누구나 재난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에 이미 짙게 깔린 불신이 그러한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 간부들의 이기적인 행동, 또 2014년 세월호 선장의 도주는 사회 전반에 깊은 불신을 심어 놓았다. 그렇기에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은 한국에 있어 보다 의미 있는 영화로 다가온다. 이 영화는 마치 이상적 사회를 그리는 듯 보이지만 그것이 이상이 아니라 실제 발생한 일이라는 점에서 더욱 가치를 갖는다. 탈출에 성공하며 어서 휴식을 취하라는 경찰의 말에 가장 먼저 승객수를 확인해야 한다는 설리 기장의 반응, 그 반응이  언젠가 한국 사회에도 깊게 뿌리 내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본 글은 [디 아티스트 매거진]에 칼럼으로 기고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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