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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삭이는 잎싹 Aug 12. 2024

몰입이 주는 자유

파리 올림픽이 주는 감상

열띤 파리 올림픽이 중계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마냥 즐길 수가 없었다. 내가 저 선수라면 그 압박감의 무게를 이겨내고 상대를 이겨낼 수 있을까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을 끝내고 쉬고 있는 나는 아무리 합쳐도 스무 명이 채 안 될 내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면 때때로 숨이 막히는데, 화면 속 저 선수는 4년에 한 번 있는 올림픽에서 전 국민 아니 전 세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할 용기가 어디서 나는 지 그 담대함이 놀랍다.




시험장에 앉아 감독관이 나눠주는 시험지를 받아 파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를 풀 수 있을지 어떤 문제는 넘겨야 할지를 빠르게 확인하고 덮는다. 그리고 시험 시작 방송이 나오기 직전의 약 3분 동안 그 공간에서 수험생들과 감독관들은 숨죽여 기다린다. 올림픽 경기에서 심판의 총성을 기다리는 육상선수들처럼 달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시험을 시작하라는 알람음이 나옴과 동시에 가슴속 두근거림과 함께 시험지를 넘기며 아까 잠시 눈으로 체크해 두었던 문제부터 살핀다. 첫 시작이 중요하기에 평소에 잘 풀리고 접근하기 쉬운 나만의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에너지가 가장 충만한 시험 초반에 어려운 문제를 건들지 않는 이유는 몰입의 흐름을 타야 하기 때문이다.


잘 풀리는 문제부터 풂으로써 뇌를 이완시키고 평소 혼자 공부하던 루틴으로 뇌가 인식하도록 하면, 시험장에서 경쟁자들과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익숙한 공간 속에서 나 혼자 내 책상에서 문제를 푸는 듯한 오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까다롭다고 느끼는 문제들만 깔때기 밑에 남는다. 거기서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를 빠르게 제한된 시간을 확인해 가며 골라 알맞게 풀면 합격이다. 공부를 오래 하고, 평소에 아는 것이 많은 수험생이더라도 이러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그대로 탈락이다.




공부를 잘하고 시험 아웃풋이 좋은 학생들은 올림픽에서 메달권에 있는 선수들과 다를 게 없다. 항상 사용하던 탁구채가 기자에 의하여 부러질 가능성, 시작 소리를 못 들을 가능성, 초집중해야 하는 순간에서 벌이 내 얼굴에 앉을 가능성, 관중의 함성과 야유... 경기장에서 일어날 수많은 예측불가능한 일들은 내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 불안감, 의심...

이 모든 것들을 그 자리에서 컨트롤하기 위해 즉 몰입의 방해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미리 연습한 사람들 만이 메달을 딴다. 더 많이 나의 불안요소들을 예측하고 대비한 사람들이 빠른 기간 내에 합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단지 머리가 좋아서, 재능과 지능이 좋은 것이 반드시 합격과 메달을 보장하지 않는 것이다.


불확실성에 대한 자신만의 대비, 노력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진다. 그 확신은 다시 나를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였기에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오판으로 인해 승패가 바뀌었을 때 기분이 잠시 나쁠 지언 정, 내가 보낸 시간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는 것이다.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후회는 또 다른 후회를 낳을 확률이 엄청나게 높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생긴다. 내가 결국엔 해낼 것이라는 믿음, 확신, 더 나아가 그렇게 알고 있음. 그렇기에 몰입이 필요한 순간에 방해요소는 더 이상 그 기능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방해요소라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살면 일 순간 자유로움을 느낀다. 더 이상 어느 것으로부터 억제되지 않는 자유로움, 해방감..




책 '행복의 기원'의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표로 하는 행복 그 자체는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행복은 수단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동의하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행복이 삶의 목표이면서 자신이 언제 행복 한 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면 행복하지 않을까? 라면서 미래에 대한 막연한 그림을 그린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말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모양은 사실 앞서 말한 자유로움의 개념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삶이 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내가 삶을 통제하는 것도 아니라, 그 어떤 것에 얽매이지 않고 삶과 함께 내가 유영하는 감각을 충분히 느끼는 것..


내 생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할 때 나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내가 가장 순수한 상태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쓰는 순간만큼은 몰입할 수 있기에, 그래서 내 마음속 잡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그것은 더 이상 내가 나아감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가 이렇게 자유롭길.. 모든 다가오는 경험을 받아들이고 얽매이지 않으며, 그저 있는 그대로 느끼고 흘려보낼 수 있는 자유를.. 스스로 만들어 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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