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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Oct 18. 2016

실수에 대처하며 살아가기

정답이 꼭 한 가지만은 아니다


금요일이면 아이는 어린이집을 가지 않고 사모님 댁에서 자기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며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토요일 오전은 남편과 교대로 아들을 픽업하기 위해 부천으로 향한다. 그날도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매주 가는 길, 매번 익숙한 코스.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차가 밀리기 시작하고, 쾌청한 가을 날씨에 야외활동을 떠나는 가족들이 많은 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채 평소처럼 차를 몰았다. 직진 코스가 어느 정도 이어지자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이 보인다. 오늘은 어쩐지 다른 날보다 꼬리를 물고 이어진 행렬이 길다고 느끼며 앞 차를 따라 바짝 붙어 섰다. 잠시 무슨 생각에 잠겼던 걸까. 시야가 트이며 나타난 길이 평상시와 조금 다르다.  

    

‘설마. 아닐 거야. 그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 그래도 매번 오던 길인데 잘못 들어섰을 리가. 근데 다르네. 그래, 핸들을 꺾어야 할 각도가 예전이랑 달라. 거기는 코스가 깊어서 전에 기름 실은 트럭에서 식용유 통이 쏟아져 내린 적도 있었잖아. 지금 여기. 이 곳은 전과 확실히 달라.’       


오른쪽이라고 해도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이거늘 오늘은 뭐에 홀렸던 건지 나도 모르게 다른 차량을 따라 무턱대고 첫 번째로 들어서버렸다. 앞뒤로 꽉꽉 막힌 차들을 보며 표지판을 보는 대신 나는 다음 일정들을 취소해야 하는 걱정에 사로 잡혔다. 아이를 보고 싶어 하는 친정엄마의 노동력을 담보로 꼭 보고 싶었던 영화 약속을 잡았는데 모든 것이 스르륵 날아가 버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시간에 돌아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턴을 할 수 있는 거지, 다른 길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란 것이 대체 있긴 한 걸까. 연락을 남겨야 한다. 잠시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한 동생에게 문자를 남겼다.


‘나 지금 고속도로 잘못 들어서서 언제 갈지 몰라. 해결되면 연락할게.’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목소리로 “네비 켜.” 하는 말을 듣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냥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몰라서 전화를 건 게 아니지 않은가. 남편과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게 뻔 한 동생에게도 이번만은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는다.      


우선 고백하건대 나는 '제대로' 길치다. 이게 일반적인 길치라기보다는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능력이 조금, 아니 많이 부족하다(그걸 길치라고 하는 건가?). 그래서 이정표를 잘 보지 못하고 몇 번째 어디서 우회전, 이런 식으로 길을 외워서 다닌다.


특히 고속도로에서는 거의 모든 생각과 신경이 마비되는 상태에 빠진다. 게다가 내비를 잘 보지도 않는다. 길은 무조건 외워서 다니니 모르는 길은 거의 가지 않는다. 회식장소나 처음 가는 약속 장소는 지도를 보고 코스를 숙지하여 완전히 외운 뒤에야 출발한다.      


2년 가까이 아들을 맡기고 데리러 다닌 인천-부천 간 길도 수십 번을 조수석에서 동행한 이후에야 외워서 익힌 다음 운전석에 앉았다. 그런데 그 코스에서 실수를 해 버린 것이니 나에겐 다음 매뉴얼이 있을 리 만무했다. 정말 난감했다.


망설이며 두리번거리던 차에 내가 이 길로 들어서던 비슷한 시각에 내 옆을 질러 달리던 경찰차 생각이 났다. 제발 그 차가 멀리 가지 못했으면 좋으련만. 살짝 코스를 빠져나와 갓길로 주행하던 도중에 다행히 경찰차를 찾아냈다. 그 앞에 선 차로부터 걸어 되돌아오는 경찰관이 보였다.


