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서맨사 하비의 『궤도』라는 소설을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 슬픈 내용은 아니었다.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선에 탄 우주비행사가 지구를 내려다보면서, 지구에서는 아주 일상적인, 쉽게 지나쳐버리는 소중한 순간을 그리워하는 대목이었다. 또, 지구가 우주에서 얼마나 미미한지 묘사하는 부분도 있었다. 모차르트의 ‘아베 베룸 코르푸스(Ave verum corpus)’를 듣고 있어서 감정이 더욱 북받쳤다. 찾아보니 이 곡은 ‘참된 몸이여, 안녕’이라는 뜻으로, 모차르트가 죽기 몇 달 전 썼다.
우주에서 내려다보는 지구는 왜 이토록 아름답고, 종종 눈물짓게 할까.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 『퍼스트맨』, 『애드 애스트라』 등 우주 영화를 보면서도 여러 번 울었기에 궁금해졌다. 아마도 우주에서 보는 지구가, 멀리에서 보는 나 자신 또는 지금 이 시절처럼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가 평소 지구를 볼 수 없듯, 자신이나 현재를 자각하기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기도 어려운 일이니까. 문득 이를 깨달을 때 감정이 벅차오른다. 당연하게도 아름다움의 중심에는 가족과 아이들이 있고, 소설을 읽으면서 아이들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특히 도하.
애초에 『궤도』라는 소설을 고른 것부터 도하 영향이었다. 내가 도하의 엄마가 아니었으면 이 책을 읽었을까. 읽었다 해도 훨씬 나중이었을 거다. 도하 덕분에 우주에 대해, 도하만큼은 아니어도 이전보다 넓고 깊게 알게 되고, 관심이 생겼다. 게다가 이 소설 속 우주선은 지구의 궤도를 돌고 있어 지리와 지형에 관한 문장이 많은데(‘알바니아와 몬테네그로는 산으로 뒤덮인 부드러운 벨벳이다’처럼), 이 또한 기존 배경지식으로 읽었다면 훨씬 더디고 어려웠을 것이다. 도하와 같이 알게 된, 도하가 알려준 우주와 지리에 관한 모든 것이 응축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더 놀라운 점은, 울기 전날 밤 도하가 내게 보여준 20분짜리 유튜브 영상이 이 소설의 일부 같았다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가장 작은 길이 단위인 플랑크 길이(Planck length)부터 다중 우주까지 크기순으로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미시에서는 모르는 개념이 많아 일부 찾아봤다. 끝까지 보고 나서는 이 세계가 너무 아득해서, 감조차 잡히지 않을 만큼 작고 또 커서 무섭다고 이야기를 나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 영상이 아른댔다. 먼지 같은, 아니 먼지보다 작은 지구와 이를 품고 있는 우주를 떠올리면서. 심지어 듣고 있던 모차르트의 곡조차 도하 덕분에 클래식을 듣다가 추천 알고리즘에 뜬 곡이었다.
이 정도면 이 책은 도하와 나 사이에 어떤 운명 같은 매개처럼 느껴졌다. 또 새삼 도하가 확장해 준 세계의 방대함을 느꼈다. 이건 도하가 존재 자체로서, 사랑으로 나를 깨닫게 하고 열어준 것과는 완전히 다른 ‘앎’의 영역인데, 그런데 또 완전히 분리돼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우주와 세계와 클래식 음악 따위가 내게는 곧 강렬하게 도하이기 때문이다. 도하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반성도 했다. 도하의 명석함과 호기심처럼 빛나는, 특별한 지점들을 이토록 사랑해 마지않으면서도 동시에 따라올 수밖에 없는 그림자 같은 예민함, 히스테릭을 얼마나 잘 받아주고 있는지 돌이켜보게 됐다. 몇 달 전 남편이 복직하고 기하와 도하 둘을 보게 되면서, 특히 아침 시간대에 평정을 많이 잃었다. 이전보다 도하를 혼내고 다그치게 된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실망스럽고 아이에게도 미안하던 차였다. 바로 고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이대로여선 안 된다고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다. 변해야 한다.
언젠가 성장한 도하에게 이 글을 보여주고, 소설 『궤도』를 권할 날이 오겠지. 새삼 감격적일 것 같다.
오늘 아침, 도하는 모처럼 나와 둘이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조금 늦게 등원했다. 도하가 내게 대뜸 물었다.
“엄마는 도하를 몇 살에 낳았어?”
“음... 서른두 살 되자마자 낳았네. 도하가 1월에 태어났으니까.”
“근데... 엄마 좋았겠다.”
“어? 어떻게 알았지? 왜 좋았을 것 같아?”
“도하 태어나서.”
“맞아. 엄마랑 아빠 좋아서 맨날 춤췄잖아. 영상도 본 적 있지?”
좋았겠다,는 그 말이 기뻤다. 자기가 우리의 행복인 걸 너무 잘 아는 아이. 도하가 어른이 돼도 지금처럼 생각하고 말할 수 있도록, 더 사랑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