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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May 23. 2019

201905, 교토 여행 #3

  일본어를 잘하는 현지 친구가 있어 좋은 점은 선술집이나 식당에 가서 메뉴에 대한 설명을 직접 듣고 자유로이 주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저녁 자리 후 맥주 한 잔 하러 들어간 곳은 우리나라 실내포장마차 같은 허름한 선술집이었는데, 현지인들만 드나드는 집이다 보니 메뉴는 벽에 붙은 일어 메뉴가 전부인 데다, 대충 써서 팸플릿으로 만든 영어 메뉴는 일어 메뉴와 일치하지 않았다.  후배가 벽에 있는 메뉴로 하나 주문했는데 소 힘줄을 간장소스에 끓여 부드럽게 익힌 음식이었다.  영어 메뉴에는 없는 것이었다.  맛이 아주 좋아서 지금도 인상에 남는다.  

  다음날 아침에는 후시미 이나리 신사로 향했다.  토요일이었던 이 날은 북적이는 인파를 예상하고 철저한 여행자 입장으로 관광지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가와라마치 역에서 기온시조 역으로 걸어가 게이한 본선을 타고 후시미 이나리 역에서 내려걸었다.  걸어 들어가는 길은 상점과 노점이 뒤엉키듯 늘어서 있고, 그 사이를 엄청난 인파가 줄짓고 있었다.  이 신사 입구는 유독 노점이 많구나 생각하며 들어갔는데, 우리가 들어간 길은 정문이 아닌 샛길 통로였고, 후시미 이나리 신사는 장사의 흥복을 기원하는 신사였다.  신라 도래인 하타 씨가 남으로 후시미 성을 축조하고 후시미 이나리 신사를 지어 농업을 관장하는 여우 신을 모셨다고 한다.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상업에도 연관이 되면서 장사의 흥복도 비는 신사가 되었다고 한다.  유명한 도리이 터널은 농부나 상인들이 자신들의 농사나 사업이 잘 되길 바라며 각자가 도리이 하나씩 세워 형성된 터널이라고 한다.  

  신사는 전체적으로 화려하면서 특유의 연붉은 색이 인상적이었다.  유홍준의 책을 읽어서 그런지, 후시미 이나리 신사에서의 이 색은 왠지 사람의 피를 연상하게 했다.  1600년의 후시미 성 전투에서 할복자살한 2천여 명의 장수의 피가 마룻바닥에 그대로 물들었고, 그 물든 나무는 기막히게도 옆의 양원원(요겐인)과 정전사(쇼덴지)의 천정 목재로 쓰여 지금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 붉은색은 어떤 화려함도 있지만, 기막힌 비장미가 있다고 보는 것도 타당하다.  그 목재를 직접 보고 싶었지만, 일정상 찾아가지 못했다. 


  통로마다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여우상은 저마다 다른 것들을 입에 물고 있다.  도리이터널을 들어서는 일만 해도 엄청난 인파에 몰려야 했다.  그리고, 인파에 몰려 도리이 터널을 지났다.  천 여개의 도리이 터널을 지나는 건, 산 하나를 등반하는 일이었다.  인파에 밀려 그러고 싶지는 않아서, 중간에 다시 나와 한적할 때 다시 와 보기로 생각했다. 

  교토역 부근에서 쇼핑을 하겠다는 아내를 따라 나는 근처의 스타벅스에서 아내를 기다리며 텃밭일기를 써 내려갔다.  역시 스타벅스는 전 세계 어디서나 비교적 저렴한 커피값으로 몇 시간을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었다.  교토역과 교토타워는 바로 마주한다.  쇼핑이란 자체는 목적에 본질을 두지 여행의 본질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교토역과 교토타워 역시 그렇다.  이 장소는 이상하게도 여행지로서의 어떤 매력을 발산하지 않는다.  교토역이야 이동의 중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지만, 디자인 면에서는 웅장하기만 하지 너무 건조하고 교토라는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교토타워 역시 별다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철저하게 개발자본에 의한 건축물로서 교토의 대표적인 패착으로 비판받는다.  고민하지 않고 깊이를 만들지 못하는 자본과의 싸움 역시 전 세계 어디서나 공통된 현상이었다.

  다시 가와라마치 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기온으로 들어섰다.  기온 거리를 따라 니넨자카와 사넨자카를 따라 청수사로 올라갔다.  청수사를 보려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걷기 위해서였다.  생각보다 인파는 많지 않았다.  고구려 도래인이 세운 야사카 탑을 지나고, 유명한 양념가루인 시치미의 본점인 시치미야를 구경하고, 거리의 풍경을 해치지 않도록 오래된 건물 그대로 활용한 스타벅스를 지나, 지브리 샾에서 영혼 없이 열리려는 지갑을 간신히 단속했다.  최소 5개 이상의 외국어가 곳곳에서 들렸고, 시치미야의 주인아저씨는 간경화 중기 이상의 병태를 보였으며, 커피는 일단 지나치고, 돈을 놓으면 알아서 먹는 가오나시 저금통에 군침을 흘렸다.  네네의 길을 따라 마루야마 공원에서 잠시 쉬어갔고, 고구려 도래인이 세운 야사카 신사를 돌아보고 다시 기온 거리로 들어섰다.  시라카와 개천이 흐르는 그 단아한 공간에 기모노를 입은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는 토요일 늦은 오후의 정경은 아름답고 매력 있었다.  반나절을 가만히 개천 다리에 앉아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은 그 풍경이 많이 아쉬워지는 것은, 여행을 마무리해야만 하는 시간에 다다랐기 때문일 것이다. 

  점점 어두워지는 가와라마치 인근 거리를 우리는 행군하듯 걷기 시작했다.  토요일 저녁을 먹는 일은 예약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식당마다 대기시간도 엄청 길었다.  맛있다는 집을 찾아 걸어가면 엄청난 대기시간에 절망했다.  다시 길을 걸어 다른 집을 찾아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걸리는 데 들어가자 싶어 니시키 시장 뒤편의 작은 길들을 걸어 다녀도, 마땅한 집은 없고 있어도 엄청난 대기시간에 다시 나와야 했다.  아내는 어처구니없어하고, 나는 허탈했다.  무얼까, 어떤 함정에 빠져 헤매는 기분이었다.  정보의 함정이었다.  방대한 정보가 분리해 놓은 호불호의 선택 앞에서, 사람들은 둘로 나뉘었고 좀 더 민첩하고 눈치 빠른 사람이 남들보다 수월하게 그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우리같이 느릿하고 여유 있게 즐기는 사람들은 기다리거나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역시 그러했다.  호불호의 정보에 사로잡혀 지나치는 곳들을 과감하게 선택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과 마찬가지로 우리 내면도 그러한 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총체적인 함정 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좀 더 예민해지고 민첩해지는 것뿐이었다.  결국 엄청나게 걷다가 돌아와서는, 숙소 부근에 지나다니며 보아두었던 스테이크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자리도 넉넉하고 와인 무제한 프로그램도 있으며 게다가 맛도 괜찮았다.  교토는 언제나 좋았으나, 쉽게 이룰 수 없는 동경에 너무 사로잡혀 헤매었던 시간이었다.  거대한 파도같이 몰려드는 정보에 매몰되어 시야를 잃어버린 여행이었다.  그 결과는 필요 이상의 걸음으로 통증이 생긴 무릎이었다.  우리는 3일 동안 7만 5천 보 이상을 걸었다.  저녁을 먹고 역시 숙소 바로 옆의 작은 와인 바에서 훌륭한 맛의 글라스 와인 두어 잔과 너무도 유쾌했던 점원과의 간간한 대화로 우리는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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