저 차는 단지 주의를 받기 위해 세워진 것일까. 아님 딱지를 떼인 것일까. 경찰차의 존재를 내 눈 앞에 있게 한 그 앞차의 안위를 잠시 걱정하며 경찰차 뒤에 차를 세우고 아저씨가 나를 볼 수 있도록 두 팔을 퍼덕거렸다. 나를 본 경찰이 내 차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창문을 열고 다급하게 말을 하려는데 휙-휙- 달리는 차들의 다양한 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혀버리고 말았다. 조금 더 큰 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까 오른쪽으로 빠질 때 부천으로 갈 걸 잘못 들어섰어요. 부천이나 인천으로 다시 갈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처음엔 군자 I.C까지 가라는 말을 딱딱하게 남기고 떠나려던 경찰관은 꽉 막힌 도로를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걸음을 멈추고 말을 바꿨다. “저희를 따라요. 그리고 제가 손짓하면 그쪽으로 빠져나가세요.” “아 네.” 대답과 동시에 살았구나. 정말 살았구나 싶었다.   

          

갓길을 빠져나가 크게 오른쪽으로 두 번을 돌아 조금 더 달리자 경찰차의 운전석 문이 열리고 무선 마이크를 든 다른 경찰관이 보였다. 칙칙- 기계음을 통해 구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앞으로 쭉 가세요”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던 나는 조수석 창문을 열고 목 인사를 꾸벅했다. 앞으로 직진. 잠시 뒤 원래 가고자 했던 길이 나타났다.         


저 두 분은 나를 두고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불쌍하다고 했을까. 재밌는 사람이네 해버렸을까. 어쨌든 해결이다. 그리고 익숙한 길로 들어서며 나는 이상하게도 과거 직장에서의 내 어리숙했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직전 회사의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경력직으로 이직을 다. 하지만 맡고 있던 일의 방식에 새로운 부분이 더해지면서 나는 회사 내 누구에게도 배울 수 없는 일을 추가로 맡게 되었고 굉장히 곤란을 겪고 있었다. 결국 국가에서 운영하는 콜센터 직원을 사수라 여기며 일을 보완해 갈 수밖에 없는, 웃지 못할 상황에 놓여 있었다.   

   

군가에게 싫은 소리 듣기는 죽어도 싫은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눈앞이 캄캄했다. 무엇보다 제대로 업무를 숙지하지 못한 상태로 정해진 기한 내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어떤 내용이 보완사항으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단 기한을 맞추는 것에 급급해하며 눈앞에 닥친 일만을 처리해나가던 시간. 그리고 연이은 실수. 잘 마무리됐다 싶었던 일에서 또 보완이 나오자 기운이 빠지고 스스로 자괴감이 들었다.     

 

내 업무방식이 맞다는 확신이 들 책임질 사람이 그렇게 하라는데 왜 말을 듣지 않는 것인지 따져도 뜻을 굽히지 않던 내가 결국 부장님을 찾아가 실수가 잦아 죄송하다는 말씀을 리고 말았다. 혹여 엄청난 잔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감수하겠다고 마음먹고 간 자리에서 난 의외의 말을 들었다.   

   

“괜찮아요. 그래도 어떻게든 알아서 해결하잖아요.”   

  

업무를 배울 기회가 없다는 원망, 혼자서만 아등바등하고 있다는 억울함, 계속해서 날아오는 보완 요구서를 보며 느끼는 무력감, 그리고 이를 하소연할 곳 없다는 고립감이 한 방에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알고 계셨구나. 그리고 믿어주셨구나. 그 너그러움에 대한 보답으로 그 뒤로 나는 단 한 번도 그분께 대들지 않고 맡겨진 일을 ‘미션 클리어’ 해나갔다.      


그 시간이 떠올라 운전을 하며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때가 있었지. 실수는 누구나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실수를 두고 여러 갈래 길에 놓인다. 부끄럽고 싫었던 기억마저 내 안에 남길 또 하나의 힘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온전히 자기 몫이다. 그래서 주체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자신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내비를 검색하는 것, 맞지만 정답이 꼭 한 가지만은 아니다.  쉬운 길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르며 누군가의 친절에 대한 따스한 기억은 이다.


고속도로에 잘못 들어선 그날, 길은 어느 곳으로든 연결되었고 다음번 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우선은 앞으로 달려 내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거란 '한 가지 힘'을 새로이 얻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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