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부지런히 보낸 하루
15년을 함께 했고,
그 사이 초등학생이던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이틀 전부터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눈만 감고 지내더니,
새벽에 숨소리가 점점 옅어지다가 멈췄다고 한다.
얼마 전, 구정 즈음 오래 키운 개를 떠나보낸 회사 동기 언니가 그랬다.
-그 나이 때는, 하루하루 일희일비하면 안 돼. 더 힘들어.
정말로 그렇다.
팔팔하게 뛰어다녀서 '아이고 5년은 더 살겠네,' 하던 바로 다음 날 갑자기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만 잘 수도 있다.
그리고는 또 기운을 차려서 이리저리 재롱도 부리다가, 자기 몸보다 10배는 큰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끙끙 앓을 수 있다.
(예전에 개들은 죽기 전 너무 아플 때, 주인이 자기 모습을 볼 수 없게 자꾸 숨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2주 전 집에 갔을 때 그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그게 신호일 줄은 몰랐다.)
개를 키우는 대부분의 가족들이 공감할테지만,
처음에 데려올 때 가장 반대를 했던 건 엄마였고, 데려온 후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것도 엄마였다.
내가 다 할테니까 허락만 해줘! 라며 큰소리 쳤던 우리가 학교, 학원, 직장 핑계로 개의 예쁜 모습만 보고 지낼 때, 이럴 줄 알았다면서도 엄마는 묵묵히 모든 일을 했다.
개가 심통난 날 집안 여기저기 해 둔 실례를 다 치웠고, 몸에서 냄새가 나면 아픈 허리를 참아가며 욕조에서 목욕을 시켰다.
개가 노환으로 아프기 시작할 때부터는 마트에서 단호박을 사와서 오래오래 끓여 불린 사료와 함께 죽처럼 매일 떠먹였고, 피부병 때문에 온몸에 퍼져있는 시뻘건 환부에 밤마다 연고를 발라줬다.
개도 그걸 안다.
엄마가 외출하려 화장실에서 준비를 하고 있으면 꼭 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누웠고,
엄마가 집을 나서면 현관 문이 닫혀 엄마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엘레베이터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도 얘 침대 안에는 엄마가 몇 년 입어서 엄마 냄새가 밴, 그래서 엄마가 가끔 집을 비울 때마다 얘가 고개를 파묻고 자던 잠옷이 있었다.
-휑하네. 방구석에 자리 차지하던 방석침대도 치우고, 관절 안 좋을 때 산책이라도 시키려 산 싸구려 유모차도 치웠더니.
엄마도 허전하신가보다.
집안 구석구석에 옷도, 목줄도, 개샴푸도 있을텐데.
유난 떨지 않고, 개는 개답게 키우겠다는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지난 15년 동안 정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샀는데, 그래도 생각해보니 이것저것 많다.
다음에 집에 내려가면 빈 자리가 클 것 같다.
나와 동생은 서울집에서 부모님이 보내주신 마지막 동영상만 한참 봤다.
끙끙 앓던 요 몇 주와는 다르게, 잠든 것처럼 편안해 보인다.
오늘 아침에 소식을 전해듣고선, 우리 모두 슬퍼하긴 했지만 일상이 스톱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들 더 부지런히 하루를 보냈다.
조만간 하려 하긴 했지만 굳이 '오늘' 해야하는 건 아니었던 일들 - 휴대폰을 바꾸러 가고, 운동을 가고, 밀린 집안일을 하고, 건강검진을 받고, 할아버지를 뵈러 가고 - 을 싹 처리하고 왔다.
그리고는 괜찮냐는 친구들의 말에,
-마음의 준비를 좀 했더니, 나도 그렇고 우리 가족도 생각보다 괜찮아.
라고 했다.
그게 진심이었고.
근데 그런 건 없다.
마음의 준비를 한 달, 일 년을 했더라도 떠나보내는 건 여전히 괜찮지 않다.
더 이상 부지런 떨며 돌아다닐 수 없는 밤 시간이 되니, 그제야 실감이 나면서 많이 힘들다.
맞벌이셨던 부모님 대신 나를 평생 키워주신 외할머니가 취업 직전 돌아가셨고,
우스갯소리로 시집갈 때 데려가겠다던 우리집 개도 오늘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오랜 시간 함께 하던 것들을 하나씩 떠나 보내는 건 힘들지만,
이렇게 놔주는 연습을 해야하...는 게 맞나?
잘 모르겠다.
안 해도 되는 거면 안 하고 싶다.
우리 동네에 개들이 이렇게 많았나.
한 마리 한 마리 오늘따라 유난히 더 눈에 들어온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